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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비평 - 공연] ‘라이온 킹’이 아동극이어야 하는 이유

정수연 뮤지컬 평론가

정수연 뮤지컬 평론가

지금은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지만 뮤지컬 ‘라이온 킹’(사진)은 2006년 국내 초연 때 참패를 기록한 적이 있다. 라이센스 공연이긴 했지만 디즈니의 뮤지컬이 일 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막대한 적자를 낸 채 막을 내린 일은 전 세계적으로 드문 경우였다. 여러 원인 중에 가장 큰 이유는 이 작품이 아동극으로 받아들여졌다는 데 있다. 아무리 잘 만들어졌다 해도 원작이 애니메이션인데다가 사자가 주인공이니 아이들한테 더 맞는 작품이겠거니, 작품을 향한 선입견은 작품의 유명세를 가볍게 이겨버렸다. 아동극에 대한 좁은 이해가 작품에 대한 편견으로 이어진 셈이다.
 
뮤지컬 ‘라이온 킹’

뮤지컬 ‘라이온 킹’

사실 ‘라이온 킹’을 아동극으로 보는 관점 자체는 문제 될 것이 없다. 이 작품의 많은 부분은 아이들의 눈높이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동물 캐릭터들이 무대 위에 그대로 재현되는 것을 볼 때 아이들의 열광은 기대 이상이다. 가면과 인형을 사용해 스크린의 평면을 입체화시킨 캐릭터들은 일단 애니메이션과 똑같아서 신기하고, 인간과 똑 닮아서 재미있다. 애니메이션을 재현하는 것은 기술의 영역이겠지만 인간화된 동물을 만들어내는 것은 온전히 상상력의 힘이니, 아이들은 무대 위에서 말하고 춤추는 동물 캐릭터들을 보면서 마치 그림책 친구를 눈앞에서 보는 것 같은 친숙함을 경험한다. 넋을 놓고 무대를 바라보는 옆자리 아이들을 보면 그 몰입의 표정이 얼마나 생생한지 모른다.
 
그런데 이런 재미는 이 작품을 좁은 개념의 아동극에 가두는 함정이기도 하다. 인간을 닮은 동물들이 주는 즐거움은 이 작품의 한 부분일 뿐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엔 동물과 인간을 잇는 또 다른 상상력이 존재한다. 바로 동물화된 인간이다. 인간화된 동물의 잣대는 얼마나 인간과 비슷한가에 있지만, 동물화된 인간의 관심은 오로지 동물로서 존재하는 데 있다. 배우는 동물을 흉내내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동물의 몸이 되어버린다. 그 결과물은 마치 실제 동물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불러일으키니, 사바나의 모든 동물이 한자리에 모이는 첫 장면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가젤과 치타, 기린과 코끼리가 각각의 고유한 길이와 크기와 몸짓으로 객석을 지나 무대를 거니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배우가 만들어내는 동물의 몸은 인간답지 않아서 더욱 감동적이다.
 
첫 장면의 상상력이 보여주는 것은 인간다움이 아니라 동물다움이다. 그들은 가젤답게, 치타답게, 기린답게 존재한다. 아무 말 없이 그저 느긋하게 오가는 모습이 얼마나 우아하고 아름다운지.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자기답게 존재하는 동물들을 볼 때 인간 중심주의는 갑자기 초라해진다. 동물이 없는 세계가 과연 인간적일 수 있을까? 진정한 휴머니즘이란 인간만이 아니라 다른 생명에 대한 존중이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될 수 있음을 첫 장면은 넉넉히 깨우쳐준다. 인간과 동물을 아우르는 생명공동체 안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몫은 어쩌면 지나치게 큰 것인지도 모른다. 그 몫만큼의 책임을 과연 인간은 다하고 있는 걸까.
 
아이와 동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할 때 뮤지컬은 자주 진지해진다. 고단한 인간 세계 안에서 자기다움을 찾아가는 어리고 약한 것들은 이 사회의 권리 없는 사람들을 대변한다. 진지하고도 용기 있는 빌리와 마틸다의 선택에 어른들의 박수가 쏟아지는 것은 이 아이들의 모습에서 약하지만 빛나는 자존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동물이 주인공인 뮤지컬도 마찬가지다. 브로드웨이 역대흥행작 목록의 앞자리를 차지하는 ‘캣츠’의 별명이 ‘고양이의 철학’이던가. 인간 아닌 것이 주인공일 때 이들의 이야기는 인간에 대한 역설적인 질문에 다름 아니다. ‘라이온 킹’도 그렇다. 어른 관객들과 어린 관객들이 재미와 의미를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작품, 아동극은 이런 작품에 붙는 이름이다. 이 작품이 아동극이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정수연 뮤지컬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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