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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발승 수백 명의 행렬, 600년 고도의 새벽 깨우다

루앙프라방의 상징 탁발 행렬. 승려에게 음식을 공양하는 종교 의식이 매일 새벽 진행된다. 김경빈 기자

루앙프라방의 상징 탁발 행렬. 승려에게 음식을 공양하는 종교 의식이 매일 새벽 진행된다. 김경빈 기자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을 꼽는 게 더 쉬운 여행지가 있다. 라오스 북부 산간도시 루앙프라방(Luang Prabang)이 꼭 그런 도시다. ‘동남아 여행지’라고 하면 으레 기대하는 요소를 이곳에서는 찾기 힘들다. 에메랄드빛 바다나 고급스러운 풀빌라는커녕 입이 떡 벌어지는 유적도 없다. 인구 5만 명 남짓한 이 소도시는 키 낮은 가옥과 아담한 불교 사원으로만 채워졌을 뿐이다.  

아세안의 유산④라오스 루앙프라방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불교국가답게 주민 90% 매일 참여
사원 80개 옹기종기 '소확행'에 푹

메콩강가 고요하고 평온한 도시엔
베트남전 때 불발탄 얄궂은 상흔도

 즐길 거리는 한적한 거리를 산책하거나, 도시를 감싸는 메콩(Mekong)강 바라보며 맥주 한 잔 홀짝이는 게 전부다. 대신 유명 관광지에서 느낄 수 없는 소박하고 고요한 정취를 누릴 수 있다. 요즘 말로 하면 작지만 확실한 행복 ‘소확행’을 누릴 수 있는 여행지인 셈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매료 돼 책 써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루앙프라방. 양보라 기자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루앙프라방. 양보라 기자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베트남 하노이 공항에서 라오스 루앙프라방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기다리는 중에 베트남 현지인에게 뜻밖의 질문을 들었다.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이 물음에 선뜻 대답하지 못했던 하루키는 루앙프라방을 여행하고서 도시에 단단히 매료되고 말았다. 그러곤 훗날 낯선 이의 질문에 대답과 같은 책을 썼다. 책 제목은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로 달았다.
 루앙프라방 공항에 내려 도심지로 향하는 차에 올라 차창 밖을 바라봤다. 하루키에게 ‘루앙프라방에 도대체 뭐가 있기에 여행을 부추기는 책까지 썼냐’고 따지고 싶었다.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Vientiane)에 이은 제2의 도시라는데, 루앙프라방은 심심한 시골로만 보였기 때문이다. 번화가 씨싸왕웡(Sisavangvong) 거리도 번잡함은 간데없고 예스러운 2층 건물만 늘어서 있었다.
 “특별한 것이 없죠? 하지만 상상해보세요. 500~600년 전에도 루앙프라방은 이 모습 그대로였을 거예요.”
싱그러운 채소를 살 수 있는 루앙프라방 새벽시장. 양보라 기자

싱그러운 채소를 살 수 있는 루앙프라방 새벽시장. 양보라 기자

 루앙프라방의 밋밋한 첫인상에 시큰둥해 하고 있는데, 라오스 문화관광정보부 ‘반사이’ 사무관이 귀가 번쩍 뜨이는 얘기를 했다. 루앙프라방은 라오스 최초의 통일 왕조 란쌍왕국(1354~1707)이 출발한 거점이었고, 1563년 왕국의 수도가 비엔티안으로 천도하기 전까지 나라의 중심이었던 도시란다. 반사이는 란쌍왕국이 번성했을 당시의 모습이 고스란히 보존됐다고 덧붙였다. 덕분에 루앙프라방은 도시 전체가 1995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쓱 훑기만 했던 거리 풍경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흰색 벽에 빨간 지붕을 얹은 건물 한 채 한 채가 수백 년 역사를 간직한 문화재라고 생각하니 새삼 놀라웠다. 오래된 가옥이 여염집으로, 레스토랑으로, 카페로 활용되고 있어 더 특별했다. 루앙프라방에서 나고 자란 가이드 ‘비엥’은 “루앙프라방의 역사와 전통은 주민들의 생활방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고 자랑스러워했다. 비엥의 말은 이튿날 새벽 확인할 수 있었다. 
신성한 불교 의식인 탁발은 루앙프라방에서 650년 간 지속돼 왔다. 루앙프라방에 사원 근처 어디서든 매일 새벽 탁발 행렬을 볼 수 있다. 양보라 기자

신성한 불교 의식인 탁발은 루앙프라방에서 650년 간 지속돼 왔다. 루앙프라방에 사원 근처 어디서든 매일 새벽 탁발 행렬을 볼 수 있다. 양보라 기자

동자승이 왓쌘 사원 법당을 가로지르고 있다. 양보라 기자

동자승이 왓쌘 사원 법당을 가로지르고 있다. 양보라 기자

 오전 5시 30분. 루앙프라방 중심가에서 가까운 왓쌘(WatSene) 사원 앞을 찾아갔다. 사원 담장을 따라 주민들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곧이어 거리에 북소리가 울려 퍼지고 주황색 법복을 입은 승려 수백 명이 열을 맞춰 걸어왔다. 주민들은 정성스럽게 마련한 음식을 지나가는 승려들의 바리때에 조금씩 나눠 넣었다. 이 장면이 바로 루앙프라방의 상징과도 같은 탁발 행렬이다. 비엥은 “스님에게 정성스럽게 음식을 공양하는 의식이 란쌍왕국 때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반복돼왔다”고 소개했다. 
 “라오스는 불교국가고, 라오스 불교 문화 중심지가 루앙프라방입니다. 1000명의 승려가 이 도시에서 수행하고 있어요. 루앙프라방 주민의 90%는 매일 아침 탁발에 참여합니다.”
 승려들은 공양으로만 끼니를 때우고, 남은 음식을 가난한 이들에게도 나눠준단다. 루앙프라방에는 그래서 걸인이 없다. 이웃을 보듬는 사람들과 어느 것 하나 튀지 않은 도시 풍경이 참 닮았다고 생각했다.  
 
 오바마가 찾은 와 사원 왓씨앙통
붉은 색 벽에 화려한 유리 모자이크가 장식된 왓씨앙통 사원.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이 방문한 사원이다. 양보라 기자

붉은 색 벽에 화려한 유리 모자이크가 장식된 왓씨앙통 사원.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이 방문한 사원이다. 양보라 기자

 탁발 의식이 끝날 무렵 날이 밝았다. 아침 해가 뜨자 거리 곳곳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빛을 내는 건물은 죄다 지붕을 황금색으로 칠한 불교 사원이었다. 루앙프라방에는 사원 80개가 도시 곳곳에 흩어져 있다.  
 도시 어디에서도 사원이 보이는 게 인상적이었다. 이유가 있었다. 유네스코가 루앙프라방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면서, 높이 17~20m에 이르는 사원을 가리지 않도록 새로 짓는 건물 높이를 9m로 제한했다. 덕분에 루앙프라방에는 야트막한 동산과 같은 스카이라인이 유지됐다. 고층 건물이 빼곡한 도시에만 있다가, 루앙프라방의 뻥 뚫린 하늘을 바라보니 마음이 평온해졌다.
베트남전쟁 당시 미군이 라오스에 떨어뜨린 집성탄. 불발된 폭탄이 많이 라오스에 시한 폭탄 같은 위험이 됐다. 양보라 기자

베트남전쟁 당시 미군이 라오스에 떨어뜨린 집성탄. 불발된 폭탄이 많이 라오스에 시한 폭탄 같은 위험이 됐다. 양보라 기자

 이 평화로운 도시에 걱정거리가 뭐가 있을까 싶었는데, 반사이 사무관이 “라오스는 베트남 전쟁(1960~75)의 상흔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사연이 기구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라오스는 중립을 지켰는데도,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웃 나라 전쟁에 휘말렸다. 전쟁 당시 미군은 북베트남의 군수품 보급을 차단하기 위해 라오스 북부에 집속탄(소형 폭탄이 들어있는 탄) 2억7000만 개를 쏟아부었다.  
 이 폭탄 중에 8000만 개가 불발됐고, 라오스 곳곳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숨어있다. 이 때문에 라오스에서는 한해 수십 건씩 폭발 사고가 발생한다. 이 실상을 알리는 기념관이 루앙프라방 ‘UXO(UneXploded Ordinances)박물관’이다. 박물관에서 실물 불발탄을 보고, 전쟁 참상을 알리는 기록 영화를 관람했다.
 미국과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한국을 원망하지 않느냐고 질문했더니 가이드 비엥은 빙긋이 웃었다. “전쟁을 겪은 모두가 피해자”라며 “루앙프라방이 속죄하고 용서하는 평화의 여행지가 됐으면 좋겠다”는 답을 들었다. 그리고 함께 찾아간 곳이 왓씨앙통(WatXieng Thong) 사원이다. 2016년 미국 대통령으로는 최초로 버락 오바마가 사회주의 국가 라오스를 방문했는데, 그때 루앙프라방을 찾아와 왓씨앙통을 들렀다.
왓씨앙통 사원의 불상. 차렷 자세로 서 있는 불상은 라오스에서만 볼 수 있다. 비를 기원하는 의미가 담겼다. 양보라 기자

왓씨앙통 사원의 불상. 차렷 자세로 서 있는 불상은 라오스에서만 볼 수 있다. 비를 기원하는 의미가 담겼다. 양보라 기자

 루앙프라방의 사원들은 금칠을 두른 태국·미얀마 등 다른 불교국가에 비해 외양이 소박한데, 왓씨앙통은 예외였다. 란쌍왕조는 1559년 루앙프라방의 젓줄인 메콩강과 칸(Khan)강이 만나는 요충지에 사원을 세웠고, 대법당 내·외부를 화려한 벽화로 장식했다. 
 왓씨앙통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대법당 외벽의 유리 모자이크였다. 붉은 담벼락에 형형색색 유리로 나무를 표현해놨다. ‘생명의 나무’라고 불리는 이 모자이크는 사원이 지어질 당시가 아니라 베트남전쟁이 발발한 1960년 제작됐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스러져간 생명을 안타까워하며 하나씩하나씩 유리 조각을 붙였을 수행자의 마음이 전달되는 듯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왓씨앙통의 생명의 나무까지 관람한 뒤, 미국이 불발탄 제거에 9000만 달러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면서 부드러운 햇빛을 받아들인 생명의 나무가 빛났다. 메콩강 속으로 해가 잠길 때까지 고요하고 평온한 도시 루앙프라방을 타박타박 거닐었다.
 
여행정보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라오스는 한국보다 2시간 느리다. 화폐는 낍을 쓴다. 100킵 약 14원. 한국에 라오스 낍을 취급하는 은행이 없다. 미국 달러를 가져가 현지에서 환전해야 한다. 관광 목적으로 방문하면 15일간 무비자로 체류할 수 있다. 한국에서 루앙프라방까지 직항이 없다.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에서 국내선을 타면 1시간, 베트남 하노이에서 국제선을 타면 2시간이 걸린다. 한아세안센터에서 만든 앱 ‘아세안여행’을 받아가자. 날씨·환율·회화 등 알찬 여행정보가 담겨 있다.
  
루앙프라방(라오스)=양보라 기자 bora@joongang.co.kr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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