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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에 박힌 디폴트 세팅,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기자
한순 사진 한순
[더,오래] 한순의 인생후반 필독서(15)
신년이 되면 직원들에게 『이것은 물이다』 를 읽도록 권한다. 해결되지 않을 문제를 잠시 내려놓고 동네 벤치에 앉아 이 책의 원고를 확인했다. 원고를 읽은 후, 좀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사진 pixabay]

신년이 되면 직원들에게 『이것은 물이다』 를 읽도록 권한다. 해결되지 않을 문제를 잠시 내려놓고 동네 벤치에 앉아 이 책의 원고를 확인했다. 원고를 읽은 후, 좀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사진 pixabay]

 
매년 연초 직원들에게 권하는 필독서가 있다. 작고 얇은 책인데, 표지에 물고기 한 마리가 있는 『이것은 물이다』라는 책이다. 신년회 대신 시행되는 권독으로 거의 매년 되풀이한다.
 
이 책의 원고를 검토할 무렵, 나는 잠을 자다 깨면 어떤 문제에 사로잡혀 다시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로 첨예한 문제에 마주하고 있었다. 나 스스로도 자신의 모습에 좀 당황하고 있었다. 마음이 흔들린 탓인지 A4 용지 두세장 분량의 원고가 눈에 들어오지 않아, 가방에 넣어서 다니다가 늦은 점심을 해결하려 김밥을 먹으며 이 원고를 꺼내 들었다.
 
순간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잠시 내려놓고 분량이 얼마 되지 않는 원고를 한번 읽어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의 힘이었는지 원고의 초반부가 빨려들 듯 읽혔다. 나는 김밥집을 나와 이 느낌을 놓치기가 싫어 동네 조그만 공원 벤치에 앉아 이 원고를 읽었다.
 
연초 직원들에게 권하는 필독서 『이것은 물이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고, 원고와 나만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고개를 들었을 때는 좀 전의 나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말하자면 방향 같은 것이 변해 있었다. 내 속으로 나의 감각으로 가득 찼던 생각의 방향이 타인과 밖으로 향해 있었다. 이 책에서는 ‘디폴트 세팅(default setting, 기본 설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는 왜 지독히도 자기중심적일까.
 
“이는 컴퓨터의 디폴트 세팅 같은 것으로, 태어날 때부터 이미 우리 머릿속 전자판에 영구히 박혀 있는 장치라고도 하겠습니다. 자, 생각해봅시다. 지금껏 나 자신이 절대적인 중심에 존재하지 않았던 체험이라고는 한 번도 없지 않습니까. (중략)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감정은 어떤 방법으로든 전해지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반면 나 자신의 생각과 감정은 직접 일어나는 일이며, 절박하고, 실존하는 현실입니다.”
 
데이비드 포스터 윌리스, 『이것은 물이다』, 2012, 나무생각

데이비드 포스터 윌리스, 『이것은 물이다』, 2012, 나무생각

 
이 책의 저자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미국의 100대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다. 그는 인생, 인간 본성 그리고 영구불변의 성취에 관해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짧은 강연으로 줄인다는 도전을 받고 쓴 이 놀라운 에세이를 통해 그의 철학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여러 질문을 제기한다.
 
“일상에 얽매여 무의식적으로 소일하는 생활을 어떻게 하면 그만둘 수 있을까?”
“자기중심주의로 가득한 우리들의 머릿속을 어떻게 하면 남을 배려하는 입장으로 변화할 수 있을까?”
 
간단한 일로 착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심오한 문제를 제기하는 이러한 질문들의 해답을 찾으면서 그는 현대인의 삶에 대한 의견을 희극적으로 진술하며 인간 본성의 뿌리 깊은 근원을 파헤친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가 매일 마주치는 가장 근본적이며 가장 중요한 문제를 제시한다. “우리는 이 세상을 어떤 태도로 대해야 하는가?”
 
『이것은 물이다』는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가 2005년 5월 케니언대학 졸업식에서 한 주제 강연문으로, 현대의 거장 가운데 한 사람의 유산이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강연에서 미래, 성공, 성취, 꿈, 희망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다만 우리는 이 세상을 어떤 태도로 대해야 할지에 대해 문제를 제시했다. 앞으로 살게 될 일상, 죽은 사람같이, 디폴트 세팅, 생각하는 법, 깨어 있는 삶에 대해 말했다. [사진 pixabay]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강연에서 미래, 성공, 성취, 꿈, 희망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다만 우리는 이 세상을 어떤 태도로 대해야 할지에 대해 문제를 제시했다. 앞으로 살게 될 일상, 죽은 사람같이, 디폴트 세팅, 생각하는 법, 깨어 있는 삶에 대해 말했다. [사진 pixabay]

 
그는 이 강연에서 미래, 성공, 성취, 꿈, 희망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대신 졸업식장에서 어느 어른도 말하지 않은 일상, 죽은 사람같이, 디폴트 세팅, 생각하는 법, 깨어 있는 삶에 대해 말한다. 졸업 후 곧바로 치열한 경쟁을 통해 고도의 정신노동을 해야 하는 반복되는 일상과 그럴싸한 모습으로 죽은 사람같이 살게 될 날에 관해 이야기한다.
 
태생적 ‘디폴트 세팅’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이것이야말로 여러분이 받은 인문학 교육의 진가라고 나는 감히 주장하고 싶습니다. 성인으로서의 삶을 그저 편안하고 순조롭게, 그럴싸한 모습으로 죽은 사람같이 살지 않는 방법, 무의식적인 일상의 계속이 아닌 삶을 사는 방법, 또한 자기 머리의 노예, 허구한 날 독불장군처럼 유일무이하며 완벽하게 홀로 고고히 존재하는 태생적 디폴트 세팅의 노예가 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중략) 해골 크기만 한 우리의 조그만 왕국에서 만물의 중심에 홀로 군림하는 그 자유 말입니다.”
 
참으로 싸하기 그지없는 이 귀한 메시지는 출간 후 나에게 구급약처럼 쓰인다. 디폴트 세팅 덕분인지, 내 속에서 빠져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수시로 내 속으로 빠질 때마다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대학 졸업생뿐만 아니라, 인생의 졸업을 할 때까지 곁에 두어야 할 책으로 나는 이 책을 꼽고 싶다. ‘자기’라는 늪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마다 이 책은 버팀목이 되어 준다. 짧고 강력한 메시지로 가장 빠른 시간에 생각 방향의 전환을 이루어준다. 나도 직원들도 이 책을 한 번 읽고 한 해를 시작하는 이유다.
 
한순 도서출판 나무생각 대표 tree333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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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