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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 위 임신중절은 처벌 못해···'낙태선' 바다 떠다닌다

원치않는 임신을 한 여성들에게 안전한 낙태를 하게 해주는 네덜란드 사회단체 '파도 위의 여성들'(Women on Waves) 설립자이자 산부인과 의사 레베카 곰퍼츠. [레베카 곰퍼츠 페이스북]

원치않는 임신을 한 여성들에게 안전한 낙태를 하게 해주는 네덜란드 사회단체 '파도 위의 여성들'(Women on Waves) 설립자이자 산부인과 의사 레베카 곰퍼츠. [레베카 곰퍼츠 페이스북]

약 2만 2800명. 미국 구트마커 연구소가 지난해 3월 발표한 ‘안전하지 않은 낙태(인공임신중절)’로 1년 간 목숨을 잃은 전 세계 여성들의 숫자입니다. 낙태가 불법인 나라에서 의료 무자격자에게서 수술을 받거나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임신중절을 시도하다 숨지는 것이지요.
 
이 같은 비극을 막기 위해 나선 이들이 있습니다. 네덜란드 사회단체 ‘파도 위의 여성들’(Women on Waves)입니다. 산부인과 의사 레베카 곰퍼츠가 1999년 “남아프리카에서 원치 않은 임신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목격하고 설립했다”는 단체입니다.
 
낙태선·낙태드론으로 낙태 금지 국가 여성들 도와
'파도 위의 여성들'(Women on Wave)에서 운영하는 낙태선. 이들은 이 배를 타고 공해로 나가 낙태불법국가에 살고 있는 여성들에게 낙태약을 제공한다. [사진 Women on Waves 홈페이지]

'파도 위의 여성들'(Women on Wave)에서 운영하는 낙태선. 이들은 이 배를 타고 공해로 나가 낙태불법국가에 살고 있는 여성들에게 낙태약을 제공한다. [사진 Women on Waves 홈페이지]

파도 위의 여성들은 낙태가 불법인 국가에서 임신 10주 이하 여성들이 연락을 해올 경우 배에 태운 후 유산유도약인 미페프리스톤(mifepristone)과 미소프리톨(misoprostol)을 복용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이 배는 ‘낙태선’이라고도 불리는데요. 여기에서 이뤄지는 임신 중절은 여성의 국적에 관계없이 처벌받지 않습니다.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는 바다, 즉 공해에선 선박 소속 국가의 법이 적용되기 때문이죠. 네덜란드 정부는 1984년부터 낙태를 허용해 현재 임신 22주차까지 임신 중절이 가능합니다.
 
낙태선엔 의료진도 함께 하면서 의학적 진단과 조언도 하는데요, 이들은 아일랜드를 시작으로 폴란드·포르투갈 등 낙태가 불법인 7개국을 돌며 ‘안전한 낙태’를 돕고 있습니다. 활동이 순탄치만은 않습니다. 지난 2004년 포르투갈 정부는 낙태선이 자국에 정박하지 못하도록 군함 두 척을 보냈고 비슷한 시기 언론도 이 단체에 혹평을 쏟아냈습니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나치게 급진적”이라고 했고 가디언은 “히스테릭하다”고 평했습니다. 네덜란드 정부도 한때 곰퍼츠의 의사 자격을 박탈하려고 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사회적 논쟁을 거듭하면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들을 막던 포르투갈은 2007년 국민투표를 거쳐 낙태를 합법화했고  네덜란드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이들에게 배 위에서 낙태할 수 있는 공식 자격을 부여하기도 했습니다.
드론을 통해 유산유도약물을 전달하고 있는 모습. [사진 Women on Wave 홈페이지]

드론을 통해 유산유도약물을 전달하고 있는 모습. [사진 Women on Wave 홈페이지]

파도 위의 여성들은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이들을 위해 최신 기술도 활용하고 있습니다. 2015년부턴 ‘낙태 드론 캠페인’을 시작해 독일에서 폴란드로 드론으로 유산유도제를 전달했고, 지난해엔 배송 로봇을 도입하기도 했습니다. 낙태가 합법인 국가에서 드론과 로봇을 조종해 유산유도제를 전달하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게 파도 위의 여성들 측 주장입니다. 또 이들은 ‘우먼 온 웹’(Women on web) 캠페인을 통해 낙태를 원하는 이들에게 온라인 상담을 제공하고 우편으로 유산유도제를 보내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이들에겐 제약이 많습니다. 지난 2017년 가톨릭 국가 과테말라에선 낙태선이 억류됐다 추방당한 일도 있었는데요. 이에 레티시아 제비치 파도 위의 여성들 대변인은 “종교는 존중한다”면서도 “낙태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가장 기본적인 권리”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46년전 낙태 합법화한 미국, 여전히 논쟁 중
1973년 미 연방대법원에서 낙태죄는 위헌이라는 편결이 나온 후 손을 들고 있는 소송 원고 제인 로(왼쪽)와 그의 변호사 새라 웨딩턴(오른쪽). [유튜브 캡쳐]

1973년 미 연방대법원에서 낙태죄는 위헌이라는 편결이 나온 후 손을 들고 있는 소송 원고 제인 로(왼쪽)와 그의 변호사 새라 웨딩턴(오른쪽). [유튜브 캡쳐]

파도 위의 여성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세계에서 낙태를 둘러싼 논쟁은 여전히 뜨겁습니다. 합법·불법을 가리는 것 뿐 아니라 어떤 경우, 어느 시기에 낙태를 허용할지 등 민감한 문제가 얽혀있기 때문이죠. 낙태를 전면 금지한 엘살바도르에선 낙태한 여성에게 징역 2~8년이 선고되는데요. 지난 2016년 태아에게 선천적 소두증을 유발하는 지카바이러스가 유행할 당시 세계보건기구(WHO)가 엘살바도르에 낙태 허용 범위를 확대하라고 권고했지만 당국은 이마저도 거절했습니다.
 
46년 전 연방대법원에서 낙태 합법화 판결을 한 미국에서조차 논란은 진행형입니다. 1973년 미 연방대법원은 낙태죄가 수정헌법 14조 프라이버시권에 어긋난다며 위헌 판결을 내린 바 있습니다. 이 역사적인 사건은 소송을 제기한 제인 로(본명 노마 매코비)와 담당 검사 헨리 웨이드의 이름을 따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이라고 불립니다. 그런데 95년 로는 종교를 갖게 된 후 “내 이름으로 불리는 법을 없애는 데 여생을 바치기로 했다”며 이 판결을 뒤집기 위해 낙태반대운동에 적극 나서기도 했습니다. 로는 끝내 판결을 뒤집지 못하고 지난 2017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지난 5일 국정연설을 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 미국 대통령. 그는 이 자리에서 '후기 낙태'에 반대하는 발언을 했다. [AP=연합뉴스]

지난 5일 국정연설을 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 미국 대통령. 그는 이 자리에서 '후기 낙태'에 반대하는 발언을 했다. [AP=연합뉴스]

낙태는 현재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 간에 치열한 논쟁 사안이기도 합니다. 미국은 각 주마다 낙태 허용시기가 다릅니다. 지난 5일 트럼프 대통령은 국정연설에서 “뉴욕 의원들은 태어나기 직전 아기를 엄마 자궁에서 떼어내는 법안 통과에 환호했다”며 “자궁에서 고통을 느낄 아기들을 위해 ‘후기 낙태’를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는 앤드류 쿠오모 뉴욕 주지사가 임신 24주까지 낙태를 허용하되 그 이후엔 임신부의 생명이 위독할 경우 낙태를 가능하게 하는 법안에 서명한 것을 두고 한 말입니다. 이에 윌리엄 갤스톤 브루킹스연구소연구원은 “트럼프가 낙태 등 문제를 백인 복음주의자의 지지를 얻기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신호를 보냈다”고 지적했습니다. 낙태가 향후 트럼프 재선 가도에서도 피할 수 없는 이슈가 될 거란 예측이지요.
 
이처럼 낙태는 전세계 어디서나 뜨거운 감자입니다. 한국에선 오는 4월 11일 헌법재판소가 형법상 낙태 처벌 조항인 ‘낙태죄’에 대한 위헌 여부를 선고할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우리는 낙태 문제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요.
 
김지아 기자 kim.j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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