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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그들은 왜 자리만 빛낼까?

송인한 연세대 사회복지학 교수 사회참여센터장

송인한 연세대 사회복지학 교수 사회참여센터장

졸업식이 한창이다. 해외 졸업식 시즌마다 감동적인 졸업축사가 해외토픽으로 소개되곤 한다. 스티브 잡스의 그 유명한 “항상 갈망하고 항상 우직하라(Stay Hungry, Stay Foolish!)”는 스탠퍼드 대학의 졸업축사는 졸업생뿐만 아니라 많은 젊은이들에게 초심처럼 새로움을 갈망하고 바보 같을지언정 우직하게 계속 도전하라는 감동을 남겼다. 미셸 오바마도 영부인으로서 마지막 행한 한 대학의 졸업축사에서 “남들로부터 받은 만큼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어라(Pay it forward)”는 명연설로 졸업식장을 넘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이 외에도 수많은 명연설이 졸업식 축사를 통해 나왔다. 해외에선 대학교뿐만 아니라 고등학교 졸업식에도 명사를 초대해 인생에 남는 졸업축사를 듣는 것이 전통이다. 초대를 받은 명사 또한 단순한 덕담만 던지는 것이 아니라 명예를 걸고 심혈을 기울여 연설을 준비한다고 알려져 있다.
 
아쉽게도 우리나라 졸업식의 명연설 이야기를 거의 듣지 못했다. 대부분의 졸업식에서는 졸업생의 취업현황이 발표되고 특히 상당수의 고등학교 졸업식은 ‘SKY 캐슬’ 결과보고서 같은 상위권 대학 진학률이 홍보된다. 이런 자리일수록 미래를 밝히는 이야기로 졸업의 의미를 살리면 좋겠건만, 명연설은 고사하고 잠깐 자리만 빛내고 일찍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
 
어디 졸업식뿐인가. 대부분의 다른 행사에서도 자리를 빛내주는 인사들은 형식적인 축사만 잠깐 하고는 서둘러 자리를 뜨는데 마치 빨리 자리를 뜨는 게 중요한 인물의 척도라고 생각하는 건가 싶을 정도다. 그렇게라도 ‘장(長)’이나 ‘의원’ 자가 붙은 분들이 왔다 가야 행사의 품격이 높아진다고 믿는 주최 측의 바람 때문이기도 한데, 실은 자리를 빛내줘서 감사하다는 행사 진행자의 말에서도 영혼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이런 행사에서 자리를 빛내는 역할을 하는 대표적인 직군으로 정치인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선거를 앞두고는 여러 자리를 빛내기 위해 열심히 돌아다니지만 당선 직후에는 자리를 빛내는 빈도가 상당히 줄어들기도 한다. 이분들이 자리를 잠깐만 빛내는 대표적인 행사는 국회의원 주관 세미나인데 국회에서 이런 주제에 관심을 가지는구나 하고 큰 기대를 가지고 가보면 ‘불가피한 일정으로’ 자리에 없는 경우가 많다. 행사 처음부터 끝까지 진심으로 관심을 가지고 참석하는 소수의 의원들께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각종 축사의 내용은 어떤가? 상당수는 공치사와 덕담으로 가득한데 정말 알고 하는 이야기인지 아니면 그냥 원고를 읽는 것인지 곰곰이 듣다 보면 감별할 수 있다. 명연설까지는 아니더라도 행사에 대해 제대로 알고 말해야 할 터인데 그대로 따라 읽는 이들의 축사를 듣노라면 ‘이 대목에서 강하게 강조한다’ 같은 지문까지 그냥 읽을까 봐 걱정되기도 한다. 혹자는 해외 유명 인사들에게도 스피치라이터가 있어 연설문을 대신 써주는데 뭐가 문제냐, 바쁘신 분이 모든 걸 어떻게 다 알 수 있냐고 하겠다만, 스피치라이터가 연설자의 지식과 삶을 반영해 쓴 것을 연설자가 꼼꼼히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 자신의 연설로 만드는 것이지 그냥 따라 읽는 게 아니다.
 
축사의 앞부분에는 내외귀빈이라 불리는 참석자를 의전 순서대로 불러 감사를 표하는 부분이 필수적으로 있는데 누가 앞이고 뒤인지 순서를 정함에 있어 실무자들의 고뇌가 컸을 것으로 짐작된다. 사실 많은 행사들이 의전을 잘 준수했느냐로 평가되니 참 허무하기도 하다.
 
의례적으로 잠깐 참석해 누군가 써준 영혼 없는 글을 읽는 자리가 빛날 리 없건만 그렇게라도 자리를 빛내주기를 바라는 주최 측의 요구와 결탁한 공허한 행사가 너무 많다. “촛불은 자신을 밝히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는 노왑 잔-피샨 칸의 말이 떠오른다. 자신을 빛내고 형식적으로 자리만 빛내는 건 공허하다. 주위와 사람들의 마음을 밝히는 게 빛의 의미다.
 
송인한 연세대 사회복지학 교수·사회참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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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