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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넘게 포기했던 공부, 손자 응원에 다시 펜 잡았죠.”

올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하는 만학도 김기남씨. [사진 김기남씨]

올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하는 만학도 김기남씨. [사진 김기남씨]

‘김.기.남’
 
하얀색 종이 위에 또박또박 검은색 글씨를 써 내려 갈 때마다 김기남(77·여·서울 서대문구)씨는 눈시울이 붉어진다고 했다.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제대로 쓸 수 없었던 그다. 지하철 역명이나 상점 간판을 제대로 읽지 못해 거리를 헤맸던 일도 부지기수. 그 막막하고 서러웠던 세월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다고 한다.
 
‘공부하고 싶다’는 김씨의 소박한 꿈은 초등학교 2학년 때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무너졌다. 전쟁이 끝난 후 학교와 집은 폐허가 됐고, 학업에 대한 꿈도 함께 무너졌다. 매일 끼니를 걱정하는 생활이 이어졌고, 학교에 가는 대신 아버지 장사와 어머니 집안일을 도왔다. 공부에 대한 열망은 그렇게 마음속 한(恨)으로 남게 됐다.
 
19살의 어린 나이에 결혼한 후에는 다섯 남매를 낳아 기르느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자녀들이 성인이 된 후 첫째 며느리의 도움으로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학교에 입학했지만, IMF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또 한 번 좌절을 겪었다. 남편 사업이 부도가 나면서 집안이 풍비박산 난 것이다. 5억~6억원의 빚을 진 그에게 공부는 사치고 낭비일 뿐이었다.
김기남씨가 한자와 한글, 영어로 쓴 자신의 이름. [사진 김기남씨]

김기남씨가 한자와 한글, 영어로 쓴 자신의 이름. [사진 김기남씨]

20여년의 세월이 지나 생활이 안정을 되찾았을 때는 나이가 마음에 걸렸다. 당시 그의 나이는 75세. 김씨는 뭔가를 배우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 만큼 살았는데 글을 배운다고 쓸모가 있을 것 같지도 않아서다. 오랜 꿈을 시작도 전에 포기하려고 할 때, 당시 고3이었던 큰 손자의 말 한마디가 그의 손에 펜을 쥐게 했다. “사람이 꼭 무엇이 되기 위해 공부하는 게 아니고, 배움 그 자체가 보람이고 행복이라는 얘기였어요. 제가 배우는 재미를 꼭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입니다. 손자의 말에 저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쏟아지더군요. 다시 한번 도전해 보자는 마음이 들었죠.”
 
그렇게 2년 전 서울 양원주부학교에 입학한 김씨가 올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한다. 두 번의 좌절을 딛고 일어나 자신의 꿈을 이룬 것이다. 자신의 이름 석 자를 한글은 물론, 영어와 한자로도 척척 써낸다. 앞으로 고교·대학에 진학해 수필가가 되겠다는 목표도 생겼다. 그의 소원은 “하늘이 부르는 그 날까지 배우는 것”이란다.
 
김씨처럼 유년시절 학업을 포기했다가 뒤늦은 나이에 배움의 길에 들어선 성인 800여 명이 참여하는 졸업식이 21일 오후 2시 서울 서초구 방배동 서울시교육청연수원에서 열린다. 서울시교육청이 ‘초등·중학 학력 인정 문해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한 성인을 대상으로 개최하는 행사다.
서울 전곡초의 만학도 학생들이 색연필로 글씨 연습을 하고 있다. [사진 서울시교육청]

서울 전곡초의 만학도 학생들이 색연필로 글씨 연습을 하고 있다. [사진 서울시교육청]

이날 졸업장을 받는 사람은 총 854명으로 이 중 656명은 초등 과정, 198명은 중학 과정을 마쳤다. 프로그램 이수자 중에는 60대가 32%, 70대가 50.8% 등 50~80대의 장·노년층이 97%를 차지한다. 올해 최고령 만학도인 영등포구청의 이순섬(92·여)씨는 졸업장과 함께 우수한 학생에게 수여하는 교육감 표창을 받는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2011년 전국 시도교육청 중에 처음으로 ‘초·중 학력 인정 문해 교육 프로그램’ 운영했고, 지난해까지 총 3856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문해 교육은 정규 교육의 기회를 놓친 성인들이 글자를 읽고 쓰는 것을 넘어 생활에 필요한 글쓰기 능력을 갖추게 하고, 초·중학교 학력취득의 기회를 제공한다.
 
현재 서울 시내 각 기관에서 2844명이 학력 인정 문해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문해 교육 프로그램 운영기관을 올해 77개 기관(초등 62개, 중학 15개)을 설치·지정해 100세 시대 성인학습자의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확대·운영할 예정이다.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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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