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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하멜,히딩크…세계 항해하는 그들의 공통점은?

기자
강정영 사진 강정영
[더,오래] 강정영의 이웃집 부자이야기(19)
하멜 상선. 하멜 일행은 사진 속 선박을 타고 제주도에 상륙해 네덜란드에서 조선으로 귀화한 박연을 만나게 된다.[중앙포토]

하멜 상선. 하멜 일행은 사진 속 선박을 타고 제주도에 상륙해 네덜란드에서 조선으로 귀화한 박연을 만나게 된다.[중앙포토]

 
지금으로부터 약 370년 전 1653년 일본으로 향하던 서양 선박이 제주도에 표류한다. 조선 관원에게 나포된 선원들은 한양으로 압송돼 문초를 받는다.
 
“어느 나라에서 왔는가.”
“네덜란드라는 나라에서 왔습니다.”
“왜 조선에 왔는가.”
“일본으로 가는 길에 태풍을 만나….”
 
푸른 눈의 선원이 알아들을 수 없는 네덜란드 말을 하는데 신기하게도 그 당시 조선에 네덜란드어 통역이 있었다. 잡힌 사람들은 하멜 일행이었고, 통역관은 그보다 25년 먼저 선원들 반란으로 제주도에 상륙하였다가 붙잡힌 고향 선배 박연(네덜란드 이름은 얀 벨테브레)였다. 둘 다 네덜란드가 1602년 인도네시아에 개설한 동인도회사 소속이었다. 조선에 귀화한 박연은 훈련도감에 배속돼 화포를 만드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로부터 약 350년 후 또 다른 네덜란드인이 한국에 온다. 2002년 월드컵 한국대표팀 감독 히딩크다. 네덜란드·호주· 러시아·터키 대표 팀 감독을 지냈고, 스페인 명문 레알 마드리드의 감독도 역임했다. 지금은 중국 청소년 대표 팀 감독이다. 그가 맡았던 팀은 예외 없이 엄청난 성과를 냈다.
 
전세계에 네덜란드인 없는 나라 없어
네덜란드 사람인 하멜(좌)과 히딩크(우)는 매우 모험적이고 진취적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중앙포토]

네덜란드 사람인 하멜(좌)과 히딩크(우)는 매우 모험적이고 진취적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중앙포토]

 
히딩크는 다른 나라의 국가 대표팀 감독을 맡을 때 가장 먼저 그 나라 문화를 이해하려 했다고 한다. 효율적인 소통과 지도를 위한 기초이기 때문이다. 동서양을 넘나들며 일하면서 좋은 성과를 내기는 쉽지 않다. 도전적이며 다른 문화를 좋아하고 이해하려는 그의 남다른 친화력 덕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350년의 시차가 있는 두 사람 이야기이지만 그들은 변함없이 매우 모험적이고 진취적인 기질을 가진 네덜란드 사람이다.
 
네덜란드 인구는 한국의 3분의 1 수준인 1700만 명이다. 놀라운 것은 본국만큼 해외에 사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다. 미국·남아프리카·프랑스·캐나다에만 1350만 명, 그 외 독일·스위스·벨기에·스칸디나비아 3국·벨기에·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 등에도 많이 산다. 한마디로 전 세계적으로 네덜란드인이 없는 나라가 드물 정도이다. 그만큼 개방적이고 진취적이어서 다른 나라 사람과 문화를 좋아한다.
 
사고도 유연하고 실용적이어서 다른 나라에선 보기 드문 진취적인 제도를 많이 도입하고 있다. 예컨대 안락사와 공창 제도가 허용되고, 약한 마약은 지정된 장소에서 가능하다. 인간의 본능과 존엄성을 존중하되 부작용을 최소화하자는 사회적인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것이다.
 
모험적이고 프런티어 적인 그들의 DNA는 300~4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뉴욕도, 남아프리카도 원래 네덜란드가 먼저 개척하였으나 당시의 초강국 영국에 밀려 지배권을 빼앗겼다. 면적이 경상남북도를 합한 정도에 불과한 작은 나라가 아시아에는 인도네시아, 아프리카에서는 남아프리카, 남미에는 수리남 등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개척한 것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모험적이고 강한 민족인가를 알 수 있다.
 
18세기 말라카해협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voc 지도. 네덜란드인은 주식회사 제도를 최초로 도입해 영국과 함께 자본주의의 산실로 평가받는다. 그 첫 사례가 인도네시아에 설립한 동인도회사다. [사진 말라카박물관]

18세기 말라카해협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voc 지도. 네덜란드인은 주식회사 제도를 최초로 도입해 영국과 함께 자본주의의 산실로 평가받는다. 그 첫 사례가 인도네시아에 설립한 동인도회사다. [사진 말라카박물관]

 
네덜란드인은 주식회사 제도를 최초로 도입해 영국과 함께 자본주의의 산실로 평가받는다. 그 첫 사례가 인도네시아에 설립한 동인도회사다. 현재 세계 유수의 기업 중 네덜란드 기업이 적지 않다. 세계 5~6위를 자랑하는 석유회사 로열 더치 셸, 필립스, ING 그룹, 에어버스, 부킹닷컴, 하이네켄 등이 대표적인데, 해당 분야의 선두를 이끄는 쟁쟁한 기업들이다.
 
이들은 어떻게 일찍부터 세계를 무대로 비즈니스를 하고, 세계인을 상대로 소통하고 마케팅하는 것을 즐겼을까 궁금해진다. 그들의 타고난 DNA가 매우 국제적이라는 사실은 네덜란드 성인 남녀가 보통 6개 국어 정도를 능숙하게 구사한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어릴 때부터 영어·독어·스페인어·프랑스어는 기본으로 배우고, 거기에 한두 개 언어를 더 한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에 가서 일하고 비즈니스를 하면서 현지어를 능숙하게 할 줄 안다면 얼마나 큰 도움이 되겠는가.
 
국제무역 의존도가 80%에 달하는 우리나라도 영어는 기본으로 하고, 세계시장에서 중요한 서너 개 언어를 추가해 일찍부터 배우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가까운 이웃이자 주요 교역 상대인 중국인·일본인과 잘 소통하는 일반 국민은 많지 않다. 세계 무대에서 앞서가는 나라가 되려면 그들과 소통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네덜란드 사람에게 배워야 할 게 많다.
 
그들은 매우 창의적이기도 하다.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에서 ‘별이 빛나는 밤’, ‘해바라기’ 등을 그린 반 고흐, ‘돌아온 탕자’로 유명한 렘브란트도 네덜란드 출신이다. 영화 ‘원초적 본능’과 ‘엘르’의 감독인 폴 버호벤도 화란인이다. 그 외에도 ‘국가의 목적은 자유이며, 육체는 영혼의 감옥’이라고 설파한 위대한 철학자 스피노자도 있다. 작은 나라이지만 과학, 기술, 음악, 미술, 예체능 등 다방면에 걸쳐 뛰어난 인재를 많이 배출했다.
 
좁은 땅이지만 사는 무대는 지구촌인 강소국
우리나라와 네덜란드는 강대국 틈 속에 살고 부존자원도 적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네덜란드는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국제적 안목을 키워 세계 무대로 진출했다. [사진 구글 지도 캡처]

우리나라와 네덜란드는 강대국 틈 속에 살고 부존자원도 적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네덜란드는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국제적 안목을 키워 세계 무대로 진출했다. [사진 구글 지도 캡처]

 
네덜란드는 지정학적으로 독일, 프랑스, 영국 같은 강국들 틈 속에 살고 있고 부존자원도 별로 없어 우리나라와 유사한 점이 많다. 그런 약점을 극복하고자 일찍이 해외로 눈을 돌려서 무역으로 부강한 나라가 됐고, 국민이 세계 최고의 국제적인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 됐다. 어릴 적부터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가르쳐 세계 각국에서 그 나라가 자기 나라인 듯 편하게 살아가고 있다.
 
네덜란드는 대표적인 강소국이다. 유럽의 북서부 북해에 접해 있는 작은 땅이지만, 살아가는 무대는 그야말로 지구촌 전체이다. 우리도 그렇게 못 할 이유가 있겠는가. 조금만 더 눈을 크게 뜨고 안목을 넓혀 전 세계 사람과 교류하고 그들 문화를 이해하고 포용하는 국제적인 마인드를 키워나가자. 그리하여 세계를 무대로 뛰는 네덜란드와 같은 강소국이 되도록 해보자. 히딩크 감독 아래 코치를 지낸 박항서가 베트남에서 큰 성취를 이룬 것처럼!
 
강정영 청강투자자문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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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