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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의 '선물'···北, 미사일 개발 시작이었다

[채인택의 글로벌 줌업]
 
오는 27~28일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열릴 예정인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베트남전 당시 북한의 미그기 조종사 파병 외교가 새삼 관심을 끈다. 북한은 1967~68년 같은 공산 진영인 북베트남에 무기와 물자는 물론 소중한 군사 자산인 조종사까지 보내 도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베트남 방문에서 이를 특히 강조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이 조종사 파병 외교로 얻은 게 상당하기 때문이다. 
북한군이 2017년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에서 스커드 ER 미사일 4발을 발사하고 있다. 북한 조선 중앙TV는 이날 발사 현장에서 김정은 노동당위원장이 발사를 지도했다고 보도했다. 북한 미사일 개발사의 시작은 73년 4차 중동전쟁 당시 미그기 조종사 파병 대가로 이집트에서 입수한 스커드-B 미사일이었다. 북한은 이를 역설계하고 미사일 기술을 확보했다. 앞서 북한은 67~68년 북베트남에도 조종사를 파병했다. 북한 공군 조종사들은 당시 북베트남 수도 하노이 상공을 맡아 미군기와 공중전을 벌였다. 오는 27~28일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는 바로 그곳이다. [사진 노동신문]

북한군이 2017년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에서 스커드 ER 미사일 4발을 발사하고 있다. 북한 조선 중앙TV는 이날 발사 현장에서 김정은 노동당위원장이 발사를 지도했다고 보도했다. 북한 미사일 개발사의 시작은 73년 4차 중동전쟁 당시 미그기 조종사 파병 대가로 이집트에서 입수한 스커드-B 미사일이었다. 북한은 이를 역설계하고 미사일 기술을 확보했다. 앞서 북한은 67~68년 북베트남에도 조종사를 파병했다. 북한 공군 조종사들은 당시 북베트남 수도 하노이 상공을 맡아 미군기와 공중전을 벌였다. 오는 27~28일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는 바로 그곳이다. [사진 노동신문]

북한과 베트남의 밀월은 생각보다 오래 가지 못했다. 양국 관계가 78년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침공하면서 벌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북한이 이에 항의하고 실각한 노로돔 시아누크 캄보디아 국왕을 평양에 머물게 하면서 양국 관계는 급속히 냉각됐다. 특히 92년 베트남이 한국과 수교하고 탈북자를 한국에 보내면서 북한과 관계가 결정적으로 틀어졌다. 하지만 최근 공산당끼리 ‘혈맹’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오는 27~28일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베트남 하노이의 서북부 박장성에 위치한 북한군 공군 조종사 묘터에 지난 13일 관리자가 헌화하고 있다. 1967~68년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숨진 북한군 공군 조종사 14명이 묻혔던 곳으로 북한은 2002년 유골을 모두 가져가면서 지금은 묘터만 남았다. [로이터=연합뉴스]

오는 27~28일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베트남 하노이의 서북부 박장성에 위치한 북한군 공군 조종사 묘터에 지난 13일 관리자가 헌화하고 있다. 1967~68년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숨진 북한군 공군 조종사 14명이 묻혔던 곳으로 북한은 2002년 유골을 모두 가져가면서 지금은 묘터만 남았다. [로이터=연합뉴스]

북한은 50년 북베트남과 외교 관계를 수립했으며 57년 7월엔 호찌민(胡志明) 베트남 주석이 평양을, 58년 11월 28일부터 12월 2일까지와 64년 11월엔 김일성 주석이 중국을 거쳐 베트남을 각각 찾은 인연이 있다.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60년대 북한은 북베트남에 다량의 무기와 물자를 지원했으며 파병도 하면서 혈맹관계를 맺었다. 심지어 북한이 공병부대를 보내 베트남 공산당 중앙위원회와 국방부를 지하갱도로 옮기는 공사를 했다는 첩보도 있다. 정보 당국에 따르면 6·25전쟁 당시 폭격에 시달렸던 북한은 핵과 장거리 미사일 생산과 발사 시설을 포함한 대부분의 당과 군, 정부의 청사, 그리고 도로와 군수공장을 포함한 핵심 산업시설을 지하 갱도화했다. 북한은 이러한 지하 갱도화 경험을 활용해 베트남을 지원한 것으로 추정된다. 2012년 ‘냉전 연구’ 저널에 따르면 북한은 베트남 학생 2000여 명을 초청해 교육하기도 했다.  
북한이 베트남전에 파병한 공군의 모습. [연합뉴스]

북한이 베트남전에 파병한 공군의 모습. [연합뉴스]

 
북한, 67년 북베트남에 조종사 파병
북한의 북베트남 지원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당연히 공군 조종사 파병이다. ‘군사사 저널’에 따르면  2003년 북한이 66년 10월 조선노동당 결의까지 거쳐 67년 초 1개 비행 전단 규모의 조종사를 북베트남에 파병해 수도 하노이 상공을 담당하는 제 921과 제 923 전투비행단에 배속했다. 68년까지 총 200명의 북한군 조종사가 근무했으며 1개 반항공연대(방공 연대)도 함께 추가 파병했다. 당시 북한은 무기와 탄약 외에도 200만 세트의 군복도 북베트남에 원조했다. 2001년 영국 BBC방송은 파병 당시 김일성 주석이 “베트남 상공을 우리 하늘이라고 생각하며 싸우라”고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윌슨센터가 2011년 12월 공개한 조사 결과는 이와는 내용이 조금 다르다. 이에 따르면 북한은 67~68년 87명의 공군 조종사를 북베트남에 파병했으며 조종사들은 하노이 인근 켑 비행장을 근거지로 하노이 대공방어 임무를 수행했다. 베트남과 북한은 2000년 처음으로 북한 공군 조종사가 베트남전에 파병됐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윌슨 센터에 따르면 북한 조종사들은 베트남 공군 소속 미그기를 몰고 미군기와 전투를 벌였으며 이 중 14명이 숨졌다. 이들은 처음엔 67년 하노이 부근 박장(北江) 성에 조성한 묘지에 묻혔다. 윌슨센터는 2007년 8월 베트남 신문이 “2002년 북한 당국이 조종사 유해를 모두 송환했지만, 묘지 터는 계속 관리되고 있다”고 보도한 내용을 전했다. 로이터 통신은 지난 13일 현장에서 묘터가 여전히 관리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2017년 4월 15일 김일성 생일 기념 열병식에서 북한이 처음으로 공개한 신형 스커드 미사일. [사진 노동신문]

2017년 4월 15일 김일성 생일 기념 열병식에서 북한이 처음으로 공개한 신형 스커드 미사일. [사진 노동신문]

 
73년 북한 조종사, 이스라엘기와 공중전  
북한의 조종사 파병은 베트남으로 그치지 않는다. 73년엔 이스라엘과 제4차 중동전쟁(이스라엘에선 욤 키푸르 전쟁, 이집트에선 10월 6일 전쟁)을 벌인 이집트에도 1개 중대 규모의 공군 조종사를 파견해 F-4 팬텀기를 포함한 이스라엘 전투기와 공중전을 벌였다. 북한은 이집트에 대한 조종사 파견 외교로 엄청난 성과를 거뒀다.  
이스라엘 국립문서보관소가 최근 기밀 해제한 73년 모사드(해외정보국) 1급 비밀 전문에는 “이집트에 30명의 북한 조종사가 이집트 영공 방어에 참전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 전문은 그해 전쟁 발발 하루 전인 10월 5일 모사드 즈비 자미르 국장의 보좌관이던 페디 에이니가 골다 메이어 총리의 국방 비서인 위스라엘 리오르 준장에게 보낸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이스라엘 영어신문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2017년 9월 29일 “당시 시리아와 이집트는 소련의 무기공급과 모로코·알제리·리비아·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팔레스타인해방기구·요르단 같은 아랍권에서 파병한 건 물론 심지어 파키스탄과 북한에선 조종사를 파견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이집트군 총사령관이던 사드 엘사들리 장군은 회고록에서 “당시 북한은 이집트에 20명의 조종사와 19명의 비전투 요원을 파견했다”고 밝혔다. 조종사 숫자에서 모사드 정보와 약간 다르다.  
 
이집트 군사박물관에 북한식 선전 그림이 걸려있다. 북한 작가들이 제작한 것이다. [중앙포토]

이집트 군사박물관에 북한식 선전 그림이 걸려있다. 북한 작가들이 제작한 것이다. [중앙포토]

북한 조국해방박물관에 걸린 선전화. 이집트 군사박물관의 작품과 흡사한 화풍이다. [중앙포토]

북한 조국해방박물관에 걸린 선전화. 이집트 군사박물관의 작품과 흡사한 화풍이다. [중앙포토]

이집트 전쟁박물관엔 북한식 선전화
미국의 인터넷 매체인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2013년 6월 25일 “73년 10월 6일 이스라엘과 이집트 사이의 수에즈만 상공에서 이스라엘 공군의 F-4 전폭기 2대가 소련제 미그-21 전투기 1대와 공중전을 벌였는데 나중에 북한 조종사가 몰았던 것으로 드러났다”라고 보도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연료가 떨어져 공중전을 중지하고 막 기지로 귀환하기 시작한 이스라엘 전투기들이 이 미그기가 이집트 방공부대에서 발사한 소련제 지대공 미사일을 맞아 격추되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전했다.  
이집트 군사박물관

이집트 군사박물관

4차 중동전 당시 이집트 공군참모총장이던 호스니 무바라크는 81년 대통령에 올라 2011년 아랍의 봄 당시 국민 봉기로 축출될 때까지 20년간 철권을 휘둘렀다. 북한 조종사 지원을 잘 기억한 무바라크 집권기에 북한과 이집트의 협력관계는 돈독하게 유지됐다. 89년 카이로 동부 헬리오폴리스에 있는 살라딘 치타델에 ‘10월 6일 전쟁 박물관’을 건축하면서 북한 건축가와 예술가들을 대거 동원하기에 이르렀다. 박물관에 전시된 선전 그림은 북한의 우상화 회화 작품과 상당히 유사하다. 박물관 입구 벽에는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이 박물관을 건설했다’는 대리석 표지도 붙어 있다. 북한이 2008년 이집트 통신업체 오라스콤을 끌어들여 휴대전화 서비스를 처음 도입한 것도 이러한 인연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1973년 조종사 파병 대가로 이집트에서 받은 스커드-B형과 동형의 미사일. [위키피디아]

북한이 1973년 조종사 파병 대가로 이집트에서 받은 스커드-B형과 동형의 미사일. [위키피디아]

파병 대가 스커드로 탄도미사일 개발 착수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북한이 조종사 파병의 대가로 이집트에서 소련의 전술 탄도 미사일인 스커드-B를 처음 입수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북한 미사일 개발의 첫 단추가 됐다. 
외교 전문지 디플로매트 2017년 8월 28일 자에 따르면 안와르 사다트 당시 이집트 대통령은 76년과 81년 사이에 서방에서 스커드-B로 부르는 소련제 ‘R-17 엘브루스 미사일’를 북한에 넘겨줬다. 76년은 사다트가 소련과의 우호조약을 파기하고 소련인 기술자를 추방한 해다. 이집트는 그 뒤 미국과 관계를 강화하고 친미 노선을 걸었으며 이스라엘과 평화 노선을 추구했다. 사다트는 78년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캠프 데이비드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국교를 수립했다. 그 대가로 67년 6일 전쟁 당시 이스라엘에 빼앗겼던 시나이 반도를 되찾았다. 사다트는 이 공로로 메나힘 베긴 이스라엘 수상과 함께 78년 노벨평화상을 공동 수상했다. 
미국의 CNBC 방송은 2017년 8월 25일 “북한이 79년 또는 80년 이집트로부터 스커드-B 미사일을 처음으로 입수했다”고 보도했다. 디플로매트의 보도와는 입수 시기가 약간 다르다.  
 
1978년 9월 캠프 데이비드 협상 중 워싱턴 근처 게티즈버그 남북전쟁 공원을 방문한 사다트 대통령, 카터 미국 대통령, 이스라엘 베긴 총리, 다얀 외무장관(전쟁 때 국방장관) (앞줄 왼쪽부터). 이 협정의 공로로 사다트는 그해 노벨평화상을 받았지만 북한에 스커드-B 탄도미사일을 넘기면서 북한이 미사일 개발에 나서는 계기를 만든 것으로 평가된다. 역사의 아니러니다. [중앙포토]

1978년 9월 캠프 데이비드 협상 중 워싱턴 근처 게티즈버그 남북전쟁 공원을 방문한 사다트 대통령, 카터 미국 대통령, 이스라엘 베긴 총리, 다얀 외무장관(전쟁 때 국방장관) (앞줄 왼쪽부터). 이 협정의 공로로 사다트는 그해 노벨평화상을 받았지만 북한에 스커드-B 탄도미사일을 넘기면서 북한이 미사일 개발에 나서는 계기를 만든 것으로 평가된다. 역사의 아니러니다. [중앙포토]

북한, 10년 뒤 이집트에 스커드 수출
그 뒤 북한은 사다트가 제공한 소련제 스커드-B 미사일을 역설계해 자체 생산에 성공했으며 사거리를 늘린 개량형도 개발했다. 북한은 이를 계기로 미사일 기술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켜 90년대 이집트에 스커드-C 미사일을 판매하기에 이르렀다.

미국의 소리(VOA) 방송은 2013년 1월 12일 북한이 발사한 은하 3호의 로켓 기술이 50년대 소련이 개발한 스커드 미사일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VOA는 미국 과학자 단체 참여과학자연대(USC)의 로켓 전문가 데이비드 라이트 박사를 인용해 이렇게 전했다. 그동안 미국 정보당국은 북한이 스커드 미사일에서 사용한 연료와 산화제를 이용해 미사일을 계속 개발해온 것으로 추정했는데 바다에서 건진 은하 3호 잔해에서 이를 확인했다는 것이다. 이는 북한이 이집트에서 구한 스커드-B에서 입수한 미사일 기술을 바탕으로 오늘날 장거리 미사일 기술을 확보했음을 보여주는 내용이다.  

 
소련 무너지자 설계도·기술자 확보  
물론 북한은 다른 경로를 통해서도 꾸준히 미사일 기술력을 보강해왔다. 특히 91년 소련이 무너지고 새로 등장한 러시아가 경제난에 시달리자 북한은 우주로켓 개발을 명분으로 옛 소련의 일부 미사일 전문가를 초빙해 설계도와 기술을 입수했다는 것이 정보당국의 분석이다. 93년에는 모스크바 세레메티예보 국제공항에서 평양으로 가려던 러시아 미사일 기술자와 가족 60여 명이 체포되기도 했다.  

2016년 8월 시험발사에 성공한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북극성-1형. [사진 노동신문]

2016년 8월 시험발사에 성공한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북극성-1형. [사진 노동신문]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 2017년 12월 27일 북한 탄도 미사일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은 소련 마케예프 로켓 설계국이 개발한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설계도와 연구진을 활용한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WP는 마케예프 로켓 설계국의 문서를 공개하며 유출된 소련 미사일이 북한 미사일 기술을 한층 발전시킨 원천이라고 전했다. WP는 북한이 2016년 8월 시험 발사한 SLBM인 북극성-1호가 옛 소련의 SLBM R-27 SLBM과 엔진이 동일하며 설계도 흡사하다고 전했다. 
또 다른 주장도 있다. 2004년 영국의 군사전문지 제인스 디펜스 위클리는 북한은 93년 일본을 통해 러시아의 퇴역잠수함 12척을 고철로 구매했는데 선내에 남아있던 R-21 SLBM의 발사 시스템을 참고해 노동 1호를 개발했다고 보도했다.  
북한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인 북극성 1호의 지상 발사형인 북극성-2호. [중앙포토]

북한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인 북극성 1호의 지상 발사형인 북극성-2호. [중앙포토]

 
장거리 미사일 개발에서 북미 협상까지 
북한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미사일 기술을 확보하거나 개발해왔으며 이를 통해 핵탄두를 미국 본토 근처로 날려 보낼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 기술을 거의 확보하기에 이르렀다. 북한 정권은 심각한 경제난으로 국민이 굶주림에 시달리던 '고난의 행군' 시절에도 핵과 미사일 개발을 멈추지 않았다. 
북한이 미국을 베트남 하노이의 회담장으로 불러낼 수 있었던 힘의 기원은 73년 제4차 중동전쟁 당시 이집트에 공군 조종사를 파병하면서 사다트 대통령으로부터 입수한 스커드-B 미사일인 셈이다. 북한 미사일 기술 축적의 시작이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이 북한에 제공한 스커드-B 미사일이라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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