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현목(이하 현목)= 소설을 어떻게 봤나요? 82년생으로서.
나리카와 아야(이하 나리카와)= 재밌었어요. 공감가는 부분도 있고. 특히 재밌다고 느낀 게 김지영이 상담받는 정신과 의사가 공감능력과 이해심 있는 남성인 줄 알았는데, 여성차별적 발언하며 끝나잖아요. 남자들은 다 똑같다는 허무함?
현목= 다 그렇진 않은데...
나리카와= 알아요. 기자님은 안 그렇다는 거^^ 남편도 배려있는 편인데, 명절 준비를 내게 모두 맡길 땐 무심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본 남성 대부분이 그렇지만.
![국내에서 100만부 이상 팔린 소설 '82년생 김지영' [사진 민음사]](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02/15/1e9ce71d-cfd5-4b49-b30c-fd8f9bbd57cc.jpg)
국내에서 100만부 이상 팔린 소설 '82년생 김지영' [사진 민음사]
일본서 한달 만에 5만부 팔려, 중년 여성들 "우리 세대 얘기" 공감
나리카와= 40대 이상 여성이 많이 보는 것 같아요. 저는 남녀평등을 전제로 살아왔던 세대라, 소설을 읽으며 한국은 다르구나 생각했어요. 저보다 열살 많은 일본인 여성이 소설을 읽고서 ‘내 세대의 얘기’라고 하더군요.
현목= 한국에서도 소설의 취지엔 공감하지만, 묘사된 차별이 82년생이 아닌, 이전 세대가 겪었을 법한 거란 지적이 있어요.

'82년생 김지영'의 일본판
![일본 오사카의 한 서점에 진열돼 있는 '82년생 김지영' 일본판 [사진 나리카와 아야]](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02/15/1df7be73-d66a-433b-abd9-ccd786537c48.jpg)
일본 오사카의 한 서점에 진열돼 있는 '82년생 김지영' 일본판 [사진 나리카와 아야]
현목= 요즘은 남자들이 육아휴직도 내고 바뀌어가고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여자들이 더 큰 짐을 지고 있는 건 인정합니다. 그리고 입학·입사 때 보이지 않는 남녀 차별이 존재하는 것도 안타까운 현실이고요. 한국에선 최근 주요 은행·증권사가 여자지원자의 점수를 깎거나 남자지원자의 점수를 올리는 차별채용을 한 사실이 드러났고, 일본에선 지난해 도쿄의대 등 많은 의과대학이 여자수험생의 점수를 깎는 등 조직적 차별정황이 드러나 파문이 일었잖아요. 또 소설의 어떤 부분에 공감했나요?
나리카와= 성희롱 피해자 입장에서 그 부분에 화가 났어요. 불쾌하지만 일일이 따지는 게 피곤해서, 또는 손해볼 것 같아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여자도 좋아하는 거 아니냐고 착각하는 남자들 보면 화가 나요.
현목= 성희롱을 당한 적이 있다고요?
나리카와= 신문기자 시절 판매국 간부가 회식에서 저와 둘만 남는 상황을 만들고 강제로 손잡고 포옹하려 했어요. 그 간부와 일하는 친구가 불이익 당할까 두려워 문제 삼진 않았죠. 그 점을 이용하는 것 같아 더욱 화가 났어요.
현목= 한국도 성희롱 문제가 심각했지만 많이 개선되고 있어요. 성희롱 예방교육을 실시하고, 사내고발 시스템을 갖춘 회사들도 많아요. 교육을 받은 뒤 여자후배에게 카톡 보낼 때나, 대화 할 때 이모티콘이나 단어 사용에 더욱 신중해지더라고요.
나리카와= 술자리에서 여대생의 특정 부위를 만졌다는 이유로 ‘미투’ 고발당해 일을 그만둔 사람 얘기를 듣고, 한국에선 그 정도 일로 직업을 잃는구나 생각했어요. 난 그런 일 진짜 많이 당했는데…. 취재원이었던 문화예술인이 술자리에서 제 엉덩이를 노골적으로 만졌던 적도 있어요.
현목= 한국에서 그랬다간 당장 기사가 나고, 그 사람은 사회적으로 매장되죠. 몇년 전 영화기자를 할 때, 술자리에서 스타배우가 안주로 나온 오징어를 찢으며 ‘오징어는 여자가 찢어줘야 맛인데’라고 하길래 ‘말조심 하라’고 타일렀던 적이 있어요.
일본 경찰간부, 여기자에 "고생말고 시집이나 가라" 충고하기도
현목= 한국에서 경찰 간부가 그런 말 하면 사과하지 않고선 못 버틸 거에요. 일본에선 왜 미투 운동이 활발하지 않은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나리카와= 몇명이 고발하긴 했지만, 한국처럼 뜨겁게 불 붙진 않았어요. 기대했던 결과가 안나오고, 오히려 피해자가 비난받는 상황이 되니까 피해자가 해외로 이주한 경우도 생겼고.
![2017년 자신이 성폭행 당한 사실을 공개하며 미투 운동을 시작한 이토 시오리. [AP=연합뉴스]](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02/15/95d60a0d-362f-4774-8c84-7890a96083f6.jpg)
2017년 자신이 성폭행 당한 사실을 공개하며 미투 운동을 시작한 이토 시오리. [AP=연합뉴스]
나리카와= 맞아요. 용기있는 피해자가 나오면 지켜주겠다거나, 응원하겠다는 반응이 많아야 하는데, 비난이 더 많기 때문에 피해자들은 더 움츠려들죠.
방송사 간부에 성폭행당한 이토 시오리의 절규에 침묵한 일본 사회

성폭력 피해자 이토 시오리가 쓴 책 '블랙박스' 표지
![상사에게 성추행 당한 사실을 폭로, 미투 운동을 촉발한 서지현 검사. [중앙포토]](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02/15/30d9b2a8-4ab6-4d18-b044-c21173fbe7cb.jpg)
상사에게 성추행 당한 사실을 폭로, 미투 운동을 촉발한 서지현 검사. [중앙포토]
'모난 돌' 되기 싫어 부당한 일 당해도 감내하는 일본인들
현목= 말 안하고 있으면 피해자가 계속 나오잖아요. 성폭력은 더 기승 부리고.
나리카와= 그래서 답답해요. 더 억울한 건, 한국에서 성폭력 피해여성을 비난하는 건 대부분 남성인데, 일본은 ‘네 행실이 어땠길래’라며 여성들도 비난에 가세해요. 그래서 피해여성이 더 상처받아요. 잘못됐다는 걸 알면서도 KY가 될까봐 숨 죽이고 살던 분들이 『82년생 김지영』을 읽으며 공감하고 위로받는 면도 있을 거에요.
현목= 작가는 양성평등사회를 꿈꾸며 소설을 썼을텐데 남녀 별로 반응이 엇갈리는 걸 보면 안타까워요.
나리카와= 한국은 남녀갈등이 너무 심해요. 여자들이 마스크 쓰고 몰카(불법촬영) 반대 시위하는데, 그걸 찍는 남자들이 있고, 여자들이 막으려 또 싸우고…. 도대체 뭐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페미충' '한남충' 남녀 갈등 극심한 한국사회, 대체 왜 이러나
나리카와= 일본도 그래요. 일부 남성들이 페미니즘을 비판할 때 ‘모테나이카라’(인기가 없으니까) 저러고 있는 거다 라고 손가락질 하거든요. 한국에서 ‘페미충’ ‘맘충’ 같은 극단적인 비하 표현을 듣고 깜짝 놀랐어요. 소설에서 김지영은 ‘맘충’이란 말을 듣고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잖아요. ‘한남충’이란 말도 있던데요.
현목= 멀리서 찾을 필요 없어요. 제가 바로 ‘한남’이니까 ^^ 우리 대담의 제목을 정할 때 ‘한남일녀 수다’로 한다니까 엄청 웃는 사람도 있고, 말리는 사람도 있었어요. 한국 남자란 단어가 왜 조롱거리가 됐는지 안타깝네요. 양성평등사회를 위해 여성인권에 대한 관심과 목소리가 높아지는 건 당연하지만, 모든 문제를 여성혐오나 젠더 문제로 환원하는 일부 급진적 페미니스트의 태도는 문제가 있다고 봐요.
![영화 '82년생 김지영' 주연을 맡은 배우 정유미 [사진 매니지먼트 숲]](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02/15/a738b683-64fd-4b94-87cb-bf02075ad5d6.jpg)
영화 '82년생 김지영' 주연을 맡은 배우 정유미 [사진 매니지먼트 숲]
현목= 집에서 애 보느니, 차라리 밖에서 일하는 게 낫다고 하는 남자들이 많아요. 그만큼 육아가 힘든 일이라는 거죠. 주52시간 근무로 여유시간이 늘어난만큼 가사와 육아를 함께 하는 남자들이 늘어났으면 좋겠어요. 얘기가 드라마 ‘SKY캐슬’처럼 너무나 훈훈한 결말로 끝나는 느낌 ^^
나리카와= 그건 그렇고, 문제의 오징어 발언을 한 스타배우는 누군가요?
현목= 생맥주 한 잔 할 때 알려드릴게요. 물론 오징어는 제가 찢겠습니다 ^^ 그리고 자신이 겪은 성희롱을 털어놓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용기 내주셔서 감사해요.
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