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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그 시절 도시락 반찬을 아직도 미안해하신다

기자
박헌정 사진 박헌정
[더,오래]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18)
선물로 받은 홍삼환을 하나 까먹고 빈 통을 버리려다 보니 내용물을 하나씩 담았던 금빛 플라스틱 케이스가 너무 고급스러워 그냥 버리기 아깝다. 이런 개별포장이 원가를 부풀리는 요소일 텐데… 여행용 양념 통으로 쓰려고 잘 두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예쁘고 단단한 케이스가 귀하던 시절에 도시락 싸서 다니던 게 생각났다.
 
내가 사용하던 도시락통에 옛날 기억을 떠올려 밥을 담아봤다. 그때는 5분 만에 뚝딱 해치웠는데 지금 먹어보니 엄청나게 많은 양이었다. [사진 박헌정]

내가 사용하던 도시락통에 옛날 기억을 떠올려 밥을 담아봤다. 그때는 5분 만에 뚝딱 해치웠는데 지금 먹어보니 엄청나게 많은 양이었다. [사진 박헌정]

 
나는 도시락을 못 싸 와 굶었다거나 새까만 꽁보리밥만 먹었다고 말하는 세대는 아니다. 새마을운동이 성과를 거두고 통일벼 증산이 이루어진 1970년대 초중반부터 서울의 평균적인 생활에서는 배고픔도 크게 줄었던 것 같다. 물론 그래도 먹을 것이 무엇보다 반갑던 시대였다.
 
요즘은 학교 급식 덕분에 개학이 다가와도 엄마들의 도시락 걱정이 없지만 아니, 오히려 주부들이 “개학 만세, 드디어 해방이다!” 외친다지만 예전에 우리 삼 형제를 키우던 어머니의 집안일은 개학과 함께 두 배로 늘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새벽부터 일어나 사부자의 도시락을 준비하는 일이었다.
 
조금 부잣집 아이들은 까맣고 둥근 보온 도시락통을 가지고 다녔는데, 우리는 그게 없었다. 갖지 못할 만큼 비싼 것은 아니었지만 외벌이 공무원의 수입으로 알뜰하게 살아야 했다. 가방과 신발주머니 외에 짐이 하나 더 늘고, 약간의 보온기능 말고는 씻고 관리하기가 힘드니 네모난 양은 도시락통이 더 편리했을 것 같기도 하다.
 
도시락통 안에는 한쪽에 네모난 반찬 통, 나머지 4/5 정도의 공간은 밥, 그 위에는 젓가락을 대각선으로 놓았다. 달걀 후라이를 올려주는 날에는 오전 내내 행복감이 충만했다. 도시락은 어머니가 천으로 직접 만든 주머니에 넣거나 깨끗한 보자기로 꼭 묶어주셨고, 김치나 깍두기는 국물이 새지 않도록 병에 따로 담았다.
 
그런데 요즘의 락앤락 같은 밀폐 용기처럼 꽉 잠기지도 않았고, 물자가 귀한 시대라 뚜껑이 헐거워질 때까지 사용했다. 비닐봉지도 부족할 때였으니 어떤 날은 라면 봉지에 담아 고무줄로 감아주시면서 “이건 그대로 반듯하게 세워서 들고 가” 하셨다.
 
편의점 도시락은 도시락 본연의 장점과 수요자들의 현실을 잘 파고든 상품 같다. 그런데 금세 질리는 것 같았다. [사진 박헌정]

편의점 도시락은 도시락 본연의 장점과 수요자들의 현실을 잘 파고든 상품 같다. 그런데 금세 질리는 것 같았다. [사진 박헌정]

 
아이들은 책임감 있는 택배회사 직원이 아니다. 가방을 신나게 앞으로 흔들고 뒤로 흔들고 가다가, 등굣길에 친구라도 만나면 낄낄대며 가방으로 서로 치고받거나 가방 휙 던져놓고 남의 집 대문 앞이든 담벼락 아래든 자리 잡고 앉아 딱지 따먹기도 하고 떠들기도 한다. 그 병이 반듯하게 서 있을 리 없다.
 
그러니 교과서 모서리마다 옅은 감귤 색의 김칫국물 마른 자국과 꾸릿한 냄새를 달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당시 중고생들 세계에서는 만원 버스에서 남의 가방을 들어주었는데 김칫국물이 새어 나와 교복 바지가 축축하더라는 것도 단골 에피소드였다.
 
요즘 아이들은 급식 이야기를 별로 하지 않지만, 우리 세대의 도시락 추억은 끝이 없을 것 같다. 겨울에는 아이들 도시락을 꺼내라고 해서 난로에 올려 덥혀주시던 자상한 선생님도 계셨다. 위아래를 자주 바꾸지 않으면 점심시간에 누룽지를 긁어야 했다.
 
중학교 때부터는 아이들이 알아서 난로 위에 가져다 놓으면 난롯가에 앉은 친구 한둘이 수업은 제쳐놓고 도시락으로 위아래 블록쌓기 놀이를 하면서 봉사해주었다. 학교에서 보리차를 끓여 나눠주면 주번이 주전자에 받아와서 돌아다니며 도시락 뚜껑에 부어주기도 했다.
 
식욕 왕성한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대부분 3교시 끝나고 쉬는 시간에 뚝딱 해치웠다. 그러면 4교시 수업에 들어와 냄새난다며 화내는 선생님도 있었고 웃어넘기던 분도 있었다. 할머니와 함께 어렵게 살던 내 친구, 커다란 도시락통에 할머니가 얼마나 밥을 꾹꾹 눌러 싸주시는지, 양손에 젓가락을 나눠 들고 밥을 찢다시피 해서 떡처럼 베어 물며 김치, 멸치와 씩씩하게 잘도 먹었다.
 
요즘은 11월이면 인터넷에 '수능 도시락'이 검색어 1위다. 40대 엄마들에게는 일 년에 그 하루 도시락 싸는 게 연탄불 가는 것만큼이나 낯선 일이 되었다. [중앙포토]

요즘은 11월이면 인터넷에 '수능 도시락'이 검색어 1위다. 40대 엄마들에게는 일 년에 그 하루 도시락 싸는 게 연탄불 가는 것만큼이나 낯선 일이 되었다. [중앙포토]

 
요즘은 11월이면 인터넷에 ‘수능 도시락’이 검색어 1위다. 40대 엄마들에게는 일 년에 그 하루 도시락 싸는 게 연탄불 가는 것만큼이나 낯선 일이라 반찬은 어떤 것으로 할지, 시험 보는 아이에게 소화 잘될 음식이 무엇일지 정보를 교환한다. 긴장되고 자신 없어 전날 동네 반찬가게에 주문했다는 엄마도 있다. 학교급식제도가 없었다면 엄마들의 사회활동이 지금보다 훨씬 더 힘들었을 것 같다.
 
회사에 구내식당이 없었다. 때 되면 주는 대로 뚝딱 먹고 올라오는 것도 괜찮은데 매번 바깥에 나가려니 꽤 귀찮고 뭘 먹을까 고민하는 것도 은근히 스트레스다. 게다가 음식이 너무 자극적이고 가격도 비싸다는 생각이 들어 도시락 문화가 확산되면 사회적으로 더 건강해지고 주머니 사정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한편으로는 요즘 같은 1~2인 가구 시대에 그걸 어떻게 준비할까 싶고 괜히 자영업자들만 더 고생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틈을 파고들어 편의점 도시락만 떼돈 버는 것 같다. 몇 번은 먹을 만하더니 음식이 달고 채소류 반찬이 적어서인지 금방 질렸다.
 
아직까지 도시락 이야기만 나오면 어머니께서는 옛날에 더 맛있는 반찬을 싸주지 못한 걸 미안해하신다. “그 좋아하던 소시지 좀 실컷 사다 먹일걸” 하면서 말이다. 아마 모든 어머니가 그럴 것 같다. 그 도시락을 너무나 맛있게 먹고 이렇게 잘들 컸는데 왜 미안해하시는지 모르겠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왔던, 그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던 시대에 대해서 말이다.
 
박헌정 수필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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