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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를 좌절시킨 비건의 '평양 보고'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평양에서 돌아 온 직후인 지난주 초 백악관을 찾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직접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 관련 실무협의 결과를 보고했다고 워싱턴 외교 소식통이 18일(현지시간)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4일(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 앨리슨 후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 등의 브리핑 사진.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주초 비건 대표로부터 평양 2박3일 협상 내용을 보고받았지만 이번에는 공개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4일(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 앨리슨 후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 등의 브리핑 사진.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주초 비건 대표로부터 평양 2박3일 협상 내용을 보고받았지만 이번에는 공개하지 않았다.

 
비건의 '트럼프 보고'에 뭐가 담겼길래... 
 
비건은 지난 6일부터 8일까지 평양에서 2박3일간 2차 북미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실무협의를 한 뒤 지난 10일 워싱턴에 돌아왔다. 비건의 '트럼프 보고'는 11~12일에 걸쳐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 자리에는 비건의 평양행에 동행했던 앨리슨 후커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한반도 보좌관도 동석했다. 하지만 북미협상을 총괄하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별도의 보고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또 다른 소식통은 "비건 대표는 북한 측이 요구한 미국의 '상응조치'에 대해 상세하게 전달했으며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제시할 구체적 합의 수준을 조율한 것으로 안다"며 "당초 백악관은 트럼프-비건 면담 사실을 트위터 등을 통해 공개하는 것을 검토했지만 (비건의) 보고를 통해 북한과의 이견이 워낙 큰 것을 확인한 트럼프 대통령이 비공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18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으로부터 김정은 국무위원장 등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트럼프 대통령, 김혁철 전 스페인 주재 북한 대사(동그라미), 김성혜 통일전선부 실장, 박철 통일전선부 부부장, 김영철 당 부위원장, 통역,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18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으로부터 김정은 국무위원장 등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트럼프 대통령, 김혁철 전 스페인 주재 북한 대사(동그라미), 김성혜 통일전선부 실장, 박철 통일전선부 부부장, 김영철 당 부위원장, 통역,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

 
비건 대표와 북한 측 카운터파트인 김혁철이 22일 경부터 막판 실무협상에 나설 예정이지만, 현재로선 '빅 딜'이 이뤄질 공산은 낮다는 게 백악관과 국무부 주변의 전언이다.
 
북미협상에 정통한 소식통은 "하노이 회담을 앞두고 미국과 한국에서 여러 다양한 관측과 전망이 오가지만 비건의 보고가 있은 뒤 트럼프 대통령과 비건이 어떤 발언을 했고, 어떻게 톤이 변했는가를 보는 게 중요하다"며 "그것이 현 상황을 가장 정확히 보여준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1일 밤(현지시간) 텍사스주 엘페소에서 열린 집회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훌륭한 관계'를 언급하면서 "그들(전임 대통령)은 85년 가량 협상을 벌여왔는데(실제는 70여 년), 지금 그들(워싱턴 조야)의 불만은 '(비핵화 협상이) 왜 그렇게 오래 걸리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싱가포르(정상회담장)를 떠난 건 15개월 전(실제는 8개월 전)"이라고 강조했다. 전임 정권이 오랜 기간 했어도 여의치 않았던 북한 문제를 자신만큼 단기간에 한 대통령이 없다는 특유의 '자랑'인 동시에, 2차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빅딜'이 이뤄지기 힘들다는 걸 암시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같은 날 비건 대표도 워싱턴을 찾은 문희상 국회의장단 일행과의 면담에서(백악관 보고 직전인지 직후인지는 명확치 않음) 북한과의 협상에 대해 "아직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이견을 좁히는 건 다음 회의(22일 이후의 실무회담)부터"라고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첫 북미정상회담이 열린 지난해 6월 12일 싱가포르 센토사 섬 카펠라호텔에서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북미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는 모습.

첫 북미정상회담이 열린 지난해 6월 12일 싱가포르 센토사 섬 카펠라호텔에서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북미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는 모습.

 
비건 보고 받은 뒤 기대치 낮추는 트럼프   
 
트럼프의 '눈높이 낮추기'는 그 이후에도 계속됐다. 
 
트럼프는 지난 15일 기자회견에서 "1차 (싱가포르) 회담 때와 마찬가지로 '행운'이 깃들기를 희망한다. 난 속도에 대해 서두를 게 없다"고 한 뒤 돌연 "우리는 단지 실험을 원하지 않는다(We just don't want testing)"는 발언을 내놓았다. '속도 조절론'이야 트럼프 대통령이 늘 해왔던 '레퍼토리'라고 할 수도 있지만, 핵과 미사일 실험의 동결(모라토리엄), 즉 현상 유지 정도면 만족한다는 주장을 한 건 처음 있는 일이다. 비건으로부터 북한의 태도가 여전히 강경하다는 보고를 받고, 하노이 회담 결과에 대한 기대치를 점차 낮추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2일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 호텔에서 열린 북미정상회담 중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2일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 호텔에서 열린 북미정상회담 중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해 6월 12일 싱가포르 회담 열흘 경 전 부터 온갖 용어를 쓰며 회담에 대한 자신감과 낙관론을 나타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딜'을 할 것이다. 그리고 딜에서 성공할 것이다. 종전선언이 나올 수 있다"(지난해 6월 1일), "뭔가 큰 일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곧 알게 될 것"(6월 5일), "평생을 준비해 왔다. 정상회담을 할 모든 준비가 됐다"(6월 7일) 등의 발언을 거의 매일 쏟아냈다.  
 
이와 관련 뉴욕타임스는 18일(현지시간) "회담의 대미를 장식할 비핵화 합의와 관련한 세부 사항에는 아직 구체적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며 "깊은 회의론을 불식시킬 중대한 합의를 이끌어낼만큼 시간이 충분한지 불확실하다"고 보도했다. 결국 실무선에서의 조율은 사실상 힘들고,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회담장에서 서로 '달콤한 유혹'을 던지며 '돌발 합의'를 시도하는 양상이 이뤄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우리에겐 기회가 될 수도 있고, 큰 위험이 될 수도 있다.
 
한편 미 의회에선 하노이 회담을 앞두고 민주당 뿐 아니라 공화당 내부에서도 "쉽사리 제재완화 카드를 꺼내들어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이전에는 대북 제재 완화를 해선 안 된다고 압박을 가하고 나선 코리 가드너 상원 외교위 동아태소위원장.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이전에는 대북 제재 완화를 해선 안 된다고 압박을 가하고 나선 코리 가드너 상원 외교위 동아태소위원장.

 
여야 할 것 없이 강경한 미 의회 
 
하원 외교위원회 아태소위 공화당 간사인 테드 요호 의원은 18일 VOA와의 인터뷰에서 "(북미가) 비핵화에 대한 최종적 정의에 합의하고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제대로 이행하는지 검증이 완료되기 전까진 제재를 풀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 상원 외교위 동아태소위원장인 코리 가드너 의원도 이날 "미국은 법으로 '북한이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 이전에 대북 제재 해제는 이뤄질 수 없다'는 걸 명확하게 제정해 둔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말 만장일치로 통과된 '아시아 안심법(Asia Reassurance Initiative Act)'에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와 대통령의 행정명령에 명시된 핵과 미사일 개발 등 불법 활동에 북한이 더 이상 관여하지 않을 때까지 대북 제재를 계속해서 부과하는 것이 미국의 정책"이라 명기돼 있는 점을 상기시킨 것이다. 
 
트럼프로선 북한의 버티기, 그리고 어설픈 제재완화 카드를 던지지 못하도록 하는 미 의회의 경고를 동시에 타파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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