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본드걸 출신 인권 전사 “여성할례 심각한데 미투가 문젠가”

여성할례 철폐 운동의 전사 와리스 디리는 여성들이 다른 여성들에 대한 학대와 차별에 함께 맞서 싸우고, 피해 여성들을 돕기 위해 나설 때에만 여성인권이 실현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경빈 기자]

여성할례 철폐 운동의 전사 와리스 디리는 여성들이 다른 여성들에 대한 학대와 차별에 함께 맞서 싸우고, 피해 여성들을 돕기 위해 나설 때에만 여성인권이 실현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경빈 기자]

와리스 디리(Waris Dirie). ‘007 리빙데이라이트’(1987) 본드걸 출신의 배우, 톱모델, 여성인권운동가. 1997년 아프리카에서 자행되는 여성할례(FGM: Female Genital Mutilation)를 고발한 후 지금까지 여성할례 철폐 운동을 격렬하게 벌여 인권운동가로 자리매김한 인물이다. 그가 ‘선학평화상’을 받기 위해 서울에 왔다기에 지난 주말 잠실롯데호텔에서 만났다.
 
그는 이론으로 무장한 여성인권운동가가 아니었다. 오히려 이론적인 수사에 대해서는 ‘흥!’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그의 언어는 과격했다. ‘구역질나는’ ‘사악한’ ‘학대’ ‘상상할 수 없는 폭력’…. 그는 인터뷰 내내 여성할례 야만성에 함께 분노하라고 강조했고, 여성이라면 이런 일을 당하는 다른 대륙의 여성을 돕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설득했다.
 
그는 50년 전쯤 자신이 당했던 여성할례에 여전히 분노했고, 이를 당하는 소녀들에게 엄청난 동정심을 표현했다. 그의 분노와 동정심은 강렬했다. 실제로 여성할례는 끔찍했다. 이는 어린 소녀들의 외음순을 절개한 후 성냥머리만 한 크기의 구멍만 남긴 채 실로 봉해버리는 행위다. 아프리카에선 여성의 순결을 증명한다며 3000여년간 여성의 성기에 ‘칼질’을 해온 것이다. 이 악습으로 인해 소녀들은 일상생활의 고통뿐 아니라 불임·요도손상과 같은 질병에 시달리고 최악의 경우 출혈과 감염으로 사망에 이르렀다.
 
“내가 여성할례 철폐 운동을 벌인 후 소말리아에선 소녀 98%가 당했던 여성할례가 8%로, 아프리카 전체에선 70%에서 7%로 줄었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믿기지 않는 폭력에 대해 이전엔 왜 아무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는지, 실제로 여성들의 저항이 없었는지 물었다. “아프리카에선 아들은 왕이고, 딸은 그저 돈이나 동물을 받고 팔아버리는 상품 정도로 생각한다. 잘 팔려면 순결해야 하고, 그걸 증명하기 위해 할례를 한다. 전 사회가 할례를 받지 않은 여성에게 더럽다고 비난하기 때문에 여성들은 저항하지 못한다.”
 
한 아프리카 소녀가 여성할례에 반대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중앙포토]

한 아프리카 소녀가 여성할례에 반대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중앙포토]

실제로 그도 13살 때에 60대 남자에게 낙타 다섯 마리에 신부로 팔렸다. 그러나 이때 그는 도망을 쳤다. 어린 소녀가 잡히면 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 선택을 한 데 대해 그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 구역질나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했다. 도망친 후 운이 좋게도 영국으로 갈 수 있었고, 영국에서 패스트푸드점 허드렛일을 하던 중 우연히 버킹엄 궁전의 사진작가에게 발탁되어 패션모델이 됐고, 지금까지 톱모델로 영화배우로의 삶을 살 수 있었다.
 
그가 모델로 자리 잡은 후 제일 먼저 한 일이 여성할례를 고발하고, 철폐운동을 벌이기로 한 것이었다. “여성할례를 폭로하자 서구사회 사람들은 이런 듣도 보도 못한 폭력에 충격을 받았고, 당신은 행운아라며 격려했다. 그게 전부였다. 그때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지구상에서 여성할례를 몰아내는 일을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테러위협? 마음대로 하라고 해. 나는 반드시 이 길로 가겠어’라고 말이다.”
 
“나는 아프리카 여성이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한테 해서는 안 되는 폭력을 방치하면 안 된다는 신념 때문에 일어났다.” 그러나 아프리카 여성들도 그를 비난했다. “아프리카에 갔을 때, 엄마들이 ‘당신은 이게 왜 잘못됐다고 떠드느냐’며 항의했다. 자신의 고통과 딸의 고통을 당연시하고 순종하면 여성의 고통은 지속된다. 그래서 나는 여성을 교육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사막의 꽃’ 재단을 세우고, 아프리카에 여성할례 재건병원과 여성들을 위한 학교를 세우고 있다.
 
‘여성의 순결과 정조’. 이는 전 세계적으로 여성에 대한 학대를 정당화하는 명분으로 활용된 남성권력의 헤게모니다. 남성이 여성을 겁탈하고 성욕을 채우려는 폭력성과 욕망에 비례해 여성에 대한 학대와 비난도 커졌다. 여성할례는 그중 가장 잔혹한 경우다. 남성의 성적욕망에서 비롯된 폭력의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하려는 나쁜 관습이 과연 여성들의 각성만으로 해결될까. 그래서 그에게 여성만을 위한 교육이 아닌 아프리카인 전체에 대한 새로운 교육운동을 해야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대번에 고개를 저었다. “나는 남자를 위해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여자를 먼저 보호해야 하고, 여성이 먼저 변해야 한다. 이렇게 변한 여성이 엄마가 되어 아들들을 가르쳐야 한다.”
 
그는 외골수다. 여성할례의 철폐 이외엔 관심도 없었다. 할리우드에서 시작된 미투에 대해서도 그는 “관심 없다”고 잘라 말했다. “여성인권을 주장하는 그녀들, 할리우드 스타들이 2억5000만 명의 소녀들이 당하는 실존적 고통에 대해 관심을 보였는가. 여성을 향해 지속되는 학대와 차별을 깨부수기 위해 함께 투쟁하는 한편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나선 후에야 여성인권에 대해 얘기해야 한다.”
 
그는 자신이 당한 학대에 대한 ‘분노의 에너지’를 긍정적 박애정신으로 폭발시킬 때 인류를 위해 얼마나 큰일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산 모델이다.
 
양선희 대기자/중앙콘텐트랩 sunny@joongang.co.kr

구독신청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