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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죽음의 비밀, 소설 몫으로...정호영 '광해와 이순신'



【서울=뉴시스】 신효령 기자 = "말 위에서 뒤를 돌아본 광해는 멀리서 불타는 대궐을 보자 와락 눈물이 솟구쳤다. 참담했다.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었다. 백성을 버린 나라의 무능이 자초한 결과였다. 임금인 선조를 비롯해 조정 중신들 모두 고개를 숙인 채 어둠 속으로 힘겹게 발길을 재촉했다. 불길은 삽시간에 번져 조선 200년의 역사가 담긴 경복궁과 창덕궁, 창경궁이 차례로 탔다. 광화문 앞 형조와 장예원도 불길이 치솟았다."



정호영 국방일보 기자가 '광해와 이순신'을 냈다. 임진왜란을 주무대로 조선의 현실, 정치상황을 파헤친 소설이다.



임진왜란은 동아시아 역사의 분수령이 된 일대 사건이다. 이후 17세기 초중반까지 일본과 중국은 임진왜란 여파로 격변기를 겪었다. 이때 새롭게 태어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에도 막부와 중국의 청나라는 19~20세기로 이어졌다.



일본의 전국시대를 마감하고 통일한 절대 권력자인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을 침략했지만 실패했다. 그 여파로 가문은 멸망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권력자가 되어 에도막부를 열었다. 조선을 구하기 위해 원병을 보낸 명나라 또한 전란의 후유증으로 만주에서 세력을 키운 누르하치의 후금(훗날 청나라)에게 중국 대륙의 패권을 넘겨줬다.



"사방 천지가 폭음으로 진동했다. 조총과 포탄이 난무하고 거친 함성과 횃불이 뒤엉켜 어느 한쪽이 끝장이 날 때까지 치열하게 부딪쳤다. 지옥이 따로 없을 정도로 처절한 격전이었다. 단말마적인 비명과 외침이 성 안팎 곳곳에서 메아리쳤다. 뿌옇게 새벽이 다가왔다. 밤새 계속된 전투로 사방천지가 비릿한 피로 가득 채워졌고,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널브러졌다."



정씨는 "이순신 장군이 마지막 해전인 노량해전(1598)에서 돌아가신 지 올해로 421주년"이라며 "지금까지도 이순신 장군의 죽음에 대해서는 논란이 끊임이 없다"고 했다.



"자살설과 은둔설 등이 그것이다. 전사라는 역사적 기록에 대한 의문이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이순신 장군에 대한 연구와 역사적 기록은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과 중국에서도 성과가 적지 않다. 그럼에도 속시원한 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결국 이순신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밝히고 싶은 욕심이 소설을 쓰게 했다." 416쪽, 1만5800원, 하다



snow@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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