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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인 듯 광해 아닌…영화보다 독해진 ‘왕이 된 남자’

드라마 ‘왕이 된 남자’에서 애틋한 로맨스를 펼치는 광대 하선(여진구, 오른쪽)과 중전(이세영). 원작영화 ‘광해’와 가장 큰 차별점이다. [사진 tvN]

드라마 ‘왕이 된 남자’에서 애틋한 로맨스를 펼치는 광대 하선(여진구, 오른쪽)과 중전(이세영). 원작영화 ‘광해’와 가장 큰 차별점이다. [사진 tvN]

임금을 쏙 빼닮은 광대가 심신이 피폐해진 임금 대신 용상에 앉아 선정을 펼친다. 2012년 1200만 관객을 모은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줄거리다. 이를 리메이크한 tvN 드라마 ‘왕이 된 남자’도 기본 얼개는 원작과 같다. 하지만 중반부터 완전히 다른 전개를 펼쳤다.
 
영화에서 이병헌이 연기한 임금이 궁에 돌아와 광대 하선을 죽이라 명했던 것과 달리 드라마에서는 도승지 이규(김상경)가 폭군이 돼가는 임금(여진구 1인 2역)을 독살한다. 애민(愛民) 리더십을 펼 것으로 보이는 광대 하선과 함께 이상적인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다. 파격적인 전개에 힘입어 이 드라마의 시청률은 종영을 3회 앞둔 19일 10%(닐슨코리아)까지 올랐다.
 
원작영화를 만든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는 “임금이 독살되는 대목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며 “영화를 리메이크한 드라마의 성공 사례로 남을 것 같다”고 말했다. 영화 원작 드라마는 소설·웹툰 원작과 마찬가지로 대중에게 이미 검증받은 콘텐트라는 게 강점. 탄탄한 스토리와 익숙한 캐릭터가 기대감을 높이지만, 반대로 2시간짜리 영화와 다른 점이 없다면 16부작 드라마로 확장이 힘든 약점도 크다.
 
배우 이병헌이 임금과 광대, 1인2역을 맡은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사진 CJ 엔터테인먼트]

배우 이병헌이 임금과 광대, 1인2역을 맡은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사진 CJ 엔터테인먼트]

드라마 ‘왕이 된 남자’는 원작의 ‘광해’를 떼어내며 차별화의 물꼬를 텄다. 시대 배경을 광해군 때로 못 박았던 영화와 달리, 드라마는 조선의 어느 임금 때인지 모호하다. 대동법 시행, 명과 후금 사이의 외교적 줄타기 등은 원작과 겹치지만 드라마 어디에도 광해군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원작뿐 아니라 정사(正史)로부터 자유로운 상상력의 여지가 생긴 것이다. 임금이 독살되는 파격도 광해의 그림자를 지워냈기에 무리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장정도 책임프로듀서는 “시대를 특정하면 16부작으로 풀어가는 데 여러 제약이 생길 것 같았다”며 “원작의 플롯을 가져오되 가상의 왕이 현실정치와 사랑에 눈을 떠간다는 판타지 상황을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금의 독살 외에도 드라마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하선에 맞서 반정 세력의 중심에 서는 대비(장영남)라는 새로운 캐릭터가 생겼다. 이상적인 세상을 꿈꾸며 권력욕을 키워가는 도승지처럼 기존 캐릭터의 감정선도 디테일해졌다. 그래서 “원작과 같은 건 조내관(장광)뿐”이란 말까지 나온다.
 
특히 로맨스는 원작보다 한층 강화됐다. 드라마는 하선의 따뜻한 인간미에 매료된 중전(이세영)의 달콤하면서도 애틋한 사랑을 큰 축으로 삼는다. 여진구와 이세영이란 젊은 배우를 캐스팅한 이유가 뚜렷해진다. 영화와 달리 중전은 하선이 가짜임을 알고 나서도 지아비로 여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올바른 정치에 대한 고민과 멜로가 균형을 맞추며 드라마가 전개된다”며 “두 가지가 따로 놀지 않고 서로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있다”고 평했다. “임금의 독살이란 반전을 넣는 등 과감한  변용을 시도한 점도 눈에 띈다”고 덧붙였다.
 
주인공 성별과 얼굴 변화 주기를 바꿔 원작과 차별화한 드라마 ‘뷰티 인사이드’. [사진 JTBC]

주인공 성별과 얼굴 변화 주기를 바꿔 원작과 차별화한 드라마 ‘뷰티 인사이드’. [사진 JTBC]

지난해 방영된 JTBC 드라마 ‘뷰티 인사이드’ 또한 원작 영화를 과감히 변주, 새로운 이야기로 호평받았다. 얼굴이 바뀌는 주인공을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꿨고, 얼굴이 매일 바뀌는 게 아니라 한 달에 일주일만 다른 얼굴로 살아간다는 새로운 설정을 만들었다. 원작에 없던, 안면인식장애를 가진 남자(이민기)가 등장해 한 여자(서현진)만을 알아보는 마법 같은 로맨스를 펼치며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흥행 영화의 드라마화는 계속될 전망이다. 한물간 스타 가수와 매니저의 우정을 그린 안성기·박중훈 주연 영화 ‘라디오 스타’(2006)는 드라마 각본 작업에 들어갔다. 두 편 합쳐 2700만 관객을 모은 저승 판타지 영화 ‘신과함께’ 시리즈도 드라마로 만들어진다.
 
드라마 ‘라디오 스타’는 영화 시나리오를 쓴 최석환 작가가 기획 단계부터 참여했고, 영화 ‘중독’(2002)의 변원미 작가가 가세했다. 제작사 PF컴퍼니의 김종원 이사는 “주인공인 가수 최곤과 매니저 민수 뿐 아니라, 강 PD와 그들 가족의 삶과 이면을 촘촘하게 그려낼 계획”이라며 “꿈과 현실 사이에서 아파하는 루저들을 위한 힐링드라마라는 원작의 장점을 살려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웹툰 ‘신과함께’를 영화에 이어 드라마로도 만드는 원동연 대표는 “올해 안에 대본을 완성한 뒤 내년 하반기 촬영에 들어갈 계획”이라며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원작의 인기 캐릭터 진기한(염라국 국선변호사)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간다”고 말했다. 또 “저승·이승·신화 편으로 나눠진 웹툰 원작처럼 시즌제로 가는 걸 염두에 두고 있다”며 “각색된 영화에 충분히 만족하지 못했던 팬들이 좋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석진 드라마평론가(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흥행한 영화를 드라마로 만들 때 ‘지금 이걸 왜 드라마로 만드는가’를 시청자에게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며 “그에 대한 치열한 고민 없이, 성공한 원작의 유명세를 보험 삼아 가져가려 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재창조에 가까운 변용으로 상상의 지평을 넓히면서도 올바른 리더십이란 원작의 메시지를 담아낸 ‘왕이 된 남자’처럼, 원작의 재해석과 새로운 의미 부여로 드라마의 독창성을 확보하지 않으면 아무리 흥행한 영화의 리메이크라도 대중의 외면을 받을 거란 얘기다.
 
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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