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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아직도 일본 판사의 재판받던 시절 답습하나

이후연 사회팀 기자

이후연 사회팀 기자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검찰 조사를 받은 한 판사는 “검찰 조서를 믿고 재판했던 과거를 반성했다”고 말했다. 참고인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던 그는 “검찰은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넌 대답만 하면 돼)’ 식으로 나왔고, 원하는 답을 하지 않으면 ‘피의자 전환 가능성’을 시사하며 압박했다”며 “검찰 조사를 받는다는 굴욕감만큼이나 그동안 내가 검찰 조서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검찰 조서는 경찰의 것과 달리 재판에서 증거로 인정된다. 증거에 대한 판단은 판사의 몫이지만, 존재 자체로 증거력이 있는 셈이다. 최근 법원에서 공판중심주의를 강조하고 있지만 여전히 형사 재판에서는 검찰 조서가 유·무죄를 가르고 양형을 결정하는 주요 증거로 사용된다. 검찰 조서에 이처럼 막대한 영향력을 부여하는 건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 국회입법조사처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수사기관이 피의자를 신문할 때 조서를 작성할 의무가 없고 조서의 증거능력에 관한 규정도 별도로 마련돼 있지 않다. 독일은 피고인 또는 증인을 공판정 내에서 직접 신문해야 하고, 공판정 외에서 신문한 내용이 담긴 조서나 기타 서면을 낭독하는 것으로 직접신문을 대체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는 ‘공판직접주의’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때 조선 법정의 모습. 양복을 입은 일본 판사들이 재판정에 앉아 있다. [사진 대법원]

일제 강점기 때 조선 법정의 모습. 양복을 입은 일본 판사들이 재판정에 앉아 있다. [사진 대법원]

한국이 검찰 조서에 증거력을 부여하기 시작한 이유는 일본 강점기 판사들이 다 일본인이었기 때문이다. 일본 판사들은 조선말을 몰랐기 때문에 당시 검사가 만들어 온 조서에 증거 능력을 인정해줬다. 정작 일본은 1982년 최고재판소 격인 대심원에서 “현행범이 아닌 피의자에 대한 조서는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결했다.
 
이 때문에 검찰 조서의 증거 능력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법조계 안팎에서 끊임없이 나온다. 국회도 2016년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와 관련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당시 검토보고서엔 “조서 재판의 폐해를 극복하고 실질적인 공판중심주의를 구현하는 데에 기여하는 바가 클 것으로 판단된다”고 쓰여 있다.
 
지방법원의 한 판사는 “지금껏 검찰 조서를 가장 필요로 했던 집단이 아마 판사들일 것”이라며 “정작 판사들이 검찰 조서의 증거능력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으나 이젠 분위기가 바뀔 것 같다”고 말했다. 자신들이 검찰 조사의 ‘당사자’가 돼 봤기 때문이다.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의 목적은 아니었겠지만, 검찰의 수사가 법원의 공판중심주의를 강화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이후연 사회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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