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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양희경, 세상에 이런 사랑도 있습니다···'자기 앞의 생'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배우 양희경(65)의 모성에는 한계가 없다. TV드라마에서 이모, 고모 역을 주로 맡았지만 무대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연극 '민자씨의 황금시대'에서 철없는 엄마였지만, 삶의 희로애락과 모성애를 아는 '민자'를 연기했다. 1990년대 인기를 누린 작품으로 양희경의 대표작으로 통하는 모노극 '늙은 창녀의 노래' 속 한물 간 작부는 모성애가 느껴지는 따듯함으로 외로운 이들을 품었다. 언니인 가수 양희은(67)의 노래 '엄마가 딸에게' 뮤직비디오에서는 눈물이 날 정도로 절절한 모성애를 보여주기도 했다.

22일부터 3월23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하는 국립극단 올해 시즌 첫 작품 '자기 앞의 생'(연출 박혜선)에서는 그동안의 모성애를 뛰어 넘는 사랑을 보여준다.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프랑스 공쿠르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로맹 가리(1914~1980)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프랑스 작가 겸 배우 자비에 제이야르(75)가 각색해 2007년 초연, 프랑스의 가장 권위 있는 연극상 몰리에르에서 최고작품상, 최고각색상, 최우수연기상 등 주요 부문을 석권했다. 국내 관객에게는 국립극단이 이번에 처음 소개한다.

파리 슬럼가의 아파트가 배경. 자신의 부모가 누구인지 모르는 아랍계 소년 '모모'와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을 키우는 유대인 보모 할머니 '로자'의 이야기다.

양희경이 맡은 로자는 삶의 고초를 온 몸으로 겪었다. 폴란드 출신의 이미자인 그녀는 아우슈비츠에서 생사를 넘나들었다. 창녀 생활을 했고, 파리 빈민가에 산다. 보통 유대인이면 상상할 수도 없는, 무슬림 아이인 모모와 같이 살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녀는 외로운 모모의 삶을 지탱해준다. 혈육이 아닐뿐더러 인종, 종교, 세대 등 모든 사회적 기준이 다른 모모를 품는다.

예전에 '자기 앞의 생'을 읽었다는 양희경은 지난해 9월 처음 캐스팅 제안을 받은 뒤 "한 달 넘도록 생각을 많이 했다"고 털어놓았다. "제가 과연 이런 로자 역을 잘 감당할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오래 심사숙고했죠."

원작 소설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해 다양한 사연으로 얽히지만 연극에는 로자와 모모를 포함해 이웃집 의사 카츠, 모모의 친아버지인 유세프 카디르 등 네 캐릭터만 나온다.
"로맹 가리의 팬이 많잖아요. 희곡도 나름의 색깔을 가지고 있고 매력이 있지만 소설과 비교당할 것이 많죠. 이 희곡으로 어떻게 어필할 수 있을까 고민도 됐어요. 결국 로자 역과 희곡에 설득을 당해 하게 됐지요."

무엇보다 이번에 '자기 앞의 생'을 다시 톺아보면서 "피를 나눈 사이가 아니더라도, 진한 사랑을 나눌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했다. "식구(食口)라는 말이 있잖아요. 말 그대로 같이 밥을 먹는 사이인데, 피를 나누지 않았어도 같이 나누고 살면 그것이 가족 아니겠어요."

양희경은 낯선 두 할머니가 개, 고양이, 닭 등과 함께 혈연관계가 아님에도 식구가 되는 과정을 그린 뮤지컬 '식구를 찾아서'에 감동을 받아 삽입곡을 편곡해 만든 노래 '넌 아직 예뻐'를 양희은과 함께 부르기도 했다.

"유대인과 무슬림은 엄청난 대립을 하잖아요. 로자와 모모는 그런 종교를 비롯해 인종, 세대 등 모든 것을 초월해요. 배경을 떠나 온전히 인간애, 사랑으로 맺어지는 관계죠. 그것을 온전히 보여주자는 마음이에요. 로자 할머니처럼 깊고 넓은 사랑은 아니겠지만 충분히 표현하고자 노력하고 있죠. 처음에는 연구를 많이 했는데 곁가지를 다 쳐내니, '결론은 사랑'이더라고요."

일상에서 양희경의 사랑은 '밥의 힘'을 기반 삼는다. 최근 종방한 KBS 2TV 가족 예능 프로그램 '볼 빨간 당신'에서 보여준 '집밥의 힘'이 보기다. 아흔살 모친을 위해 보리야채샐러드와 라따뚜이 등 건강식을 손수 만드는 모습으로 주목 받은 그녀는 연극, 방송, 라디오 등을 오간 전성기에도 두 아들을 위해 매일 집밥을 했다.

"아들들을 방목해도 눈 앞에 둬야 했죠. 바빠서 잘 챙겨주지 못하니, 밥이라도 제대로 해먹이자는 생각이 컸어요. 언제 돌아와도 집에는 '맛있는 밥'이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끔 맛있는 밥과 반찬을 만들어놓았죠. 그리고 아이들을 믿었어요. 무슨 일을 겪어도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온다고요. 호호."

큰아들 한원균씨는 무대 조명 디자인, 둘째아들 한승현씨는 배우로 활동하면서 연기지도를 하고 있다.

서울예대 연극과 출신인 양희경은 1981년 연극 '자 1122년'으로 데뷔했다. 육아로 인해 잠시 쉬다가 1985년 연극 '한씨연대기'로 연기 활동을 재개했다. '늙은 창녀의 노래' 같은 연극, 양희은과 함께 출연한 '어디만큼 왔니'를 비롯해 '넌센스' 등 뮤지컬뿐 아니라 '목욕탕집 남자들' '하얀거탑' '누나' '넝쿨째 굴러온 당신' '이별이 떠났다' 등 다수의 드라마에도 나왔다. 특히 1990년대 초 MBC TV 예능 프로그램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영화 '미저리'의 미친 간호사 '애니 윌크스'(케시 베이츠)를 패러디한 광기 어린 연기는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그렇게 바쁜 가운데도 고향과 같은 연극 무대는 꾸준히 찾았다. 장민호(1924~2012) 백성희(1925~2016) 윤소정(1944~2017) 등 선배 연극인들의 빈소와 영결식에도 빠지지 않았다.

"백성희, 윤소정 같은 선배님들 뿐만 아니라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 중인 박정자, 손숙 선배님처럼 저 역시 오래 무대에 서고 싶어요. 그 분들 덕분에 연극계가 지켜지고 있죠. 근데 연극계는 더 힘들어졌어요. 선배들을 잇는 대가 끊어졌고, 환경은 여전히 열악하죠. 영화와 TV로 활동 무대를 옮기면 연극 활동 병행이 힘들어질 수밖에 없지요. 양쪽이 균형 있게 잘 융화가 됐으면 해요."

TV드라마에 잇따라 출연하면서도 1년에 한편씩 무대에 올랐던 양희경은 3년 간 쉬다가 지난해 영국 추리작가 애거사 크리스티(1890~1976) 원작 '쥐덫'으로 연극에 복귀했다. 몇 년 새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진 탓에 매일 라이브로 공연해야 하는 연극이 부담스러웠는데, '쥐덫'의 '보일' 역은 2막 중간에 사라지는 역으로 그것이 덜했기 때문이다.

이번 로자 역은 국립극단 시즌단원인 이수미(46)와 나눠 맡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무대에 있어야 해 부담이 제법 크다. 그녀는 13회 무대에 오른다. "아직도 두렵고 무서워요. 여전히 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고요. 하지만 연극이 좋으니까, 로자의 사랑을 표현하고 싶으니까 잘해내야죠." 특유의 카랑카랑한 웃음이 여전했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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