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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프리즘] 사이버 가방 뒤지는 유교 탈레반 정부

김창우 비즈에디터

김창우 비즈에디터

“야동 좀 못 보게 한다고 이 난리냐”
 
정부가 지난 11일부터 해외 불법 사이트를 대상으로 한 새로운 차단기술을 도입했다. 국내 네티즌들이 HTTPS 방식을 적용한 해외 사이트 895곳에 접속하지 못하게 차단한 것이다. 사생활 침해와 도·감청 우려가 나왔지만 불법 사이트에 접속하지 않는 대부분의 이용자에게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아동 포르노물, 리벤지 포르노 등 불법 촬영물, 불법 온라인도박 등을 집중 차단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아무리 선한 목적이라도 잘못된 수단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사실 해외 사이트 차단은 이명박 정부 시절 시작됐다. 당시에는 HTTP를 대상으로 했다. HTTP는 인터넷에서 정보를 주고받는 규격이다. 대부분의 사이트가 http://로 시작하는 이유다. 공개방식의 HTTP는 누구나 볼 수 있기 때문에 해킹의 위험이 컸다. 그래서 나온 것이 정보를 암호화하는 HTTPS 기술이다. 이번에 정부가 도입한 방법은 암호화된 정보를 주고받기 전에 암호키를 교환하는 패킷(SNI)을 슬쩍 들여다보고 차단 사이트일 경우 접속을 막는 것이다. 네티즌들은 야동을 못 봐서가 아니라 해킹을 막기 위해 암호화 기술을 도입했더니 정부가 나서서 이를 무력화하는 행태에 분노하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 이런 방식으로 국민의 인터넷 사용을 감시하고 특정 사이트 접속을 통제하는 나라는 중국·러시아와 중동 국가들뿐이다. 달리 ‘유교 탈레반 국가’라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 아니다.
 
“내용은 안 보니까 검열이 아니다”
 
청와대에 “HTTPS 차단이 국가 검열로 확대될 우려가 크다”는 국민청원이 올라오자 사흘 만에 16만명 이상이 서명하는 등 반대여론이 일었다. 이에 대해 방통위 김재영 이용자정책국장은 “암호화하지 않은 SNI 부분만 확인할 뿐 암호화된 본문 내용은 볼 수 없기 때문에 검열이나 감청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인터넷 주소만 들여다보는 것이 감청에 해당하느냐 여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내가 접속하는 사이트를 정부가 확인한다는 것 자체가 사생활 침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은 명백하다. 방통위의 해명대로라면 전화 통화내역을 확인하는 것도 문제가 없다. 번호만 확인할 뿐 통화 내용을 엿듣거나 녹음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자신의 통화내역을 공개할 방통위원들이 있을까. 언제 누구와 통화했다는 사실 자체가 사생활 정보다. 특정인의 통화내역을 조회하려면 법원의 압수수색영장을 받아야 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18조에는 ‘모든 국민은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아니한다’고 명시돼 있다. 헌법재판소는 ‘통신’의 의미를 ‘비공개를 전제로 하는 쌍방향적인 의사소통’이라고 해석했다. 인터넷은 통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건지, 비공개를 위해 통신 내용을 암호화했더니 보안 취약점을 찾아 무력화해도 되는지부터 정부는 명확히 해야 할 책임이 있다.
 
“피해자 보호를 위해 부득이하다”
 
방통위는 “디지털 성범죄 영상물로 고통받고 있는 피해자의 인권 보호와 웹툰 등 창작자의 권리를 두텁게 보호하겠다”는 입장이다. 딴지를 걸었다가는 자칫 피해자의 아픔도 헤아리지 못하는 냉혈한으로 몰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피해자를 보호하는 것과 불특정 다수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HTTP 차단이 청와대 앞에 경찰을 배치해 찾아오는 사람을 돌려보내는 방식이라면 HTTPS 차단은 집을 나서는 사람 모두에게 “어디로 가느냐”고 묻고 청와대를 가려는 사람의 출입을 막아버리는 방식에 가깝다. 불법적인 콘텐트를 막으려면 만들거나 배포한 사람을 잡아내 처벌해야 한다. 기술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사이트 접속을 차단하는 쉬운 길로 가서는 안 된다. 불온서적과 유인물을 찾겠다며 경찰이 지하철역 앞에서 지나가는 대학생들의 가방을 뒤지던 1980년대로 돌아가려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김창우 비즈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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