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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기의 시시각각] 펠로시가 일본 편이라고?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2007년 상반기 동안 일본은 공식적으로만 45만 달러의 로비자금을 워싱턴 정가에 뿌렸다.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의 미 의회 상정을 저지하기 위해서였다. 실제 뿌려진 돈은 수십 배에 달했다. 선봉에 선 건 민주당의 일본계 상원의원 대니얼 이노우에. 같은 당 소속 펠로시 하원의장이 주 타깃이었다. 하지만 펠로시는 당차게 거부했다. “지지 서명을 한 의원만 164명이다. 아베 총리는 사과해야 한다.” 결과는 만장일치 통과였다.
 
12년 전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지난주 워싱턴을 방문한 문희상 국회의장과 펠로시 하원의장 간 설전 때문이다. 펠로시는 문 의장의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선 일왕이 사죄해야 한다”는 발언을 의식해 “최근 한일관계가 악화해 우려스럽다. 이 문제가 조속히 해결되길 바란다”고 했다. 한국이 한일 위안부합의를 깬 데 대한 워싱턴의 싸늘한 시각을 반영한, 완곡한 표현이었다.
 
그러자 문 의장은 특파원 간담회에서 “일본 측에서 뭔가 한국에 한마디 해달라고 작업을 했는지, 쉽게 말해 혼내 주라고 했는지, 의도적 발언으로 느껴졌다”고 받아쳤다. 펠로시는 ‘일본 로비’에 넘어간 정치인 정도로 폄하됐다. 적어도 어려운 시기에 일본의 로비를 뚫고 위안부 결의안을 통과시켰던 펠로시를 향해서 그런 말을 해선 안 됐다. 아무리 기대했던 말을 못 들었다 해도 말이다. 기록과 감정은 남는다. 그런데도 “이번 방미 성과는 A++”(문 의장)라니, 참 할 말이 없다.
 
정작 우리가 미국에 따져야 할 건 따로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주 각료회의에서 “내가 전화 두어통 했더니 (한국이 방위비 분담금을) 5억 달러(5627억원) 더 내기로 했다”고 말했다. “내가 (한국에) ‘왜 진작에 올리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그들은 ‘아무도 요구하지 않았다’고 답했다”고도 했다. 우리 언론은 “트럼프니까…”라며 그러려니 한다. 외교부도 사태가 커지길 원치 않았는지 “미국 측에 문의 바란다”고 떠넘긴다.
 
하지만 이게 그냥 떠넘길 일일까. 아니면 떠넘겨야 할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트럼프가 말한 전화 두어통의 상대는 분명 문재인 대통령을 지칭한다. 보통 결례가 아니다. 원칙대로라면 문 대통령이 따져 물었어야 했다. 우리 국민에게도 그런 통화를 한 적이 없음을 해명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게 사실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미국에선 그렇다. 트럼프는 이런 방식을 또 되풀이할 것이다. 정치사상가 존 미어샤이머는  
 
『왜 리더는 거짓말을 하는가』에서 “때때로 지도자들이 거짓말을 할 만한 타당한 이유가 있다”고 하면서도 그 전제는 국익을 위한 것이라 했다. 백번 양보해 트럼프가 미 국익을 생각해 그런 말을 했다 치자. 하지만 우린 다르다. 우리에겐 우리의 국익이 있고 우리 국민의 고귀한 세금이 걸려 있는 문제다. “국민이 정확히 그 금액을 알아서 뭣 하느냐”는 집권당 외교통일위원회 간사(이수혁 의원)처럼 국민은 몽매하지 않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트럼프가 지난해 11월 한미정상회담에서 방위비 분담금으로 12억 달러를 요구했다”는 언론 보도에 “트럼프 대통령이 방위비 분담금에 대해 조건이나 금액 등 구체적 말을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런 보도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모독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정작 트럼프 본인의 입에서 청와대가 그렇게 부인했던 구체적 수치, 정황들이 나왔다. ‘트럼프에 대한 모독’이 아니라고 트럼프가 말한 셈이다. 문 대통령이 “트럼프의 말은 대한민국, 나, 그리고 우리 국민에 대한 모독이 될 수 있다”고 말했어야 하는 것아닌가. 해선 안 될 말이 있듯 해야 할 말들이 있다.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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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