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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뒤끝 작렬' 한한령, 한류의 미래는 있는가

기로에 선 한·중 문화콘텐트 사업
‘뒤끝 작렬’이라는 표현이 적당해 보인다. 중국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시스템)배치를 이유로 내린 ‘한한령(限韓令)’을 두고 하는 말이다. 2년 반 여가 지난 지금, 한류 문화 콘텐트에 대한 중국의 제재는 언제 풀릴지 기약이 없다. 양국 간 대중문화 교류에 물꼬가 트였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다.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지나도 늦지 않다(君子報仇,十年不晩)’는 그들의 심성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중국에서의 한류 비즈니스는 이제 끝인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사드로 꼬인 한중 관계가 표면적으로나마 정상화된 건 2017년 10월이었다. 당시 양국 외교부는 “모든 분야의 교류협력을 정상적인 발전 궤도로 조속히 회복시켜 나가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실질적으로는 어떻든, 사드 사태는 봉합 수순을 밟았다. 한국을 찾는 중국 관광객은 늘기 시작했고, 뷰티 산업을 대표하는 화장품도 흔들림 없이 대중 수출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한류 콘텐트는 꽉 막힌 장벽을 뚫지 못했다. ‘메이킹 패밀리’, ‘시칠리아의 햇빛 아래’ 등 한한령 이후 중국에서 상영된 몇몇 합작영화의 성적은 참담했다. TV 드라마, 예능 중심의 방송콘텐트나 K팝의 중국 진출도 이렇다 할 계기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한국 드라마에 대한 방송 심의가 떨어졌다는 얘기도 들리지 않는다.
 
우리에게 멀어졌던 지난 2년 반, 그동안 중국 콘텐트 업계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그 시장은 다시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는 것인가. 영화 시장을 놓고 살펴보자.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우선 콘텐트 품질이 높아지고 있다. ‘특수부대 전랑2’, ‘홍해 행동’ 같은 노골적인 애국주의 블록버스터를 거쳐 ‘유랑 지구’처럼 비교적 세련된 영화가 나오기 시작했다. 중국 우주 비행사들이 소멸 위기를 맞은 지구를 구한다는 내용이다. 개봉 3주 만에 43억 위안(약 7200억원)이상 매출을 올리면서 단숨에 역대 박스오피스 2위로 뛰어올랐다. 할리우드를 모방함으로써 세계로 뻗어가겠다는 중국 문화 콘텐트의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중국 영화는 이제 SF 장르에서도 도약을 꿈꾸고 있다.
 
중국은 한류가 빠져나간 자리를 인도, 태국 등 동남아로 채우려는 움직임이다. 2018년 박스오피스 30억 위안(약 5000억 원)을 기록한 영화 ‘나는 약신이 아니다’는 인도에서 백혈병 복제약을 구해 파는 ‘약장수’ 이야기를 코믹하면서도 진지하게 다뤘다. 사회성과 오락성을 겸비한 새로운 중국식 장르의 출현이었다. 이 영화가 인도 로케이션을 시도한 건 주목할 만하다. 2017년에는 인도 영화 ‘씨름해요 아빠’(당갈), 태국의 ‘나쁜 천재’는 2017년 13억 위안(약 2200억 원)을 벌어들여 박스오피스 7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데올로기 통제는 더 강화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의 ‘당(공산당)건설 노선’이 강화되면서 문화 콘텐트에도 사회주의 이념의 순결성, 국가주의가 짙게 반영되고 있다. 자유주의 성향이 강한 한국 문화상품에 대한 중국 검열 당국의 거부감이 더 커졌다. ‘별에서 온 그대’, ‘태양의 후예’ 등과 같은 TV 드라마나 ‘런닝맨’, ‘윤식당’ 등이 중국의 안방을 점령하는 사태를 두고 볼 수 없다는 얘기다.
 
정책 기조도 바뀌고 있다. 지난해 4월 기존 국가언론출판광전총국(광전총국)이 국가라디오TV총국, 국가언론출판서, 국가판권국, 국가영화국 등 4개 부서로 분리됐다. 이 부서들은 모두 공산당 중앙선전부가 관리한다. 국가영화국은 선전부 부주임이 국장을 맡는 식이다. 당국의 관리는 더 세분되고, 엄격해지고 있다. 이런 조직 개편은 ‘사회주의 신시대’를 천명하고 나선 시진핑 시기의 전형적인 문화 통제 방식으로 받아들여진다.
 
한류의 중국 진출은 당분간 기대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한-중FTA의 서비스·투자 분야 후속 협상이 진행 중이지만, 중국이 열쇠를 쥐고 있어 전망은 그다지 밝지 않다. 한국의 문화 콘텐트를 보는 중국의 시각도 많이 변했다. 그들은 미국만 바라볼 뿐, 한국은 점점 배움의 대상에서 벗어나고 있다.
 
포스트 한한령 시대, 한류는 어디로 가야 할까? 우선 기획·제작 과정에 꼭 필요한 기초 콘텐트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웹툰, 캐릭터, 교육 콘텐트, 애니메이션 등은 중국의 ‘이념 검열’을 피할 수 있어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한류 콘텐트에 대한 중국 내 수요가 사라진 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콘텐트를 만드는 과정에서의 수요는 여전하다. 다만 시장과 정부가 엇박자를 내고 있을 뿐이다.
 
우회 전략도 필요하다. 높은 장애물에 둘러싸인 대륙만 고집할 일이 아니다. 홍콩, 대만, 싱가포르, 동남아 화교 등 범중화권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이 지역 화교들은 문화 소비를 위해 언제든 주머니를 열 준비가 돼 있다. 이들이 선호하는 콘텐트를 통해 한류에 대한 중화권의 충성도를 지속하면서, 대륙 중국의 변화를 기다리며 후일을 도모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더욱 정교한 소비자 분석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대체 시장을 찾아야 한다. 이미 많은 문화콘텐트는 우리 정부의 신남방정책에 힘입어 동남아시아로 활발히 진출하고 있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이 새로운 시장으로 떠올랐다. 영화 ‘내 안의 그놈’은 최근 베트남, 인도네시아, 대만에 판매됐다. 미국도 주목받고 있다. ‘굿닥터’, ‘복면가왕’ 등이 리메이크돼 호평을 받고 있다. 글로벌 보이그룹으로 우뚝 선 방탄소년단은 두말할 나위 없다.
 
중국에 대한 관심을 버려서도 안 된다. 중국 문화콘텐트가 세계를 석권하겠다는 야망을 버리지 않는 한, 한류는 반드시 넘어야 할 큰 산이다. 최소한 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대중문화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한국은 중국 문화콘텐트가 거쳐 가지 않을 수 없는 중요한 테스트 베드이다. ‘중국은 언젠가 다시 열릴 매력적인 시장’이라는 걸 염두에 두고 우리의 내적 역량을 키워야 한다.
 
물론 그렇다 해도 그전처럼 한류가 일방적으로 진출하는 상황은 아닐 것이다. 중국 콘텐트의 질적 성장을 무시할 수 없다. 중국은 우리의 새로운 경쟁 상대가 될 수도 있다. 한류 비즈니스는 지금보다 더 복잡한 방정식이 기다리고 있다. 멀어진 중국 시장, 오히려 더 연구해야 할 이유다.
 
◆임대근
한국외대 대학원 글로벌문화콘텐트학과 겸 중국어통번역학과 교수. 문화콘텐트비평가. 사단법인 아시아문화콘텐트연구소 대표. 중국영화, 트랜스 차이나, 문화콘텐트 연구 등을 통해 아시아에서 대중문화의 상호 작용 문제에 관심을 갖고 연구, 강의, 비평, 번역 등을 하고 있다. 최근 출간한 책으로 ‘세계의 영화, 영화의 세계’(공저) 등이 있다. 

  
임대근 한국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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