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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각수의 한반도평화워치] 최악 한·일 관계, 위안부·강제징용 빅딜로 돌파해야

한·일 관계 정상화
2012년 이래 악화한 한·일 관계는 수교 반세기 이래 가장 길고도 엄중한 위기 상황이다. 최근 한국 군함의 사격통제레이더 조사 논란과 일본 초계기의 저공비행 문제는 한·일 관계의 심각한 현주소를 보여주었다. 정상적이라면 안보 당국 간 사실관계 확인으로 쉽게 끝날 일이 정치화하며 외교 분쟁으로 비화하였다. 그만큼 양측의 상호 불신·경원이 도를 넘어 복원력을 잃었음을 뜻한다.
 
다중 복합골절 상태의 한·일 관계에는 여러 구조적 요인이 똬리를 틀고 있다. 양국 사회가 전후 세대로 교체되어 과거사 인식의 괴리가 커졌다. 구매력 기준 양국 국민소득이 같아질 정도로 경제 격차가 축소된 것도 영향이 있다. 또 한국에선 과거 권위주의 정부에서 이루어진 대일 정책에 대한 ‘정의 찾기’가 나타나는 상황에서, 일본에선 ‘잃어버린 20년’에 따른 보수 우경화와 역사 수정주의가 대두하며 과거사를 소환해내고 있다.
 
한국의 ‘중국 경사론’을 야기한 중국 부상에 대한 인식 차이도 한몫하고 있다. 안전판이었던 다양한 소통 채널이 동맥경화에 걸린 가운데 장기 관계 악화로 상호 인식·이해·신뢰·기대의 격차가 확대되었다. 여기에 종래 해결사 역할을 하던 정치권이 최근에는 오히려 문제를 만들고 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한·일 관계의 장기 악화는 ‘덧셈의 외교’가 필요한 상황에 ‘뺄셈의 외교’로 상호 손실을 가중하고 있다. 첫째, 관계 악화는 양국 모두 동북아의 전환기 상황에 대처하는 데 부정적 영향을 준다. 양국은 북핵 위협 해소, 중국 부상에 대응한 지역 질서 안정화 노력, 그리고 신고립주의 성향인 미국의 동북아 관여 유지 등에 비슷한 이해관계를 가진다. 둘째, 한·일 협력을 통한 시너지 효과를 얻지 못해 기회비용을 치르고 있다. 양국은 기본 가치를 공유하는 아시아에서 2개국뿐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지만 다양한 협력의 기회를 놓치고 있다. 셋째, 한·일은 미국 동맹국으로서 동북아 전략 균형의 중심이다. 관계가 악화하면 한국에는 한·미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일본에는 한·일·중 삼각관계에서 한국을 중국으로 내몰게 된다. 결국 중국·러시아·북한으로 연결되는 강권주의 대륙 세력의 이익으로 귀결된다.
 
따라서 양국은 지금의 위기에서 조속히 탈출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과거사와 관계 일반을 분리하는 투트랙 접근과 함께 셔틀외교 복원을 발표하면서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과거사 현안이 잇따르면서 일본이 원트랙을 고수해 진전이 없다. 아베 정부의 한국 비껴가기와 국내 정치 이용 탓에 어려움도 있지만, 전환기 우리의 전략 공간을 창출한다는 대국적 차원에서 과거사 문제 해결을 꾀하면서 한·일 관계 회복을 서둘러야 한다.
 
과거사 문제는 한·일 관계 정상화를 위해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역사의 나이테가 겹겹이 쌓인 시간의 무게만큼 해결이 쉽지 않다. 먼저, 양측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한·일 간 오해·무지·편견이 과거사 문제를 증폭시키는 기제가 되고 있다. 감정이 아닌 이성으로 역사적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둘째, 과거사 문제가 정치화하고 과도한 민족주의로 굴절되어 있다. 양측 모두 국제 기준에 맞추어 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셋째, 과거사 문제는 상대에 손가락질만 하지 말고 가해자의 반성·사죄와 피해자의 관용이라는 협력의 자세로 풀어야 한다. 한·일 협력으로 해결한 사할린 한인 문제가 좋은 선례다.
 
넷째, 일단 해결이 되면 잘 지키고 되돌리지 말아야 한다. 외교적 타협이다 보니 결과에 불만이 있게 마련이지만 부족한 점은 서로 메워나가야 한다. 다섯째, 역사 화해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긴 호흡으로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로 쌓아가면서 올바른 역사 교육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한·일역사공동위원회 재가동과 공동 역사 교과서와 보조 교재의 편찬을 꾀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 역사에서 교훈을 얻되 역사의 노예가 되어서도 안 된다. “과거에 머무른 자는 한눈을 잃고 과거를 잊은 자는 두 눈을 잃게 될 것이다”는 러시아 격언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이런 기조 위에서 양국 최대 현안인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징용 문제의 일괄 타결(빅딜)을 꾀할 필요가 있다. 2015년 일본군 위안부 한·일 합의는 파기·재교섭하지 않기로 했으니 화해치유재단 해산으로 남은 57억원의 사용 용도와 한·일 합의의 보완 사항을 일본과 협의하여 해결해야 한다.
 
강제징용 문제는 한국 정부와 청구권 자금 사용 한국 기업, 해당 일본 기업 3자의 출연 기금으로 보상하는 방안이 유사한 중국·독일 선례는 물론 기존의 행정부 입장과 대법원 판결을 충족하는 장점이 있다. 기금 운용은 화해치유재단 잔여액도 함께 관리하도록 새 재단을 만들거나 포스코가 60억원을 출연한 기존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유대인 박해의 역사를 기록한 이스라엘의 야드 바솀처럼 불행했던 우리 역사를 기록·보존·교육할 센터를 설립하는 것도 미래를 위해 피해자 의식을 넘어서는 역사 극복의 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양국의 현재·미래를 위한 협력도 추구해야 한다. 양국 국민감정을 치유하고 미래 세대의 우정과 신뢰를 위한 교류 협력을 제도화하고 확충해야 한다. 셔틀 정상외교를 포함해 다양한 차원의 부처 간 정례 교류를 정치 상황에 구애받지 않고 실행해야 한다.
 
경제 분야에서도 양국의 경제 신뢰를 담보할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한국의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에 대한 일본의 지원, 중단된 통화 스와프 재개, 3국 시장에서의 인프라·플랜트·자원 협력, 4차산업 협력, 저출산·고령화 대처 등 협력의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동시에 북핵 해결, 북한 개혁·개방 유도, 건전하고 안정된 동아시아 질서 구축, 미국의 지속적 관여 확보, 자유주의 국제 질서 유지 등 전환기적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적 소통과 협력을 도모해야 한다. 올해는 셔틀 외교가 부활하고 지난해 김대중·오부치의 한일파트너십선언 20주년 계기에 못다 한 새로운 미래 비전 만들기가 꼭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상호 손실의 제로섬 게임에서 벗어나 상호 이익을 가져오는 윈-윈 게임으로의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 
 
일본에 대한 5가지 오해와 진실
일본을 바로 보려면 5가지 오해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첫째, 일본은 과거사에 대한 반성·사죄가 부족하다는 인식이다. 1965년 국교 수립 당시에는 시이나 외상의 유감 표명뿐이었다. 이후 80년대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 파동을 거쳐 95년 자민당·사회당 연립 정권의 무라야마 총리가 아시아 대상 담화에서 식민 지배에 관한 반성·사죄를 표명하였고, 98년 김대중·오부치 한일파트너십선언도 이를 계승하였다. 강제 병합 100년인 2010년에는 민주당 정권 칸 총리가 한반도만을 특정해 반성·사죄를 표명한 담화를 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93년 고노 관방장관이 담화에서 반성·사죄를 표명하였고, 일본 정부의 기본 입장으로 유지되고 있다. 피해자 입장에서 충분하지 않겠지만 50년대 이래 조금씩 진전한 결과 최소한 식민 지배가 부당했다는 인식이 일본 사회에 자리 잡았다. 사죄를 더 요구하기보다는 일본 정부나 정치인들이 이를 어기는 발언·행동·조치를 하지 않도록 하고 역사 교육을 강화해 나가도록 하는 것이 올바른 접근이다.
 
둘째,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에 대한 오해다. ‘강한 일본’을 지향하는 아베 정권 이후 일본 사회에서 보수 우경화 현상이 강해진 것은 사실이나, 일본 사회에는 전후 70여년간 평화헌법하에서 길러진 평화 의식이 있다. 헌법 개정에 반대하는 여론이 절반을 넘는다. 집단주의 경향에 유의해야 하나, 재정 적자, 인구 감소, 평화헌법 등 제약이 있다.
 
셋째, 일본 국력에 대한 저평가다.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으로 세계 2위 경제 지위를 중국에 넘겼지만, 아시아에서 근대화에 제일 먼저 성공했고 40년간 세계 2위 경제로 축적한 유무형의 자산이 있으며 세계 1위 순채권국이다. 중국 부상으로 가려졌지만, 일본은 여전히 동아시아의 주요 행위자다. 최근 경제 회복을 배경으로 ‘미국+α’ 전략을 통해 독자 노선을 강화하면서 아시아 지역 강국을 지향하고 있다. 인도·태평양 구상을 지렛대로 중국과 세력 균형을 꾀하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넷째, 아베 총리와 일본을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아베 총리가 역대 최장수 총리를 향해 가고 있지만, 이는 경제 회복에 대한 기대와 매년 총리가 바뀌는 정치 불안을 겪은 일본 국민의 안정에 대한 희구가 반영된 것이지 우경화 정책 지지를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의 대일 정책도 일본 전체를 보고 긴 안목으로 냉정하게 전개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일과 미국과의 관계다. 동아시아 전략 지형에서 가장 중요한 행위자인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은 한·일 관계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미국은 경제·외교·군사적으로 한국보다 일본을 중요시한다. 일본은 미국 군사력의 동아시아 전개에 핵심이며 전략 경쟁 관계인 중국을 봉쇄하는 불침 항모로서의 지정학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 세계 3위 경제 대국이며, 유일한 아시아 G7 회원국이다. 우리는 대미 관계에 있어 원칙·가치·정당성을 통해 일본과 다른 독자적 입지를 구축해야 한다.
 
전환기 외교에서는 냉철한 현실 분석에 입각한 실용적 정책을 추구해야 한다. 과거사로 인해 현재·미래의 일본에 관한 객관적 시각을 놓쳐서는 안 된다. 차분하고 균형된 일본관이 필요하다.
 
신각수 법무법인 세종 고문·전 주일대사·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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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