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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자 “얼마나 울었던가, 붉게 타버린 지난 60년”

21일 60주년 기념 앨범 ‘노래 인생 60년 나의 노래 60곡’ 발표회에 참석한 이미자. 1958년 한국 최초 민영방송 HLKZ ‘예능 로터리’에서 1등을 하며 작곡가 나화랑의 눈에 띄어 이듬해 데뷔했다. 90년까지 음반 560장, 노래 2069곡을 발표해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뉴스1]

21일 60주년 기념 앨범 ‘노래 인생 60년 나의 노래 60곡’ 발표회에 참석한 이미자. 1958년 한국 최초 민영방송 HLKZ ‘예능 로터리’에서 1등을 하며 작곡가 나화랑의 눈에 띄어 이듬해 데뷔했다. 90년까지 음반 560장, 노래 2069곡을 발표해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뉴스1]

“아 역사의 뒤안길을 함께 걸으며/동백꽃도 피고 지고 울고 웃었네/내 노래 내 사랑 내 젊음/다시 만날 수는 없어도/나 그대와 함께 노래하며/여기 있으니 난 행복해요/감사하여라”(‘내 노래, 내 사랑 그대에게’)
 
1959년 ‘열아홉 순정’으로 데뷔해 올해로 노래 인생 60년을 맞은 가수 이미자(78)의 소감은 소박했다. 인생의 8할을 ‘엘레지의 여왕’으로 군림하며 살아왔지만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시간이 지나면 스러지듯 자연스럽게 ‘낙화유수(落花流水)’를 준비하고자 하는 것처럼 보였다.
 
21일 서울 소공동에서 열린 기자간담회 주제는 ‘노래 인생 60년 나의 노래 60곡’. 이날 발매된 60주년 기념 앨범과 동일한 제목이다. 그는 “50주년 기념곡이 마지막인 줄로만 알았는데 운 좋게 60주년 기념 공연을 준비하게 됐다”며 “감사한 마음을 보답하기 위해 있는 그대로의 제 모습을 담고자 했다”고 말했다. 실제 공연처럼 라이브 연주에 맞춰 10여 곡을 새로 녹음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는 “성량이 예전만 못해 조금 부끄럽기도 하지만 20대부터 70대까지 목소리를 통해 지나온 세월과 변해가는 과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64년 발표한 ‘동백 아가씨’로 엘레지의 여왕이 된 이미자.

64년 발표한 ‘동백 아가씨’로 엘레지의 여왕이 된 이미자.

“지난 60년 동안 보람된 일도 많았지만 힘들고 견디기 어려웠던 시절이 더 많았다”는 고백처럼 이미자의 노래는 주로 눈물을 타고 흘렀다. 60년대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얼마나 울었던가 동백 아가씨”나 “남몰래 서러운 세월은 가고(…)검게 타버린 흑산도 아가씨”를 듣고 눈물 한 번 훔치지 않은 청춘이 얼마나 될까. 그는 “다 같이 어렵던 시절과 노랫말 및 목소리가 잘 맞아서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며 “오늘 여기 온 기자들보다 그 부모님 세대의 사랑이 더 컸기에 이런 뜻깊은 자리를 가질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신곡 ‘내 노래, 내 사랑 그대에게’ 역시 이 같은 감정의 연장선에 있다. 50주년 기념곡 ‘내 삶의 이유 있음을’을 만든 김소엽 시인, 장욱조 작곡가와 다시 한번 손을 잡았다. 이미자가 소회를 밝히면 김 시인이 노랫말로 다듬는 식이었다. 다만 10년 전 노랫말이 “쓰라린 아픔 속에서도 산새는 울고/추운 겨울 눈밭 속에서도 동백꽃은 피었어라” 등 설움이 굽이굽이 맺혀있었다면, 이번엔 “우리의 눈물은 이슬 되어 꽃밭에 내리고/우리의 아픔은 햇빛 되어 꽃을 피웠네” 등 한결 온화해졌다.
 
그 시절 그의 마음을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무엇일까. 그는 ‘동백 아가씨’ ‘섬마을 선생님’ ‘기러기 아빠’ 등 3대 히트곡이 금지곡으로 묶였을 때를 꼽았다. 각각 왜색이 짙다, 다른 노래와 몇 소절이 같다, 너무 비탄조다 등의 이유로 금지됐다. “64년 ‘동백 아가씨’가 KBS 음악방송에서 35주간 1위를 했는데 하루아침에 차트에서 없어졌습니다. 어디서도 들을 수 없었고, 무대에서 부를 수도 없었죠. 목숨을 끊어놓는 기분이었죠. 하지만 팬들께서 한사코 불러주신 덕분에 큰 힘이 됐습니다.”
 
66년 발표된 ‘섬마을 선생님’ LP를 들고 있는 젊은 시절 이미자의 모습. [중앙포토]

66년 발표된 ‘섬마을 선생님’ LP를 들고 있는 젊은 시절 이미자의 모습. [중앙포토]

잊지 못할 순간으로는 59년 데뷔, 73년 베트남 위문 공연, 2002년 평양 단독 공연 등 ‘최초’의 순간을 꼽았다. 하지만 “가장 기뻐야 했을 때 역시 항상 붙어 다니는 꼬리표 때문에 힘들었다”고 했다. “이미자의 노래는 천박하다” “술집에서나 부르는 노래다” 같은 세간의 평가가 소외감을 느끼게 했던 것. “나도 서구풍 발라드 노래 부를 수 있는데 바꿔볼까 생각했었죠. 하지만 참았습니다. 견뎠습니다. 60년이 흐르고 난 지금에 와서는 절제하면서 잘 지내왔구나 하는 마음에 자부심까지 갖고 있습니다.”
 
하여 이번 앨범에도 역사를 계승하는 데 가장 공을 들였다. 감사·공감·순수를 테마로 3장의 CD에 각 20곡씩 눌러 담았다. 그간 발표된 2100여 곡 중에 추리는 것만도 대작업이다. CD1과 CD2가 기념곡과 히트곡 위주라면, CD3은 온전히 가요계 선배들을 위한 장으로 ‘눈물 젖은 두만강’ ‘목포의 눈물’ 등을 담았다. 그는 “우리 가요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노래를 들으며 나라 잃은 설움, 배고픔의 설움을 달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고마운 곡들이 사라져 가고 있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웠다. 이를 영구 보존하기 위해 가장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장”이라고 설명했다.
 
후배들을 향한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가요의 뿌리가 사라져 가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가사 전달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슬프면 슬픔을 전달해주고, 기쁘면 기쁨을 전달해줄 수 있는 게 가요니까요. 하지만 서구풍이 많이 몰려오다 보니 가사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고 발음을 정확하게 들을 수도 없습니다. 슬픈 표정 하나 없이 가슴 아프다는 것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요. 그 부분이 제일 안타깝습니다. 제가 이 세상에 없더라도, 앞으로 수십 년이 더 흐르더라도 우리 가요의 뿌리가 남겨지기를 바랍니다.”
 
이미자는 5월 8~10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을 시작으로 60주년 기념 전국 투어를 이어갈 예정이다. 89년 대중가수 최초로 세종문화회관에 입성해 30주년 기념 공연을 시작으로 40주년, 50주년 역시 같은 자리에서 관객들과 만났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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