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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의 시시각각] ‘붉은 깃발’ 뒤덮이는 한국 경제

김동호 논설위원

김동호 논설위원

문재인 대통령은 ‘붉은 깃발’과 싸우고 있다. 지난해 8월 ‘인터넷 전문은행 규제혁신’ 행사에서 영국의 적기조례법까지 거론하면서 규제 혁파를 외쳤다. 19세기 증기자동차가 운행되자 영국은 자동차 앞에 붉은 깃발(적기)을 든 기수를 앞세우고 속도를 제한하는 적기조례법을 만들었다. 문 대통령은 “이 법 때문에 결국 영국은 자동차산업에서 독일과 미국에 뒤처졌다”며 “혁신성장을 위한 규제혁신은 속도와 타이밍이 생명”이라고 역설했다.
 
이렇게 문 대통령이 직접 뛴 덕분에 성역 같았던 은산분리(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보유 제한) 규제가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해서는 10%에서 34%로 완화됐다. 지난달 17일부터 발효되자 비바리퍼블리카·SK텔레콤 등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은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K뱅크·카카오뱅크에 이어 제3, 제4의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향해서다.
 
문 대통령은 2017년 베이징 골목식당에서 모바일 결제로 모든 상거래가 이뤄지는 4차 산업혁명의 현장을 생생하게 체험했다. 이 경험을 통해 혁신 없이는 결국 경제를 질식시켜 국민이 덤터기를 쓰게 된다는 위기감을 느꼈을 터다. 신산업에 기존 규제를 면제하는 ‘규제 샌드박스’가 이달부터 허용돼 도심 수소차 충전 등이 가능해진 것도 이런 위기감의 결과다.
 
이렇게 시끌벅적하니까 붉은 깃발이 다 뽑힌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한국 경제는 되레 붉은 깃발들로 뒤덮이고 있다. 한류의 싹을 자르는 ‘아이돌 외모 규제’까지 나오는 지경이다. 국회와 정부가 경쟁하듯 붉은 깃발을 세우고 있다. 최대 진원지는 국회다. 20대 국회는 벌써 19대 국회의 두 배를 넘는 1만6000건의 의원입법안을 쏟아냈고, 이중 약 3000건이 규제 법안이다. 우리는 그간 입법은 국회 본연의 업무라서 무조건 존중해왔다. 그러는 사이 규제의 폭주가 횡행하고 있다. 정부 입법은 규제개혁위원회 심사라도 거치지만 의원입법은 심의도 거치지 않고 동료 의원끼리 내용도 모른 채 공동 발의해주는 ‘품앗이 발의’가 판을 친다.
 
기업들은 진퇴양난의 처지다. 뒤에선 규제가 목을 조르고 앞에선 글로벌 경쟁기업과 싸워야 한다. 그래도 “이것만은 못 참겠다”는 규제가 있으면 경제단체가 총대를 매고 정부에 건의한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기획재정부 관료들이 모두 공감했던 ‘일감 몰아주기 과세’ 개혁이 그런 경우다. 내부거래 차단을 위해 도입됐지만 특허 등 독점 기술력을 지닌 계열사와의 불가피한 거래는 제외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재벌 개혁 전도사로 불리는 김상조 위원장이 이끄는 공정거래위원회의 반발로 무산됐다. 기업들은 붉은 깃발 아래 신음할 수밖에 없다.
 
이러니 옛날 얘기 하나가 떠오른다. 칭기스칸이 세상을 떠나자 후계자 오고타이 칸이 명재상 야율초재에게 몽골 제국의 대개혁 방안을 물었을 때의 대답이다. “한 가지 이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은 한 가지 해로운 일을 줄이는 것만 못하고, 한 가지 일을 새로 만들어 내는 것은 한 가지 일을 줄이는 것만 못하다.” 800여 년 지난 지금도 맞는 얘기 아닌가.
 
현 정권이 주도한 최저임금 급격 인상, 획일적 근로시간 단축, 묻지마 탈원전은 안 벌였으면 부작용도 없었을 일들이다. 김대중 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A씨는 “능력이 없으면 그냥 (집에) 가만히 있는 것이 나라를 돕는 일”이라고 했다. 취약계층을 빈곤의 늪에 빠뜨린 정책 책임자들은 야율초재의 지혜와 통찰, 그리고 선배 장관의 충고를 겸허히 경청하라. 새로 일을 벌이고 규제를 만들어 세상을 더 혼란스럽게 하지 말고 차라리 붉은 깃발 하나라도 더 뽑는 노력에 힘을 쏟으란 얘기다.  
 
김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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