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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지우고 문장 다듬은 40년

마음산책's pick 
뉴욕은 교열 중

뉴욕은 교열 중

뉴욕은 교열 중
메리 노리스 지음
김영준 옮김
 
“교열자도 자신이 없어야 하는 순간을 알아야 할 때가 있다.”
 
까다로운 만듦새로 유명한 잡지 ‘뉴요커’의 교열자 메리 노리스의 『뉴욕은 교열 중』에서 가장 매력적이었던 문장이다. 한국에서 편집자는 보통 교열자이자 기획자이기도 해서 필요에 따라 가면을 바꿔 쓸 수 있지만, 편집과 교열, 팩트체킹 등의 업무가 엄격히 분리된 ‘뉴요커’의 교열자라면 곁눈질할 수 없는 외길의 앞날이 단조롭고 답답할 때가 꼭 있었을 것이다. 더욱이 책이 되기까지 몇 차례나 손질해야 할 게 자신의 글이 아니라 남의 글이라면, 또 장막의 앞보다는 뒤에서 문장과 문장부호 사이에 숨는 데 익숙해야 한다면 더러 회의감 따위에 빠지거나 혹은 되레 자기 이력을 스스로 미화하는 우스운 모습을 보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저 말을 비관적 태도로 쓰고 있지 않다. 다만 40년쯤 교열 일을 하면 자신을 드러내는 일은 중요해지지 않고, 거친 글도 매끈한 글도 좋은 점이 보이며, 그래서 거의 손대지 않고도 최고의 글로 다듬는 수준에 이른다는 것. 괜한 허세나 엄숙함은 낯간지럽다는 듯 웃긴 에피소드로 지면을 채운 그녀의 어조도 반갑다. 인칭대명사 속 성차별 얘기, 쉼표와 하이픈 남발, ‘F’로 시작하는 욕설의 처리 문제, 특정 연필에 대한 집요한 애착. 40년 한길을 걸으면 자기만의 이야기가 생기는 걸까. 어쩌면 어떤 것도 이야기로 만들 줄 아는 재능이 생기는지도 모르겠다. 편집자 생활을 열 몇 해 넘겼으면서 쉬 단조로움에 젖는 내겐 희망의 본보기이자 잠결에 얻어맞는 찬물 같다. 아직 한참 덜 겪었다고.
 
올 4월 메리 노리스의 두 번째 책이 미국에서 나온다. 긴 휴가를 얻어내 서양어의 모태인 그리스로 떠났다는데, 오래 흠모했다던 그리스어와 신화와 그곳 웨이터들에게서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기대된다.
 
이승학 마음산책 편집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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