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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칼럼] 한국보다 외국 대통령이 더 자주 만나는 삼성 CEO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2017년 11월 7일 한 경제 신문이 ‘한국 정부보다 독일 메르켈에 공들이는 삼성’이라는 기사를 보도했다. 불과 석 달 사이에 삼성전자 권오현 회장이 철통 보안 속에 메르켈 총리를 수차례 만났다는 내용이다. 그것도 극비리에 전세기를 타고 가 비공식 면담을 했다는 것이다. 이 신문은 “독일과 전기차·자율차 협력 방안 등을 제안했을 것”이라고 건너짚었다.
 
최근 독일 정부와 삼성 관계자를 통해 다시 확인해 보니 진실은 전혀 딴판이었다. 권 회장이 당시 메르켈 총리를 자주 독대한 것은 팩트다. 그것도 한 번에 1시간이나 40분 이상의 장시간 단독 면담이었다. 그러나 뜻밖에 삼성이 아니라 메르켈 총리가 먼저 요청한 면담이었다. 대화 내용도 비즈니스가 아니었다. 메르켈은 “왜 IT(정보기술) 혁명에 미국이 독주하고 유럽은 뒤처졌는가?” “무엇이 유럽 IT의 약점이고, 어떻게 IT를 되살릴 수 있을까?”를 꼼꼼히 물었다. 도움 되는 답변이 나오면 곧바로 배석자에게 “검토해 보라”며 구체적인 지시를 내렸다.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도 취임 직후 권 회장을 비밀리에 만났다. 하지만 그 후 자주 만나는 인물은 따로 있다. 바로 삼성전자 손영권 최고전략책임자(CSO·사장)다. 인공지능(AI)에 꽂힌 마크롱은 지난해 3월 29일 손 사장을 엘리제 궁으로 불러 단독 면담했다. 여기에는 마크롱의 디지털 경제보좌관이자 한국계인 세드리크 오(37)가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두 달 뒤에도 마크롱은 손 사장과 페이스북·마이크로소프트·인텔 CEO 등을 엘리제 궁에 초대해 식사를 대접했다. 마크롱은 투자은행 출신답게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고 너스레를 떨며 13건의 AI 투자 약속을 받아냈다. 삼성전자 역시 파리 인근에 AI 연구소 문을 열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달 청와대로 130여 명의 기업 관계자를 불러 만났다. 타운 홀 미팅이 끝난 뒤 4대 기업 CEO와는 따로 커피를 들고 25분간 청와대 정원을 산책했다. CEO들은 이런저런 규제를 풀어달라고 했고, 대통령은 “일자리를 늘여달라” “투자를 확대해 달라” “상생 협력해 달라”고 주문했다. 50년 이상 이어져 온 익숙한 풍경이다. 문제는 현 정부에선 이런 장면도 아주 드문 일이라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요즘 우리나라 대통령·장관보다 외국 정상과 장관들이 한국 기업가를 더 자주 만난다”며 쓴맛을 다신다.
 
이철호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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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부가 글로벌 흐름과 반대로 가는 것은 이뿐 아니다. 최근 한국처럼 법인세율을 끌어올린 나라는 국가 부도를 막기 위해 세금을 왕창 긁어 들인 그리스와 칠레, 터키 외엔 찾기 어렵다. 우리의 25% 법인세는 이미 미국(21%)·일본(23.3%)·영국(19%)보다 높은 수준이다.
 
당연히 투자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설비투자는 한국은행이 분기별로 집계하지만, 신속한 대응을 위해 통계청이 매달 따로 관련 지수를 발표할 만큼 중요한 변수다. 설비투자에 따라 생산·고용·소득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이런 설비투자가 지난해 4.5% 감소했다. 지난해 후반부터 하락 기울기가 훨씬 가팔라졌다. 이에 비해 우리 기업들의 해외투자는 389억 달러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외국인의 국내 투자는 160억 달러로 신통치 않았다. 한마디로 국내 투자는 얼어붙고 기업들의 해외 엑소더스는 봇물이 터진 것이다.
 
지난주 경제학 공동학술대회는 소득주도 성장에 낙제점을 매겼다. 압도적 다수의 경제학자가 실증적 분석을 통해 “소득주도 성장으로 인해 성장률·투자·고용이 모두 감소했다”며 “실업도 늘고 소득 양극화가 심해져 재분배에도 실패했다”고 결론지었다. 여기에는 섬뜩한 경고가 담겨 있다. 향후 소득주도 성장을 고집하면 성장·투자·고용은 더 고꾸라지고 양극화도 깊어진다는 것이다.
 
진보 진영은 “경제 위기론은 보수 기득권 동맹의 음모”라며 ‘위기’라는 표현 자체를 막고 있다. 정부는 정책 실패를 가리기 위해 재정을 쏟아붓고 있다. 하지만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부터 “짙은 먹구름이 밀려오니 전 세계는 경제 폭풍에 대비하라”고 경고했다. 우리 경제의 현재와 미래를 예고하는 가장 신뢰할만한 지표인 경기동행지수와 경기선행지수도 함께 7개월째 곤두박질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가장 긴 동반 하락이다.
 
청와대는 어느새 자동판매기를 닮아버렸다. 나쁜 경제지표가 나오면 “상황을 엄중히 보고 있다”고 하고, 참담한 고용지표에는 “가슴이 아프다”는 표현만 반복한다. 그러면서 소득주도 성장에는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고 선을 긋는다. 잘못된 정책에 대한 이런 근거 없는 자신감이 어디서 오는지 정말 궁금하다. 경제는 서민들의 목숨이 달려 있다. 다른 건 몰라도 먹고사는 문제에 왜 도박을 거는가. 꼭 그 길로 가겠다면 먼저 국민 투표에 부쳐보는 게 예의가 아닐까 싶다.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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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