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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앞마당서 330만명 탈출···트럼프 '군사개입' 만지작

[정효식의 아하, 아메리카] 
“세계 독립 주권 국가들이 미국처럼 살기를 바라거나 똑같은 문화와 전통, 정부체제를 갖기를 원하지 않는다. 내가 미국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것처럼 여러분도 자국 국익을 추구하라.”
 
니콜라스 마두로. [AP=연합뉴스]

니콜라스 마두로. [AP=연합뉴스]

2017년 9월 19일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천명한 ‘미국 우선주의’ 독트린의 핵심 내용이다. 미국의 주권과 안보를 위협하지 않는 한 정권 교체를 추구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불개입주의’ 선언이었다. 그리고 16개월 뒤, 트럼프 대통령은 반미 노선을 걷던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의 후계자인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공개 축출에 나섰다. 대신 임시 대통령을 선언한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의 정통성을 인정해 52개국의 지지도 모았다.
 
이 때문에 트럼프가 조지 부시 전 대통령에 이어 18년 만에 정권교체론으로 회귀한 것인지를 놓고 미국이 논란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3일 군사적 옵션 검토와 관련해 “베네수엘라에는 많은 해법과 다양한 옵션이 있다. 나는 모든 옵션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장 군대 파병을 생각하느냐는 질문엔 “말하지 않겠다”며 답변을 피했다.
 
일단은 마두로 정권에 대한 경제 제재를 통한 자진 퇴진 쪽에 무게를 뒀다는 뜻이다. 미국은 1월 31일 정권의 자금줄인 국영석유회사 PDVSA의 자산을 동결하고 베네수엘라 경제의 주 수입원 석유와 금의 거래를 막는 사실상 금수 조치에 들어간 상태다. 15일 마누엘 퀘베도 석유장관, 마누엘 피에라 국가정보원장, 라파엘 바스타르도 경찰청장과 경호실장 등 최측근 5명도 제재했다.
 
시리아·아프가니스탄에선 철군을 밀어붙인 트럼프가 베네수엘라 정권 교체에 나선 배후에는 세 사람의 집요한 설득이 있었다고 한다. 첫 번째 인물이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다. 그를 집요하게 비판해 마두로가 직접 ‘독사’란 별명을 붙였을 정도다.
 
지난 13일 이민 위기를 이유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AP=연합뉴스]

지난 13일 이민 위기를 이유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AP=연합뉴스]

펜스는 16일 뮌헨 안보회의에서 “마두로는 정통성 없는 독재자일 뿐이며 물러나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경제를 절반으로 축소했고 10명에 9명을 빈곤에 빠뜨렸다”며 “절망에 빠진 국민의 대탈출로 300만명 이상이 조국을 등졌고, 올해 추가로 200만명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한다”고도 했다.
 
또 다른 마두로의 강력한 비판자는 쿠바 난민의 손자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이다. 카스트로 정권이 마두로를 통해 중남미로 영향력을 확대하는 걸 저지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는 지난해 3월 같은 생각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발탁되자 “베네수엘라 독재자 마두로에겐 좋지 않은 일이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볼턴 보좌관은 부시 시절부터 이란·이라크·북한을 불량국가로 지목해 정권교체론을 주장했던 원조 개입주의자다. 그는 지난해 11월 쿠바·니카라과와 함께 베네수엘라를 ‘독재 3국(troika of tyranny)’으로 지목해 “심판의 날이 다가온다”고 예고하는 연설까지 했다.
 
“미국은 3국의 꼭지점이 차례차례 떨어져나가는 것을 보게 되길 고대하고 있다”고 하면서다. 마두로가 끝이 아니라 쿠바 라울 카스트로 정권, 니카라과의 다니엘 오르테가 정권까지 교체를 원한다는 의미다.
 
지난달 25일엔 마두로 퇴진을 공식 주도할 베네수엘라 특사로 레이건 대통령부터 중남미 비밀공작에 관여한 인사를 앉혔다.
 
엘리엇 에이브럼스 미 베네수엘라 특사. 그는 1980년대 중남미 비밀 공작에 관여한 인물이다.[AP=연합]

엘리엇 에이브럼스 미 베네수엘라 특사. 그는 1980년대 중남미 비밀 공작에 관여한 인물이다.[AP=연합]

엘리엇 에이브럼스(71) 특사는 1981~89년 국무부 민주주의·인권, 미주지역 담당 차관보로 ‘이란-콘트라 반군’ 지원 스캔들 당시 관련 정보를 의회에 숨긴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던 인물이다. 82년 과테말라의 군부 쿠데타를 지지하고 엘살바도르 우익 군부정권의 민간인 학살을 두둔한 전력도 있다.
 
그는 2002년 4월 차베스에 대한 군부의 사흘 쿠데타 당시 부시의 특별보좌관 겸 NSC 선임 국장을 맡았다.
 
트럼프가 개입에 나선 결정적 이유가 이념이 아니라 베네수엘라발 이민 위기 때문이란 분석도 나온다. 유엔 인권 고등판무관실에 따르면 마두로 집권 이래 콜롬비아(110만), 페루(50만), 에콰도르(22만), 아르헨티나(13만), 칠레(10만), 파나마(9만 4000), 브라질(8만 5000명) 등 주변국으로 인구 10%가 넘는 330만명이 탈출했다. 국제유가 하락으로 경제가 5년 사이 절반 이하로 축소됐고 통화정책에 실패해 지난해 137만%(1만 3700배) 물가상승률이란 초(超)인플레를 낳았다. 미국으로도 2014~2017년 3년 새 14만명이 몰려들었다.
 
서정건 경희대 교수(미국정치)는 “트럼프의 불개입 노선이 변했다기보다 베네수엘라란 특수 상황으로 봐야할 것”이라며 “멕시코 국경을 향한 수천 명 이민 행렬에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해 장벽 건설에 나선 트럼프로선 수백만명 탈출을 보고만 있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먼로 독트린(1823년) 시절부터 유럽 열강의 팽창을 막아왔던 미국에게 중남미는 일종의 예외 지역이란 점도 작용했다. 문제는 경제 제재만으로 마두로 정권이 무너지지 않을 경우 선택지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신시아 안슨 윌슨센터 중남미 국장은 “마두로를 지지하는 중국·러시아·쿠바 등이 경제 지원을 나설 가능성은 작다”며 “차베스 말기부터 620억 달러 차관을 제공한 중국도 석유로 상환받는 데만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문제는 정권의 버팀목인 군부가 국영기업과 마약밀매 등 이권을 포기하고 마두로에게 등을 돌리기 어려워 사태가 장기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파블로 피카토 컬럼비아대 교수는 “마두로 대통령이 제국주의 침략에 저항하겠다는 논리로 버틸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 곤경을 탈피하려고 군사개입에 나설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효식 워싱턴 특파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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