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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이 있는 집’ 로망 이뤘지만…그해 겨울은 매서웠네

단독주택에 살아보니
마당 빨래줄에 매달린 시래기가 칼바람에 떨고 있다. [신인섭 기자]

마당 빨래줄에 매달린 시래기가 칼바람에 떨고 있다. [신인섭 기자]

아파트에 산 지 강산이 두 번 변했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필자도 ‘저녁이 있는 삶’과 ‘마당이 있는 집’에 대한 판타지가 있었다. 그 미련을 버리지 못해 최근 북한산 기슭 단독주택으로 옮겼다. 단독살이는 티백(tea-bag)과 같다. 뜨거운 물에 담그기 전까지 맛을 알 수 없는 것처럼 살아 보지 않고서는 누구도 모른다. 이 글은 ‘마당이 있는 집’을 꿈꾸는 우리 세대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자 소박한 헌사다.
 
2월은 단독주택에 사는 사람에겐 일년 중 가장 맘 편한 날들이 된다. ‘날짜가 적으니 고통 또한 적다’는 칸트의 말이 딱 떨어진다. 추위는 비교적 견딜 만하고 아직은 마당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잠시 행복하려면 취하면 되고, 한두 해 행복하려면 사랑에 빠지면 되지만 평생 행복하려면 정원을 가꿔 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도시인에게 정원가꾸기란 녹록치 않다. 지난겨울은 위대했다. 말이야 겨울은 겨울답게 추워야지 하지만 단독살이에겐 따뜻한 겨울이 위대한 계절이다. 유난히 포근했던 겨울, 여전히 단독은 춥다. 그래서 겨우내 마당과는 담을 쌓고 산다. 눈이 오면 오는 대로, 쌓이면 쌓이는 대로 내버려 둔다. 그나마 올겨울은 눈이 많지 않아 그런 날이 드물었다. 그래도 현관을 나서면 멀리 북한산 정상에서 냉기품은 눈 냄새가 묻어온다.
 
단독살이는 때때로 유년시절을 생각나게 한다. 근원적인 노스탤지어인 셈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정서는 그리움이라고 했다. 돌이켜 보니 유년시절은 정말 추웠다. 물 묻은 손으로 동그란 무쇠 문고리를 잡으면 손이 쩍쩍 달라붙었다. 소죽을 끓이던 가마솥에 세숫대야를 넣어 덥힌 물로 여럿이 돌아가며 고양이 세수를 했다. 요즘 세대가 상상이나 하겠는가. 등잔불 아래 헤진 양말을 깁던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도 어제같이 선명하다. 그 시절의 추위는 아니지만 그래도 단독은 춥다.  
 
바람을 막으려 거실 유리문 전체를 비닐로 덮었다. [신인섭 기자]

바람을 막으려 거실 유리문 전체를 비닐로 덮었다. [신인섭 기자]

1970년대 북한산 기슭에 건축된 우리 집은 서울 시내보다 1~2도가량 낮다. 그러고 보니 2층으로 올라가는 집 뒤편 계단을 밟은 지가 두 달이 넘었다.  
 
마당 바지랑대에 늘어둔 걸레는 대관령 덕장의 꽁꽁 언 황태 모습이다. 마냥 뻣뻣하다. 헌 이불, 옷가지로 겹겹이 둘러싼 마당 수도는 여전히 한겨울 풍경이다. 비닐로 만든 간이온실의 대파는 산바람에 맥을 못 추고 있다. 대문 밖 작은 정원에는 대나무가 고단하게 서 있다. 한 계절 초록을 빛내던 위풍당당함은 간 곳 없고 겨울바람에 비감하다. 한반도 남쪽이 북방한계선인 대나무는 서울에서 살기 어렵다. 이런저런 궁리 끝에 대나무에 비닐옷을 입혔다. 부디 죽지 말고  봄에 다시 만나게 되길 바랄 뿐이다.
 
마당 수도는 헌 이불, 옷가지로 겹겹이 둘러쌌다. [신인섭 기자]

마당 수도는 헌 이불, 옷가지로 겹겹이 둘러쌌다. [신인섭 기자]

겨울이 되면 마당으로 나가는 거실의 대형 미닫이 유리문은 굳게 잠긴다. 바람이 새 들어오지 말라고 바깥쪽 문 전체를 비닐로 덮었다. 그것도 부족해 방 안쪽에는 ‘뽁뽁이’가 붙어 있다. 그래도 창에는 아침마다 성에가 낀다. 바람은 그런대로 잘 막아 주지만 기온차로 안쪽에는 늘 물방울이 대롱대롱 달려 있다. 아침마다 젖은 창쪽 바닥을 마른 걸레로 닦아야 한다. 비닐 덕분에 보온은 어느 정도 되었지만 마당 풍경이 희미해졌다. 집이 마치 빛바랜 낡은 온실 같다. 거실 구석에 있는 보르네오 야자에 햇빛을 주고 싶어 가끔 비닐을 떼 본다. 감나무와 단풍나무를 묶어 만든 빨래 줄에 매달린 무청 시래기가 칼바람에 떨고 있다. 벌 받는 아이 같아 괜히 마음만 심란해진다. 바람이 불 때마다 서걱서걱 소리를 낸다. 지난여름 심었던 호박, 가지, 고추가 사라진 마당에 떨어진 바짝 마른 모과 몇 알이 마치 정물화 같다.
 
지난 며칠 반짝 추위에 힘들었다. 멋진 벽난로가 거실에 있지만 정작 피우지는 못했다. 벽난로만 피우면 이웃집 누군가가 “쓰레기 태우는 냄새가 난다” 며 경찰에 신고를 했다. 출동한 경찰은 참나무 장작임을 확인하고 “멋지다”며 돌아갔다. 그러나 피울 때마다 누군가 신고를 하고 경찰은 의무적으로 확인해야 한다며 왔다가는 미안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그러기를 서너 번 한 뒤엔 벽난로를 잊고 지냈다. 심지어 성탄 저녁에도 고심 끝에 포기했다. 도시 사람들의 로망이 벽난로에 장작을 피우고 커피를 마시며 브람스를 듣는 것 정도가 아닐까? 가족 모두 참담한 기분이었지만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그래서 우리 집 벽난로는 이제 눈요기감에 지나지 않는다. 아침저녁 차고 구석에서 웅크리고 있는 장작더미를 볼 때마다 마음이 시리다.
 
언짢은 일은 또 있다. 지난 연말 마당 구석 사철나무에 점멸등으로 트리를 만들었다. 성냥팔이 소녀의 불빛이 그랬을까. 어스름한 저녁, 스위치를 올리면 반짝이는 빛이 따스하게 느껴진다. 폭탄주 망년회 술자리를 마친 야심한 귀가길, 골목길에 들어서면 멀리 보이는 트리 불빛에 취한 가슴이 따뜻해진다. ‘집보다 더 좋은 곳은 없다’는 말을 실감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누군가 인터폰을 눌렀다. 골목 건너편에 사는 누구인데 트리 불빛 때문에 잠을 설치니 켜지 말라는 것이다. 망연자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공들여 만든 성탄트리를 포기하고야 말았다.
 
입춘이 지난 지 한참이건만 산기슭 집은 여전히 겨울이다. ‘입춘대길’ ‘건양다경’이란 말이 무색하게 봄은 아직 멀리 남쪽바다 어디쯤 서성이고 있나 보다. 단독살이에게 봄은 그냥 오지 않는다. 겨울을 견뎌 내야 비로소 봄이 오는 것이다. 곧 정월 대보름이다. 고개를 들어 올려 본 밤하늘, 달빛이 감나무 위에 하염없이 부서지고 있다. 2월이 가고 있다.
 
김동률 서강대 MOT 대학원 교수 yule21@empas.com
서강대 MOT 대학원 교수다. 고려대, 사우스캐롤라이나대 졸업. 매체경영학 박사. KDI 연구위원, 영화진흥위원, EBS 이사, 공기업 경영평가위원  등을 역임했다. 에세이가 고교 교과서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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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