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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경제와 안보 ‘두 마리 토끼’ 잡은 베트남의 비결

권율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권율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세계의 이목이 베트남으로 집중하고 있다.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와 함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베트남 공식방문이 예정돼 있어서다. 이를 계기로 ‘베트남식 개혁 모델’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도 지난해 4월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도보 다리 회담’을 하면서 베트남식 개혁·개방에 관심을 표명했다.
 
베트남 공산당은 1986년 6차 전당대회에서 ‘도이머이(쇄신) 노선’을 채택하고 전면적인 경제 개혁을 추진했다. 구(舊)소련 및 동유럽 국가들과는 달리 당이 주도하는 위로부터의 개혁을 추진하면서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시장경제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개혁 초기에는 보수파와 개혁파의 대립과 갈등이 상존했으나 베트남 특유의 실용주의적 개혁 정책은 당의 사회 통제력을 유지하면서 정치 안정과 경제 성과를 거두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동안 김정일 시대에 중국식 개혁·개방 현장을 자주 둘러봤던 북한이 베트남식 개혁 모델에 관심을 보인다는 것은 흥미롭다. 중국은 1978년 이후 1990년대 초반까지 점진적인 가격 자유화를 추진했다. 이에 비해 베트남은 2~3년의 짧은 기간에 농업 생산물의 가격 자유화로부터 환율에 이르기까지 포괄적이고 전면적인 가격자유화를 통해 개혁의 기반을 다졌다. 중국과는 달리 베트남은 개혁 초기 단계부터 전면적인 가격자유화조치를 단행하고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재정·금융개혁을 추진했다. 이에 따라 부분적으로 경제 제재가 완화되면서 1993년에는 세계은행 주관으로 1차 원조 공여국 회의가 개최되고, 국제금융기관과 주요 서방국가의 본격적인 지원이 시작됐다.
 
오랜 전쟁 끝에 남북통일을 이뤘지만, 1979년 미·중 수교에 이어 미·소 진영의 냉전체제가 붕괴하는 와중에 베트남은 대외적으로 고립됐다. 이런 상황에서 베트남은 도이머이 개혁을 단행해 전면적인 개혁·개방체제로 전환했다. 실용주의 노선에 따라 ‘체제 전환’과 ‘경제 발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다.
 
시론 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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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가능하게 한 결정적인 계기는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와 통상 환경 개선이었다. 1989년 베트남군의 캄보디아 철수를 계기로 미국은 베트남과 대화를 재개한다. 리처드 솔로몬 당시 미국 국무부 차관보가 제안한 ‘국교 정상화를 위한 로드맵’에 따라 1992년 임시연락사무소를 설치하고 베트남에 대한 경제제재 조치를 전면 해제했다. 베트남 전쟁 종전 20주년이던 1995년 양국은 국교를 수립했다. 미국이 베트남에 최혜국대우(MFN) 지위를 부여하는 무역협정 체결 협상은 난항을 거듭하다 2000년에 극적으로 타결됐다.
 
마침내 베트남이 미국 시장에 대한 우회 수출기지로서 급부상하면서 외국인 직접투자(FDI)가 쇄도하기 시작했고, 1995년 18억 달러였던 FDI 규모는 베트남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2007년 70억 달러로 급증했다. 저임 노동력을 활용한 외자 주도형 수출 확대전략이 큰 성과를 거뒀다. 미국과의 통상환경을 개선하고 WTO 가입을 통해 국제사회의 일원이 된 베트남은 국제규범 준수를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개혁·개방 이후 베트남의 연평균 성장률은 6.7%를 기록하고 있고,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7%를 넘어서면서 주변 동남아국가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1992년 12월에 한국과 베트남이 수교한 이후 7000건 이상의 투자가 이뤄졌다.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기업이 고용한 현지 인력만 최소 70만~80만 명에 달한다. 양국 관계는 최근 들어 용광로처럼 뜨겁다. ‘박항서 신드롬’으로 축구 열기가 뜨거운 베트남은 한국엔 황금알을 낳는 시장이다. 비즈니스 환경이 나빠진 중국을 대체할 ‘포스트 차이나’로 주목받는 베트남에서 한국은 투자 1위국으로 부상했다. 매년 무역흑자가 300억 달러 규모에 달하고 있다. 양국 정부는 2020년을 목표로 교역 규모를 1000억 달러로 확대하기로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이 하노이를 방문해 개혁·개방의 성과를 직접 확인하고 미국과의 국교정상화 이후 새로운 길을 모색하길 바라는 것 같다. 그러나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새로운 북·미관계가 수립되고 비핵화 프로세스가 순조롭게 추진되더라도 북한이 곧바로 베트남식 개혁 모델에 따라 전면적인 경제 개혁을 추진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개혁 초기 단계부터 베트남의 성공 신화에 기여해온 한국기업의 진출 경험과 성과는 남북협력에도 귀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김 위원장의 베트남 첫 방문이 북한 경제에 새로운 이정표가 되기를 기대한다.
 
권율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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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