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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증시 지루한 박스권…스튜어드십코드·행동주의 업고 가치주 뜬다

가치 투자 전문가 3인의 증시 전망 
가치투자가 다시 주목을 받을 전망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본격화된 미·중 무역전쟁과 세계 경기 둔화 우려 등으로 국내외 증시가 조정을 받고 있다. 상저하고의 증권가 예상을 뒤엎고 올 들어 코스피가 선전하고 있지만 국내외 경기 둔화와 기업 실적 부진 등으로 상승세를 이어가기 버거운 상황이다. 특히 올해 증시는 뚜렷한 주도주 없이 박스권에 갇혀 있을 가능성이 크다. 가치주 투자는 박스권 상황에서 유리한 전략이다. 주요 기관투자가가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배당 확대나 자사주 소각을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주주행동주의 강화 움직임도 가치투자에 힘을 보태고 있다. 1세대 가치투자가인 허남권(57) 신영자산운용 대표와 이채원(56)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대표, 1.5세대로 분류되는 최준철(44) VIP자산운용 대표 등 가치투자 대가 3인방은 올해 코스피가 2000~2400포인트의 박스권에서 움직일 것으로 예상한다. 이들은 “당분간 특별히 새로운 호재가 없고, 대내외적인 불확실성 탓에 증시의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경기 민감 업종보다 지주사·고배당주, 물류·레저·음식료주 등이 상승 여력이 있다고 본다. 이들은 올해 증시의 주요 변수로 미국 기준금리 인상, 미·중 무역분쟁, 중국 경기의 둔화, 국내 경기 위축과 고용·수출 부진 등을 꼽았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코스피 2000~2400 사이서 움직일 듯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대표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대표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대표

올 들어 예상을 뒤엎고 코스피가 10% 오르는 ‘1월 효과’를 누렸다.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대표는 “미국 금리 인상 우려 완화 등에 힘입어 외국인들이 신흥국 투자를 늘린 결과”라며 “다만 상승세가 더 이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올해 코스피가 2000~2400포인트 사이에서 움직일 것으로 예상했다.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정책의 부작용, 가계부채·청년실업 문제 등에 따른 내수 침체로 국내 경기 위축이 장기간 이어질 수 있어서다.
 
박스권 장세가 이어지면 기업 가치 대비 저평가된 종목이 덜 내리는 경향이 있다. 허 대표는 “지난 몇년 간 성장주가 시장을 주도하면서 가치주 투자 수익률은 그리 좋지 않았지만 저성장·저금리 시기에는 배당을 꾸준히 받을 수 있는 배당주나 가치주에 대한 관심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신영자산운용에서 운용하고 있는 가치형 펀드의 포트폴리오에는 소재·산업재 등 경기 민감 대표주, 지주회사 등의 종목을 담고 있다. 배당형 펀드에는 말 그대로 배당을 많이 주는 우선주나 중소형 가치배당주를 담고 있다.
 
올해 허 대표가 눈여겨보고 있는 업종은 대북 관련 사회간접자본(SOC)과 건설, 유통, 물류, 레저, 시멘트 종목이다. 지주사나 우선주도 장기적으로 유망할 것으로 본다. 예컨대 신영밸류고배당펀드에는 삼성전자(투자 비중 7.86%)·맥쿼리인프라(4.49%)·KT&G(3.26%)·GS(2.96%) 등을 담고 있다. 배당수익을 겨냥해 삼성전자·현대자동차 등 대형 우선주도 편입한다. 지난해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의 평균 배당수익률은 2.41%였다.
 
기업지배구조 개선 흐름에 따라 지주사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지주사는 증시가 지지부진한 흐름을 보일 때 소속 자회사의 호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악재에는 민감하게 반응해 적정 가치에 비해 낮은 가격에 거래되는 경향이 있다. 두산(0.99배)·삼성물산(0.85배)·LG(0.66배)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청산가치인 1배에도 미치지 못한다.
 
허 대표는 “내가 회사에 입사했을때 국내총생산(GDP)은 2800만 달러, 코스피는 1000포인트였는데 30년이 흐른 지금 GDP는 1700조원이 넘지만 코스피는 2100포인트에 머물고 있다”며 “결국 지수가 아닌 기업에 투자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그가 생각하는 성공한 투자는 해마다 15%의 수익률을 내 5년 동안 원금을 두배로 불리는 것이다. 부동산에 투자하듯 조금 느긋하게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PBR 1미만 이거나 ‘현금 부자’ 기업 유망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대표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대표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대표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대표는 최근 주당순자산비율(PBR)이 낮은 기업을 눈여겨보고 있다. 경기 둔화가 상당 기간 이어질 수 있는 만큼 기업의 자산건전성·자본수준·부채비율 등 자산가치를 중시하겠다는 의미다. 그는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대표와 더불어 가치투자 1세대로 꼽힌다. 1998년 국내 가치투자 1호 펀드인 ‘밸류이채원펀드’를 선보였고 ‘한국밸류10년투자펀드’를 간판상품으로 키웠다.
 
PBR은 기업의 자산가치가 주가에 어느 정도 반영됐는지 알아볼 수 있는 투자지표다. 1미만일 경우 기업가치가 청산가치에도 못 미칠 만큼 저평가돼 있다는 뜻이다.  
 
대표적으로 눈에 띄는 종목은 LS(2월 13일 종가기준 0.49배)·한화(0.6배)·LG(0.66배) 등이다. 사실 가치주는 지난 3~4년 간 증시에서 소외된 종목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부터 국내외 증시가 조정 국면에 접어들면서 투자심리가 성장성보다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이나 배당 여부를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 보수적인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대표는 “올해 코스피가 2000~2300포인트의 박스권 장세가 될 것”이라며 “그동안 증시를 이끈 반도체와 바이오과 같은 성장주는 종목별로 주가 차별화가 나타난다”고 전망했다. 예컨대 삼성전자는 주가가 저평가된 측면이 있지만 경기에 민감해 경기 둔화가 예상되는 시점에서 과감하게 담을 수 있는 가치주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추천 종목으로 필수 소비재를 꼽았다. 주가수익비율(PER)이 10배 이하인 음식료 업종, 순현금이 많은 기업도 관심 대상이다.  
 
대표적인 현금부자 기업으로 신도리코·삼영전자·동아타이어 등이 꼽힌다.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으로 지배구조 개선과 배당 확대가 기대되는 지주사도 관심의 대상이다. ‘한국밸류10년투자펀드’는 메리츠금융지주(펀드에서 비중 5.04%), NICE그룹 지주사인 NICE(4.67%) 등에 투자하고 있다.
 
물론 가치투자라고 PER·PBR이 낮은 기업만 고르지는 않는다. 트렌드도 중요하게 본다. 예컨대 전기차·자율주행 등은 주요 산업 트렌드로 꼽힌다. 이런 산업은 앞으로 성장성이 높을 것으로 보고 가치주로 분류한다. 그는 가치투자를 시작하려는 투자자에게 “가치주 투자는 3~5년은 묵혀야 하기 때문에 여유 자금으로 인내심을 갖고 투자해야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며 “매일 접하는 종목을 살펴보라”고 조언했다.
 
대형주 동력 떨어져 중소형 장세 가능성
최준철 VIP자산운용 대표
최준철 VIP자산운용 대표

최준철 VIP자산운용 대표

최준철 VIP자산운용 대표의 사무실은 여의도가 아니라 반포에 있다. 그는 “여의도 금융가 주변에 흘러 다니는 것은 정보라기보다는 잡음”이라며 “진짜 정보는 기업 본연의 가치에 있다고 보고 탐방을 나가기 편한 곳에 사무실을 꾸렸다”고 설명했다. 국내 가치투자 1.5세대로 분류되는 최 대표는 벤저민 그레이엄과 워런 버핏의 저서로 가치투자를 접했다. 대학 졸업 직후인 2003년 27세에 김민국 공동대표와 가치투자 전문 투자자문사를 설립했다.
 
최 대표는 주식을 투자의 수단이라기보다 기업 소유권을 갖는 개념으로 본다. 그는 “재벌 총수와 주식투자자는 보유량의 차이만 있을 뿐 기업의 주인이라는 면에선 똑같다”며 “가치 있는 기업을 산다는 마음으로 투자를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기서 출발하면 투자는 시장과 반대로 움직일 때가 많다. 그렇다면 ‘본질 가치가 좋은 기업’은 어떻게 고를까. 최 대표는 종목 선별을 경마에 비유했다. 기업에서 말은 비즈니스 모델, 기수는 경영인이다. 우선 말의 혈통과 체격을 보듯 해당 기업의 경쟁력을 분석하고, 경영진의 사업 능력과 자본배치 능력을 추가로 살핀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의 주주행동주의가 가치주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최 대표의 생각이다. 국내 기업은 번 돈을 효율적으로 재투자하는 자본배치 능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올해 증시에 대해서는 “그간 증시를 이끌어온 대형주의 상승 동력이 소진되면서 지수만 보면 재미가 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따라 중소형 장세 내지 가치주 장세가 형성될 여지가 있다고 내다봤다. VIP자산운용은 소비재에 주로 투자하고 있다. 다만 단순한 내수주만은 아니다. 최 대표는 “겉보기에는 내수주면서도 국내 경쟁력을 바탕으로 해외에서 추가적으로 수익을 내는 종목에 주로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매일유업·롯데제과 등이 대표적이다. 금융주, 특히 보험주도 저평가된 업종으로 꼽았다. 메리츠화재·메리츠종금·메리츠지주 등도 최근 3~4년 간 VIP자산운용이 투자했던 종목이다. 최근에는 지주사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그는 “사업분야를 다각화하면서 정유·에너지·반도체·통신 등 구성이 좋은 SK를 눈여겨보고 있다”고 말했다. 개인투자자에겐 배당주 투자를 추천했다. 최 대표는 “고배당주에 오래 투자한 사람 가운데 돈을 잃은 사람은 없다”며 “종목을 발굴·분석하는 게 어려운 개인투자자에겐 배당주 투자가 가치투자를 구현할 수 있는 좋은 방편”이라고 말했다.
 
글=김성희·함승민 기자 kim.sung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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