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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5시간 거리, 열차 60시간···김정은 '고난의 행군' 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열차 통과를 앞둔 23일 밤 중국 단둥의 중롄 호텔에서 객실의 불이 일제히 꺼져 있다. 신의주와 단둥을 잇는 압록강 철교가 내려다보이는 이 호텔은 전날부터 객실을 일제히 비웠다. 사진=신경진 특파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열차 통과를 앞둔 23일 밤 중국 단둥의 중롄 호텔에서 객실의 불이 일제히 꺼져 있다. 신의주와 단둥을 잇는 압록강 철교가 내려다보이는 이 호텔은 전날부터 객실을 일제히 비웠다. 사진=신경진 특파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결국 비행기 대신 열차를 선택했다. 23일 밤 10시 18분께 김 위원장의 22량 짜리 검은색 전용열차가 북중 국경 지대인 단둥을 지났다. 단둥은 신의주와 압록강 철교로 연결돼 있다. 압록강 철교가 내려다보이는 단둥은 전날부터 객실을 모두 비워 김 위원장 전용열차의 이동에 대비했다. 앞서 타스 통신은 김 위원장이 이날 오후 전용열차로 평양을 출발했다고 전했다.
 

60시간 열차 여정 택한 이유
트럼프에 '중국 뒷배 과시'하며
시진핑 향해 '무언의 항의' 의미
중국·베트남 국경 시찰 의도도

열차로 이동함에 따라 베트남까지 5시간 안에 갈 수 있는 여정이 12배나 되는 60 시간 안팎으로 늘었다. 일반의 상식을 깨는 파격적인 행보다. 빠르고 편안함 대신 ‘고난의 행군’을 택했다. 김 위원장의 ‘열차 정치학’엔 과연 어떤 뜻이 담겼을까.
 
동북아 정세에 정통한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김 위원장이 중국 대륙을 동북에서 서남으로 사흘 가까이 가로지르며 내려오는 건 결코 시간 낭비가 아니다. 크게 세 가지 효과를 노리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단둥역 앞 주차장이 23일 낮 공안당국에 의해 출입이 차단돼 있다. 사진=신경진 특파원

중국 단둥역 앞 주차장이 23일 낮 공안당국에 의해 출입이 차단돼 있다. 사진=신경진 특파원

첫 번째는 물론 대미 협상력 강화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북한엔 중국이란 튼튼한 뒷배가 있다는 걸 각인시키는 효과다. 이는 하노이 협상에서 북한이 미국에 통 크게 양보하는 일은 없으리라는 점을 시사한다고 한다.
 
회담 결과가 여의치 않을 경우 북한은 김정은 위원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밝힌 바와 같이 ‘새로운 길’을 가겠다는 이야기다. ‘새로운 길’이란 더는 미국과의 비핵화 대화에 얽매이지 않은 채 북한의 살길을 찾겠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중국과 베트남 국경 시찰이다. 소식통은 김 위원장이 중국 광시(廣西)성에서 베트남 랑선성으로 직접 열차를 타고 넘어가며 중국과 베트남 사이에서 벌어지는 교류 및 무역의 현장을 직접 챙겨볼 것으로 봤다.  
 
61년 전 김 위원장의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은 하노이를 방문하기 위해 중국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에서 비행기를 탔다. 김 위원장이 그저 ‘김일성 따라하기’를 하려 한다면 광저우까지만 열차를 이용하면 된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할아버지 따라하기에서 플러스 알파를 감행할 것이란 이야기다. 중·베 변경 무역의 실상을 현지에서 직접 봄으로써 장차 크게 열리게 될 북·중 변경 무역의 방향과 관련해 교훈을 얻으려 한다는 것이다.

23일 오전 단둥과 신의주를 잇는 압록강 철교를 지나는 북중 우호열차. 사진=신경진 특파원

23일 오전 단둥과 신의주를 잇는 압록강 철교를 지나는 북중 우호열차. 사진=신경진 특파원

세 번째 이유가 가장 중요하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그건 바로 “60여 시간의 중국 내 열차 이동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향한 60여 시간의 북한 존재 과시”라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도 북한이 원하는 ‘제재 완화’와 관련해 미국으로부터 속 시원한 대답을 끌어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제재를 풀려면 북한이 대담한 비핵화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북한 스스로 이 점에선 주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같은 교착 상황에서 북한은 뭘 해야 하나. ‘중국 뚫기’가 답이다. 북한 입장에선 중국과의 관계만 완전 정상화되면 한국이나 미국의 도움은 그리 필요하지 않다. 중국과의 경제 교류만으로도 북한 경제는 굴러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북·중 관계가 애매하다는 점이다. 애증이 교차한다. 중국은 북한이 미국에 쏠릴까 좌불안석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북핵에 절대 반대다. 북한 핵 보유가 한국 및 일본 등 동북아에 핵 도미노 현상을 가져오며 중국의 절대적 지위를 위협할까 저어해서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이런 상황에서 김 위원장의 대중 정책은 투트랙이다. 먼저 시 주석의 염려 덜기다. 지난해 3월부터 올해 1월까지 10개월 사이에 무려 네 번이나 중국을 찾아 시 주석을 만났다. 만날 때마다 가장 강조하는 게 양국 고위층 교류와 전략적 소통이다.  
 
북·중 최고 지도자 간의 속 깊은 이야기를 통해 북한이 미국 편에 서는 경우는 없을 것이란 점을 거듭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와 연동돼 있다. 시 주석의 걱정을 덜면서 김 위원장은 중국의 제재 풀기를 강력하게 요구 중이다.  
 
사실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에 나서는 것도 중국에 제재 완화의 명분을 주기 위한 성격이 강하다. 미국과 비핵화 회담을 하면서 차츰차츰 진도를 나가고 있으니 중국 입장에선 제재를 해제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주문이다.  
 
중국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비핵화 진도에 맞춰 유엔 안보리의 제재 수위를 낮춰야 한다고 주장을 하는 배경엔 이 같은 북한의 압력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김 위원장의 열차 이동 상황은 결국 시시각각 시 주석에게 보고되며 60여 시간의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단둥=신경진 특파원  you.sangch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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