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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읽기] 자기혐오에 대처하는 요령

장강명 소설가

장강명 소설가

처음 ‘이불킥’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누가 만들었는지 표현 참 절묘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안도했다. 다른 사람들도 자기 전에 부끄럽고 후회되는 기억으로 이불을 발로 많이 걷어차는구나, 신조어가 만들어질 정도구나, 나만 그런 건 아니구나, 싶어서.
 
모든 면에서 정신이 완벽하게 건강한 현대인이 있긴 할까? 현대라는 환경이 사람들을 모두 조금씩 미치게 만드는 것일까, 아니면 충분히 튼튼한 사람들에게 ‘당신도 예외는 아냐’라며 그물처럼 촘촘한 병명과 증상 목록을 들이미는 시대인 걸까. 어쨌든 내가 받아든 진단서는 자기혐오다. 주변에 이불이 없을 때도 수시로 이불킥 증세에 시달린다. 내 경우 흔히들 말하는 ‘낮은 자존감’과는 조금 다른 상태 같다. 다른 사람에게 휘둘리는 편도 아니고 사회생활도 그럭저럭한다. 문제는 타인이 아니다. 나의 못난 점을 내가 잘 알고 있으며 그것이 너무나 혐오스러움에도 어쩌지 못한다는 좌절감이다. 층간소음 비슷하다. 당장 이사를 갈 정도는 아니나, 편히 잠을 이루지도 못하는.
 
조금 전에 진단서라는 단어는 비유적으로 썼다. 아직 이 문제로 병원에 가거나 심리상담을 받은 적은 없다. 관련 공부를 한 것도 아니다.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개인적인 경험에 기초한 요령이다. 스스로 위험하다고 느끼는 분들은 반드시 자격 있는 전문가를 찾아가 구체적인 조언을 구하시기 바란다. 자기혐오의 가장 당혹스러운 점은 그게 결코 유쾌하지 않은 상태임에도 중독된다는 사실이다. 자기혐오에 빠지면 자기혐오적 관점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 그러면 자신의 추함이 더 도드라져 보이고 지금 나의 불행이 모두 거기에서 비롯된 듯 느껴진다. 그런 생각에 압도되면 끝장임을 아니까 어떻게든 저항해 보지만 쉽지 않다. 그러면 자기혐오를 떨치지 못하는 자신의 비대한 자의식이 혐오스러워진다.
 
최소한 이때 ‘자기혐오를 반복하는 자신’을 미워하지는 않으려 노력한다. 인간의 뇌는 아주 값비싼 시뮬레이터다. 엄청난 양의 당(糖)과 산소를 소비하면서 ‘그때 이렇게 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하나’ 따위 답 없는 질문에 몰두한다. 그러라고 만들어진 기관이다. 사람속(屬)은 수백만 년 전에 팔다리 근육보다 그 ‘고민 기관’에 투자하기를 택했다. 인생은 아름다워라고 자족했던 선조들은 굶어 죽거나 잡아먹혔다. 걱정이 팔자였던 개체들이 후손을 남겼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사람은 단맛과 기름진 맛에 끌린다. 그런 식성이 생존에 유리해서 그렇게 진화했다. 장점이 아니라 단점, 잘한 일이 아니라 못한 일 위주로 자신을 파악하는 태도 역시 그만큼이나 인간 본성이라고 본다. 후회, 근심, 불안을 전문적으로 발생시키는 엔진이 머리통에 달린 걸 내가 어쩌겠는가.
 
두 번째로 내가 깨달은 바는, 외따로 떨어진 장점이나 단점은 없다는 것이다. 사람의 성격은 거대한 빙산이다. 우리는 물 위로 드러난 빙산의 일부만 본다. 빙산의 한 봉우리가 양면을 갖춘 형태는 그나마 이해하기 쉽다. 신중/우유부단이나 겸손/비굴 같은. 실제 수면 아래는 훨씬 더 복잡한 양상일 게다. 책임감과 오만함, 공감능력과 의존성이 한 줄기의 두 봉우리일지도 모르고, 더 불가사의한 연결도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얼음은 물 위로 드러난 부분을 깎아도 그만큼 다시 떠오른다.
 
세상살이와 연결 지어 봐도 그렇다. 어떤 개성은 당사자의 균형감각보다는 그저 주변 상황에 따라 장점이 되기도 하고 단점이 되기도 한다. 평생 흠결이라 여겼던 특질이 결정적인 순간 인생을 떠받치고 들어 올리는 지지대이자 지렛대가 될 수도 있다. 당연히 그 반대도 가능하다. 지금 내가 파악하는 나의 모습은 심리적, 서사적 총체와는 거리가 먼, 찰나의 파편에 불과할 수 있다는 얘기다.
 
술을 마시거나 어릴 적 부모와의 관계를 곱씹는 게 해결책일 리 없다. 알코올이나 애착 이론은 즉각적이고 달콤하기 때문에 그것이 도피임을 뇌가 금방 알아차린다. 게다가 둘 다 뒷맛이 안 좋다. 퍼마실수록. 그보다는 스스로에게 실제적인 과제를 주는 게 의외로 유용하다. 청소나 운동 같은. 귀찮고 힘들다는 게 핵심이다. 조금만 참으면 ‘고난에 맞서 싸우는 나’라는 자기서사를 마음이 이내 지어낸다.
 
어쩌면 자기혐오 그 자체에 순기능이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절대선이요 불순물 없는 정의라고 주장하는 자기긍정의 화신들을 TV나 인터넷에서 종종 마주친다. 그 그늘 없는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혐오를 넘어서 공포감이 든다. 그럴 때면 인간은 괴물이 되지 않는 대가로 자기혐오라는 비용을 치러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잠시 한다.
 
장강명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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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