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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락의 한반도평화워치] 지난 100년 성취 기반으로 중·일에 성숙하게 대응하자

3·1운동 100주년과 한·중, 한·일 관계
한·일 관계가 어렵다. 누적된 문제들이 계속 불거지고 이제 군사 마찰 우려마저 생기고 있다. 한·중 관계는 나쁠 것은 없으나 새로운 것도 없다. 중국이 굴기하면서 주변을 압박하는 행태는 계속되고 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도 끝난 게 아니다. 사드 보복 과정에서 중국이 보인 위압적 행태와 한국이 보인 소극적 행태는 한·중 관계의 장래를 어둡게 하는 일이었다.

한국은 일제 식민지에서
산업화·민주화 성공한 나라
3·1정신과 100년간 성취는
중·일과의 관계 재정립 초석

중국식 질서 추구하는 중국엔
한·미 동맹으로 균형 잡고
미래지향적 관계 만들어야

과거사에 소극적인 일본엔
잘못은 지적하되 금도 있게
도움 준 건 인정하는 아량도

 
이런 가운데 3·1절 100주년이 다가온다. 이대로라면 일 년 내내 반일 감정이 분출될 것이다. 한·일 관계는 더 악화할 것이고, 중국은 한국을 자기 쪽으로 견인하려는 노력을 강화할 것이다. 그런 상황이 국익에 득일까?
 
지난 100년을 돌이켜 봄으로써 논의를 시작해 보자. 그 기간에 우리가 겪은 엄청난 고난과 유례없는 성취가 지금의 한·중·일 관계에 연결되어 있으니 말이다. 100여 년 전 중화질서 속에 있던 조선은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역사 변화를 깨닫지 못하다가 서구 제국주의를 재빨리 습득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중국이 아닌 세력에 지배된 것은 처음이었다. 자주독립을 향한 투쟁이 시작되었다. 3·1 운동이 일어났고, 임시정부가 수립되어 독립 노력이 조직화했다. 해방 후 새 나라의 정체성을 세우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중화질서 속에서 중국에서 도입한 성리학에 기초하여 왕조 체제를 세운 조선과는 다른 정체성이다. 그런데 해방이 되자마자 전쟁이 나서 한국은 미국과 손잡고 북한 중국과 싸웠다. 그 후 한국은 초강대국 미국의 동맹이 되었다. 한국이 중국보다 강한 나라와 동맹을 맺고 중국과 절연한 삶을 살기 시작한 것도 처음이었다.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성공한 대한민국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 기간에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이 되었다. 정치적으로도 아시아 선두권의 민주주의를 일궜다. 특히 민주화는 경제 발전과 달리 외부의 지원보다는 한국인 자신의 노력과 희생으로 이룩했다. 그 결과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 모두를 발전시킨 대한민국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이 형성되었다. 중국과 절연한 100년 동안 최초로 중국 문물이 아닌 서구 문물을 기초로 나라를 발전시키기 시작한 한국인은 중국인보다 정치 경제적으로 나은 생활을 영위하게 되었다. 일본과 비교하더라도 한국은 경제적으로 일본에 근접하였고,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의 일부 측면에서 일본을 앞섰다. 예컨대 한국 민주주의의 역동성, 특히 시민사회의 역할은 일본도 부러워하는 부분이다. 세계사에서 식민지였다가 산업화와 민주화를 다 달성한 예는 한국뿐이라는 관찰도 있다.
 
한국이 이렇게 변한 동안, 중국은 중국 특색 사회주의라고 하는 특이한 이념을 견지하면서 경제적 굴기를 하게 된다. 1991년 한·중 수교는 과거와 전적으로 다른 정체성을 지향하는 한국과 마르크스·레닌·마오쩌둥(毛澤東)·덩샤오핑(鄧小平)의 이념 위에 경제를 세운 중국이 100년 만에 다시 만난 계기였다. 그러나 수교 이래 한국의 대중 정책을 보면 새로운 정체성이 반영된 흔적은 별로 없다. 인적·물적 교류가 급성장했고 무역 흑자가 컸으므로 관성적으로 상황에 따르며 방임했다고 봐야 한다. 한국의 대중 경제의존도는 비정상적으로 높아졌다.
 
그런데 중국은 국력이 신장하자 주변에서 미국 세력을 밀어내고 중국 중심의 질서를 구축하려 했다. 한국은 이러한 노력의 대상이었다. 한국이 미국의 동맹이고 지리적으로 중국의 정치·경제 중심부에 근접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사드 문제가 터졌다. 중국은 전근대적 보복으로 나왔다. 한국은 소극적으로 대응하였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한국의 대중 의존도가 중국에 유용한 지렛대임을 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미국 밀어내고 중국 질서 추구
 
한편 지난 100년 사이, 일본은 군국주의에 따라 팽창을 추구하다가 패전국이 되었다. 전후 일본은 평화를 표방하고 국제 협조를 중시하였다. 미국의 동맹이 돼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경제 대국이 되었다. 그러나 과거 문제에 대해서는 독일과 달리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관성을 강하게 내보였다. 한·일 간 과거 문제는 65년 국교 정상화 때에 봉합되었으나, 한국이 경제적·정치적으로 성장하자 다시 대두돼 왔다. 일본은 어느 정도 응하다가 반발하기 시작하였다. 근래 아베 정부는 그간 노력할 만큼 하였으니 더는 끌려가지 않겠다는 식이다.
 
이제 일본은 한국에 대해 방어를 넘어 반격도 고려하는 인상이다. 올해 한·일 관계가 더 악화하면 일본은 그 길로 갈 수 있다. 일본이 정치·경제·금융·과학기술 영역에서 반격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질 것이다. 그 경우 미국이 우리 편에 선다고 볼 수도 없다. 중국은 한·일 갈등을 활용하여 한국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을 가속할 것이다. 이런 상황이 국익에 도움이 될 수 없을 터이니 방치할 수는 없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3·1 자주정신과 지난 100년간 이룩한 민주주의 시장경제의 정체성을 상기하고, 그에 기초해 주변 국가와의 관계를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먼저 중국에 대해서 보면, 우리는 중국이 지향하는 주변 지역에 대한 영향력 확대가 한국의 자주권과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에 어떤 함의를 가질지를 고심해야 한다. 부상하는 거대 세력의 움직임을 거스를 수 있겠는가 하는 식의 사고는 3·1 자주정신과 우리의 정체성을 망각하는 것이다. 중국과 좋은 관계는 필수이지만, 자주권을 타협하고 좋은 관계를 구할 수는 없다.
 
 
전략적으로 일본과 우호 관계 맺어야
 
그런데 중국은 거대 실체이고 지리적으로 인접해있다. 또 우리는 과거 중화질서 속에 살아온 역사적 유래가 있다. 우리 스스로 힘써 노력하지 않으면 부지불식간에 중국이라는 강한 자기장 속으로 끌려가기 쉽다. 그러므로 우리는 미국과의 동맹으로 균형을 잡고 중국의 구심력에 대비해야 한다. 이러한 조치를 기본으로 하면서 미래 지향적인 한·중 협력 관계를 발전시켜야 한다. 동시에 지나친 대중 경제 의존을 완화하여 우리의 취약점을 보완해야 한다. 무역 투자 다변화를 해야 하며 대중 경제 관계를 전략적 관점에서 다뤄야 한다.
 
일본에 대해서 보면, 일본은 더는 우리의 자주권에 문제가 되는 나라는 아니다. 우리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이다. 과거사 문제를 두고 다투더라도, 현재와 미래의 우리 정체성과 자주를 위해서는 활용해야 할 상대이다. 우리가 중국과의 관계를 설정해 나감에 있어 일본이 미국과 한 묶음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전략적 균형 요인이라는 점을 도외시할 수 없다. 그러나 동시에 일본은 과거사 문제에 대해 전향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한계를 가진 나라이다. 우리의 딜레마는 이러한 일본에 대해 국민감정으로 대처하면 일본을 전략적 차원에서 우리 국익에 활용하기 어려워지고, 정작 과거사 문제에 대한 전향적 입장을 유도하기도 더 어렵게 된다는 점이다.
 
 
100년간 성취 기반으로 중·일 대응해야
 
이 문제에 대해서도 3·1 정신과 우리의 지난 100년간의 성취로부터 얻은 자신감에서 새로운 출발점을 찾을 수 있다. 3·1정신은 반일에 얽매여 있지 않았다. 자주독립을 이뤄 일본과도 우호 관계를 갖고 동양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동북아 국제 정치 환경에서 좌표를 고심해야 할 상황이다. 그러니 우리 스스로 그간의 성취와 자신감을 바탕으로 감정을 억제하고, 미래를 지향하는 성숙함을 보일 때가 아닌지 자문해 보아야 한다. 일본이 과거를 우기고 나올 때는 단호히 지적할 입장을 벼리되, 우리가 나서서 자극하지는 않는 금도(襟度)를 보이면 어떤가. 같은 맥락에서 일본이 전후 세계 평화와 발전을 위해 기여해온 점이나, 우리의 발전에 도움 준 일을 그것대로 평가하는 아량과 여유를 보이는 것도 좋겠다.
 
우리가 냉정하게 시시비비를 가리는 성숙도를 보여주면 불필요한 한·일 관계 악화를 막을 수 있고, 일본이 과거사 문제에 대해 더 경직된 길로 가지 않도록 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일본 내에는 그간 노력을 했는데 한국이 평가해 주지 않는다는 정서가 있다. 과거 논란이 심화할수록 일본 내 친한 여론이 고립되고 극우 보수적 견해가 세를 얻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새로운 접근이 요구된다. 3·1 운동 100주년이 감정 토로의 계기가 아니라 발상 전환의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더 나아가 한국은 동아시아에서 중국·일본은 물론 미국·러시아 간의 평화·화해·협력을 촉진하는 특유의 역할을 해야 한다. 그리하여 주변국 모두가 한국을 도움 되는 나라로 여기고 존중하도록 해야 한다. 이미 100년 전 3·1 독립 선언에 그런 비전이 들어있다. 한국 외교가 그 방향으로 나가면 통일의 길도 좀 더 쉬워질 것이다. 중국을 비롯한 주변 국가들이 평화와 협력의 촉진자 역할을 하는 통일 한국을 긍정적으로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올 한해 한·일 관계는 악화하고 우리 외교 입지는 축소되는 일이 없기 바란다. 3·1절 100주년이 자주·협력·통일의 미래를 향한 새로운 대·일, 대·중 외교의 원년이 되기를 기대한다. 그것이 진정한 3·1정신이 아니겠는가.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주러시아 대사·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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