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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희의 직격 인터뷰] “돈과 정치가 도시재생을 오염시킨다”

정석 서울시립대 교수
‘도시재생’이 시대의 화두다. 원주민을 몰아내는 대규모 철거와 하향식 재개발 대신, 주민이 참여하며 지역 공동체를 보존하는 방식의 ‘재생’이다. 국토부는 대통령의 공약사항에 따라, 5년간 50조원을 들여 전국 500여곳의 옛 도심과 노후 주거지를 되살리는 ‘도시재생 뉴딜정책’을 펴고 있다. 이에 앞서 특색있는 골목상권이 살아난 서울 성수동 등 성공적 재생 사례도 있다.
 
그러나 도시재생을 둘러싼 잡음과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도시재생의 선두주자인 서울 문래동 예술창작촌처럼 예술가들이 들어가 도시재생을 해놓으니 집값이 오르고 결국 예술가들이 내쫓기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 벌어졌다. “알아서 뜨는 동네에 도시재생이라고 돈을 풀어, 건물주가 할 일을 시가 해준 격이다” “주민이 한꺼번에 쫓겨나면 재개발, 한명씩 쫓겨나면 도시재생이냐”는 매운 비판들이 나온다. 돈이 백억 넘게 풀렸는데 정작 주민들은 알지 못하는 일도 벌어진다. 한때 핫 플레이스였던 서울 삼청동과 경리단길은 치솟는 임대료를 못 이긴 원주민들이 빠져나가고, 개성 잃은 상권이 위기에 처했다.
 
학교 연구실에서 만난 정석 교수. 그는 ’사람이 나이 들어 몸이 아프다고 장기를 싹 다 잘라버리지는 않는다. 고치면서 살아간다. 도시재생도 그런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진영 기자]

학교 연구실에서 만난 정석 교수. 그는 ’사람이 나이 들어 몸이 아프다고 장기를 싹 다 잘라버리지는 않는다. 고치면서 살아간다. 도시재생도 그런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진영 기자]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를 19일 연구실에서 만났다. 그는 “돈과 정치적 이해가 도시재생의 본질을 오염시키고 있다”며 “국토를 한 몸으로 보고 내 몸 살리듯 돌보는 게 도시재생”이라고 말했다. 또 “소멸위기의 지방재생을 위해서는 단지 건물 짓기로는 안 된다. 사람들이 지방으로 내려가 먹고 살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시재생을 둘러싼 잡음이 많다.
“지금은 개발 시대에서 재생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다. 진통과 시행착오가 있을 수밖에 없다. 도시는 생명이다. 허공에 만들어진 게 아니라 땅과 물, 자연 생태계와 함께한다. 근대 이전에는 동서를 막론하고 그걸 잘 알았다. 내 땅에 내 집을 지어도 자연에 덧댄다는 기분으로, 내 맘대로 안 하고 주변을 살피며 문화를 존중했다. 그러다 근대 토목 건축술이 비약적으로 발달하면서 오만해지기 시작했다. 철골과 엘리베이터가 나오니 100층도 지을 수 있게 됐다. 스케일이 커졌고 워싱턴DC, 캔버라, 브라질리아처럼 온전히 사람이 새로 만든 계획도시가 등장했다. 그러나 서구 사회는 곧, 인간이 발명품처럼 만든 도시가 썩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더니즘으로 만든 도시의 한계를 자각하고 근대 이전 도시를 만들던 방법으로 돌아가되 모더니즘의 좋은 점은 적용하는 식으로 변했다. 오래된 도시를 잘 돌보고 유지 관리하는 방식이다. 이게 바로 재생이다.”
 
우리 도시개발 역사는 어떤가.
“우리는 1960~90년대까지 누구보다 빠르고 강하게 도시개발 시기를 겪었다. 개발시대의 한계점에서 또다시 재개발로 키워보려고 했던 것이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의 뉴타운이다. 단지 규모의 재개발, 재건축을 도시 규모로 키웠다. 개발시대의 끝판왕이다. 도시 재생의 중요성은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도시, 요즘 서울에서 뜨는 거리만 봐도 알 수 있다. 구닥다리 건물 싹 밀어내고 초고층 건물 들어서서 자동차로 연결되는 곳이 아니라, 오래된 저층 주택과 카페가 골목길에 나와 있어 걷고 싶은 곳들이다. 사람들이 걸어 다녀야 상권도 살아난다.”
 
도시재생을 내세우지만 실제는 재개발이라는 지적이 많다.
“개발에서 재생으로의 전환기인 건 분명한데, 저항이 있다. 자본과 정치 때문이다. 자본은 도시를 먹잇감으로 보고 일을 벌여 이익을 내려 한다. 정치권력은 표를 의식하고 임기 중 실적을 내는 데 이용하려 한다. 온갖 명분으로, 심지어 재생을 명분으로 개발을 요구한다. 개발 시대가 ‘크신재’, 즉 ‘크게크게, 신개발, 재개발’이라면 재생시대는 ‘작고채’, 즉 ‘작게작게, 고치고, 채우는’ 방식이다. 도시재생을 내세운 정부가 한편으로 수도권에 신도시를 하겠다고 하는데 절대 반대다. 지방도 더이상 신도시를 지어서는 안 된다. 신도시야말로 개발시대의 대표 상품이다. 원주 같은 경우 기업도시·혁신도시라는 신도시를 만들었다. 그 자체도 어정쩡한 데다가 지방 인구가 감소하다 보니, 신도시가 채워지면 원도심 인구가 유출되는 공동화 현상이 이어졌다. 지방 혁신도시들이 대부분 그렇다. 수도권 신도시도 주변 지방 어딘가를 거덜 나게 한다. 재생에서 중요한 건 국토를 지자체 단위 아닌 한 몸으로 봐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 대한민국 국토는, 수도권은 과밀로 터지기 직전이고 지방은 소멸·괴사 직전이다. 더는 수도권에 사람이 몰리게 하는 쪽으로 가서는 안 된다. 수도권의 사람이 지방으로 내려가는 방법밖에 없다.”
 
수도권 인구를 지방으로 내려가게 하려면 건물 짓는 것만으로는 안 될 것 같다.
“소멸위기의 지방을 살리려면 권한이 지방으로 내려오고, 지방이 현재 처한 상황을 칸막이로 보기보다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 건물을 짓고 도로를 내는 하드웨어가 아니라, 사람이 거기서 결혼하고 아이 낳고 편히 살 여건을 조성하는 소프트웨어에 집중해야 한다. 지금의 재생사업은 국토부가 하니 거기서 받은 돈을 허투루 쓰지 않았음을 입증하기 쉽게 건물 짓는 일을 주로 한다. 개발시대적 행정시스템의 관성 때문이다. 지방에 가보면 그렇게 지원금으로 지어진 건물이 텅 비어있는 경우가 많다. 서울의 앵커시설(핵심시설)들도 그렇다. 도시재생, 지방재생의 핵심은 건물, 철도, 도로를 만드는 게 아니다. 사람이 지방으로 와서 직업을 찾고, 아이 낳아 오래오래 살 수 있게 하는가가 재생 정책의 지표이자 성과가 돼야 한다.”
 
지역에 돈이 풀리면서 사업이 주민 아닌 외지인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할 우려도 나온다.
“지역주민을 위한 사업인데 지방 정치권력들이 자기 업적을 위해 생색내기용으로 써버리는, 그래서 정부지원이 독이 되는 일이 왕왕 있다. 그렇다고 정부가 돈을 안 쓸 수는 없다. 제대로 필요한 곳에 가도록 해야 한다. 문제는 언제나 그 돈을 노리는 세력이 있고, 그 세력은 이런 일에 밝다는 점이다. 정작 돈이 필요한 사람은 그 부분에 무관심하니 돈이 제대로 쓰이지 못한다. 주민이 제 지역 일에 주인의식을 갖는 게 그래서 아주 중요하다.”
 
젠트리피케이션의 해법이 있다면.
“이것도 뻔한 얘기 같지만 상생의 길을 찾는 것이다. 건물주야 임대료를 올리고 싶은게 당연하다. 그러나 결국 젠트리피케이션이 오고 상권이 쇠락한다. 붐 타고 들어온 외부 기획부동산들이 이익 챙기고 빠져나가면, 원래 건물주들만 거덜 나는 식이다. 건물주들이 지속성을 염두에 두고 개인플레이를 하기보다 세입자, 다른 건물주들과 공동의 이익을 찾는 것이 답이다. 관의 개입에도 한계가 있다.”
 
을지로 재개발 문제는 어떻게 보는가. 서울시는 을지로의 노포, 공구상가 철거 방침을 밝혔다가 큰 반발 끝에 철회했다.
“모든 주민이 원치 않는데도 건물을 밀어버리는 게 재개발이다. 우리는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하면, 그곳의 토지주가 아니라 시행사가 건축에 대한 권한을 갖는다. 큰 문제다. 재개발 구역 지정 자체를 해제해야 지금의 재개발을 포함한 다양한 대안이 가능해진다. 건물을 자신이 고치기도 하고, 옆집과 두 채를 합쳐서 넓게 만들 수도 있고, 동시에 지금처럼 큰 재개발도 누군가 하겠다면 열어줄 수 있다. 그러면 끊임없이 도시가 변화한다. 반면 재개발 구역 지정을 하는 순간, 사실상 건축의 기회를 원천봉쇄하고 거대자본인 시행사가 들어와서 다 때려 부수는 방법만 남게 된다. 그동안 을지로 건물주들이 화장실 하나 마음대로 못 고치게 해놓고 이제 와서 밀어버린다니 말이 되느냐며 분노하는 이유다. 선진국에 이렇게 무식하게 재개발 구역을 지정해서 하는 방식은 없다. 도시를 생명으로 본다면 재개발은 대수술, 고려장이다. 내가 침만 맞고도 나을 수 있는데 대수술을 하면 안 되지 않나. 재개발 구역 지정이 있는 한 도시 재생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도시재생을 ‘도시침술’로 부르기도 한다.
“1970년대 브라질 쿠리치바의 자이미 레르네르 시장이 돈이 적게 드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교통문제를 해결하고 도시를 재생시키면서 ‘도시침술 (Urban Acupuncture)’이란 말을 썼다. 대형공사 대신 아픈 곳에 침을 놓는 부분 시술만으로 도시를 살린 것이다. 1km 건설하는 데 천 억 넘게 드는 비싼 지하철 대신, 굴절버스와 튜브 정류장을 만들고 전용차로로 다니게 하는 BRT(Bus Rapid Transit)를 개발했다. 당시 버스 두 대를 붙이는 기술이 없어서 스웨덴 볼보사와 협의·제작했다. 지하철 건설 공사비의 20분의1로 나온 혁신이다. 지금 대구 광주에서 지하철 더 만든다고 하는데 넌센스다. 인구 100~200만 지방 도시에서 수지를 맞출 수 없다. BRT 같은 게 있는데 왜 지하철이냐. 지하철 통해 이익을 얻는 사람이 있으니까 그렇다. 최근 정부의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사업들도 대부분 도로, 철도사업이다. 부산에도 지하도로 가는 계획이 있더라. 아직도 개발시대처럼 지하개발, 대규모 신도시 건설에 매몰돼 있단 얘기다. 솔직히 우리나라는 지금도 도로 건설이 잘된 편이다. 정치적으로 도로 건설에 대한 요구가 끊임없이 생기는 게 안타깝다.

콜롬비아 보고타와 메데진도 좋은 재생도시다. 메데진은 빈민도시인데 산동네에 케이블카를 놓으면서 도시가 살아났다. 이처럼 1940~50년대 이후 세계 도시들은 더이상 때려 부수고 새로 짓는 일을 거의 안 한다. 한국과 중국, 중동의 몇 나라만 할 뿐이다.” 
 
정석은…
1962년생. 서울대 도시공학 박사. 현 서울연구원의 전신인 서울시정개발연구원에서 오래 일하며 서울시 도시개발에 참여했다. 저서로 『도시의 발견』 『나는 튀는 도시보다 참한 도시가 좋다』 등이 있다.

 
양성희 논설위원
 
* 이 기사의 취재 작성에는 박규민 인턴기자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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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