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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유독 주한미군에 헐값을 매기는 트럼프

채병건 국제외교안보팀장

채병건 국제외교안보팀장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대단한 협상가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유독 주한미군에 대해선 헐값을 매긴다. 지난해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뒤 한·미 연합훈련을 놓고 “엄청난 돈을 쓰고 있다”며 “주한미군을 빼내고 싶다”고 공언한 게 그렇다. 한국을 향해 방위비분담금을 올리라고 압박하는 데선 120% 효과를 봤겠지만, 북한과 중국을 상대로 비핵화를 압박하는 데선 가장 큰 패를 노출해 버렸다.
 
영어에 ‘Do the math’라는 표현이 있다. ‘계산을 해봐. 따져봐. 그럼 답이 나오잖아’ 대충 이런 느낌이다. 주한미군에 대해 ‘Do the math’를 해보자. 트럼프 대통령은 ‘아름답다(beautiful)’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 데 미국 입장에선 주한미군이 아름답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주 “전화 두어 통에 한국이 5억 달러를 더 내기로 했다”고 밝혔는데 ‘아메리카 퍼스트’를 보여주는 데선 5억 달러보다 더 아름다운 숫자가 있다. 미국은 “협상 몇 차례에 한국이 80억 달러 가까이 썼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는 과거 정부의 치적이니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쓰기 싫은 말이겠지만 사실 임에는 틀림없다. 해외 주둔 미군 기지 중 가장 최신식인 평택의 캠프 험프리스를 건설하는 데 한국 정부는 8조9000억원(79억 달러)을 댔다. 이 아름다운 평택 기지와 다른 미군 기지에서 2만8000여명의 병력을 미국으로 빼면 어디에서 재우고 먹이고 훈련시킬 것인가.
 
에드윈 퓰너 헤리티지재단 아시아연구센터 회장 얘기는 이랬다. 본지 인터뷰에서 “주한미군을 예를 들어 켄터키로 옮긴다고 상상해보게나. 거기에도 비용이 들 것”이라고 말했다. 전세계 어디에서 캠프 험프리스처럼 아름다운 기지를 만들려 해 보라. 비용은커녕부지 확보도 어렵다. 지금 지구 상에서 지상군을 타국에 보내 정권을 일거에 무너뜨릴 능력과 경험이 있는 나라는 미국밖에 없다.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에 미군이 들어가 ‘레짐 체인지’를 했다. 북한이 줄기차게 ‘한반도 비핵화’를 요구하는 주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해 핵을 개발했으니 비핵화는 북한 비핵화가 아니라 주한미군까지 포함하는 한반도 비핵화라는 논리다. 그러니 미국이 북한을 상대할 때 가장 위협적이면서 가장 치명적인 카드는 외교(종전선언)·경제(제재완화)가 아닌 군사다.
 
그러나 군사 카드는 경제·외교와는 달리 한번 쓰면 되돌릴 수 없는 ‘불가역적 조치’다. 미국이 가장 꺼리는 대북제재는 일시적으로 완화했다가 나중에 다시 옥죄면 되는 가역적 방법이다. 그러나 주한미군은 빼면 그걸로 끝이다. 주한미군이 떠난 평택엔 아파트와 상가가 들어와 있을 테니 다시 들어올 수가 없다. 그래도 미국이 다시 들어오려 하면 중국이 온몸으로 막으려 할 것이다. 연합훈련 일시 중단이야 그렇다 쳐도 비핵화 입구에서 주한미군 철수를 꺼내 든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이 북한을 상대로 얼마나 아름다운 협상력을 갖고 있는지 몰라도 너무 모른다.
 
주한미군이 또 아름다운 이유는 중국 때문이다. 트럼프 정부는 지금 중국을 상대로 경제와 안보 모든 면에서 압박 작전을 구사하고 있다. 남중국해를 안방으로 만들려는 중국을 힘으로 막는 건 전임 오바마 행정부에 이어 트럼프 행정부도 마찬가지다. 이달 11일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제도(난사군도) 인근 해역에 미국 이지스 구축함 2척이 보란 듯이 지나갔다. 중국은 남중국해는 영해화로 나섰고 동중국해선 일본과 육박전을 불사했으나 한반도 일대에선 그러기가 쉽지 않다. 한반도에 미 육·해·공군이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여차하면 미 항모가 서해로 진입할 수도 있다. 주한미군은 존재하는 그 자체로 동북아에서 중국의 군사적 팽창을 막는 참호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을 헐값에 내다 팔면 안된다. 주한미군은 빼고 주일미군에 맡기는 순간 한국이라는 동맹도 사라지고, 비핵화를 견인할 최종적 수단도 사라지고, 중국을 견제할 교두보도 사라진다. Do the Math!
 
채병건 국제외교안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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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