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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 정치 형벌로 겁주고 최악의 정치 국민과 다툰다”

사마천의 화식열전으로 본 문재인 정치
“제일 잘하는 정치는 국민의 마음을 따라 가고 그 다음이 국민을 이익으로 이끄는 정치다. 세번 째는 도덕으로 설교하고 네번 째 아주 못난 정치가 형벌로 겁을 주며 다섯번 째 최악의 정치는 국민과 다툰다.”
 
2000년전 사마천(史馬遷)이라는 역사학자가 그 때까지 1000년간 중국 왕국들의 흥망성쇠를 두루 살핀 뒤 내린 결론이다. 사마천의 역사서 『사기(史記)』는 총 130편. 거의 마지막 챕터인 129편 화식열전(貨殖列傳)편에 ‘좋은 정치론’이라고 이름 붙여도 좋을만한 26자 한자(漢字·기사 맨 뒤 참조-필자 주)가 있다. 26자를 국민대 홍성걸 교수가 위와 같이 찰지게 번역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1년9개월을 돌이켜 볼 때 초기 잠깐을 제외하곤 세번 째,네번 째,다섯 번째 정치가 지배적이었던 것 같다. 말로는 도덕을 설교하고, 손발로 형벌을 겁주다가 최근 석달은 아예 온 몸으로 국민과 다투고 있으니 말이다. 문 대통령은 이쯤해서 2017년 5월 10일 취임식에서 했던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 저를 지지하지 않은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다(국민 일치)” “야당은 국정운영의 동반자, 대화를 정례화하고 수시로 만나겠다(야당 인정)” “전국적으로 고르게 인사를 등용하겠다. 저에 대한 지지 여부와 관계없이 인재를 삼고초려해 일을 맡기겠다(인사 탕평)”는 위대한 연설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국민 일치, 야당 존중, 인사 탕평이 문 대통령의 탈출구다.
 
문 대통령은 어떤 경로로 최악의 정치에 이르게 되었나.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우선 그를 둘러싼 집권세력의 도덕성에 의문들이 제기되면서 그런대로 괜찮았던 세번 째 설교 정치가 먹히지 않게 됐다. 문 대통령은 딸과 사위의 해외 이주문제에 대해 불투명하고 수세적이다. 또 문 대통령의 집권당은 자기들에게 불리한 판결을 1심에서 내렸다는 이유로 해당 판사의 탄핵을 검토하고 있다. 입법부의 다수파가 사법부의 구성원에 대해 구체적인 법률 위반의 증명이 없는데도 탄핵 운운하는 일은 근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듣도 보도 못한 일이다. 3권분립 파괴, 헌법 위반이 도를 넘었다. 민주당의 위험한 행동은 2심 판사에게 ‘제대로 판결하지 않으면 당신도 탄핵이야!’라는 협박이나 다름없다. 뿐인가. 문빠라는 지지층은 집권 세력의 주장들을 사슴을 말이라고 해도 믿어주겠다는 특이한 정신 상태에 휩싸였다. 청와대·민주당·지지층의 태도가 이러하니 그들을 세상 사람들이 흔쾌히 받아들이기 어렵다.
 
네번 째 형벌정치도 설득력을 잃었다. 문 대통령의 적폐청산 정책은 처음엔 그럴 듯 하였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엄정함이 떨어졌다. 내 편에 관대하고 상대편에만 엄격한 내로남불 정의, 끊임없이 희생양을 찾아내고 거듭해서 괴롭히는 방식으로 대중의 허기를 채우는 잔인한 정의라는 비판이 번져 갔다. 적폐청산이 현 권력의 장기집권을 위한 저항세력 뿌리뽑기라는 음모론마저 나돈다. 이러니 이 정부의 형벌에 승복 못하겠다는 사람이 늘어가고 있는 것이다.
 
형벌의 공정성에 대한 불신은 문재인 정부 들어 ‘재판은 곧 정치’라고 생각하는 판사들에 의해서도 조성됐다. 오현석이라는 판사는 2017년 8월 법원의 인트라넷 게시판에 “재판은 곧 정치라고 말해도 좋은 측면이 있다”라는 표현으로 세상을 충격에 빠뜨렸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회장을 지냈던 ‘우리법연구회’‘국제인권법연구회’같은 사적 단체들은 법원내 신주류로 평가받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11월 사법농단 연루를 명목으로 동료 판사들을 탄핵하자고 했던 전국법관대표회의를 주도했다. 이에 대해 “판사들이 법률과 양심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념에 따라 정치 재판을 하려는 것이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다섯번 째 최악의 정치인 국민과 싸우는 정치는 최근 석달 사이에 벌어졌다. 청와내에서 터진 김태우 수사관의 내부고발 사건(지난해 11월 30일 표면화 됨)이 시작이다. 권력의 심장부에서 일어난 민간인 사찰, 편파적 인사검증, 진영내 이권 나눠먹기, 의식분열적 언행(아랫 사람을 미꾸라지로 치부하고 미꾸라지의 일은 청와대가 한 일이 아니라는 궤변)과 조국 민정수석 등의 책임회피성 언행은 보통 사람들의 상식을 시험하는 것이었다. ‘못된 시어머니를 욕하면서 닮는다’고 했던가. 박근혜 정부와 다른 게 뭐냐는 지적이 나왔다. ‘대한민국 장군’의 자살(12월 7일)을 초래한 검찰의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 모욕 사건에 대해서도 형벌권 남용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신재민(12월 28일)·손혜원(1월 15일)·서영교(1월 15일)·문다혜(1월 29일)·김경수(1월 30일) 사건에 대한 권력층의 태도는 국민을 설득하기 보다 국민에게 일방적으로 따라오라는 훈시같았다. 사람의 마음 속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양심이나 감각과 동떨어졌다. 예를 들어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거의 목숨을 걸다시피 민간회사 대표 교체및 국채상환 중지 시도 등 청와대의 직권남용을 폭로한 것에 대해 문 대통령이 “좁은 세계의 시야, 너무 비장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대수롭지 않게 처리한 게 대표적이다. 30대 젊은 사무관은 대통령의 발언이 무서웠을 것이다. 손혜원 의원의 부끄러움을 모르는 부동산투기·공직윤리위반 의혹과 서영교 의원의 국회의원실 재판청탁 사건에 민주당 지도부가 “혐의 없음,징계 불필요”로 응답한 것도 국민의 상식에 반했다. 2월 11일 문재인 대통령은 입법부 수장인 문희상 국회의장이 서명·요청한 5·18 진상조사위원 2명(야당 몫)의 임명을 거부했다. 입법부의 합의에 따라 국회의장이 임명을 제청한 국가위원을 대통령이 거부한 일은 전례가 없다.
 
대선 때 드루킹 댓글조작의 공범 혐의로 김경수 경남지사에게 유죄 판결이 내려지자 민주당은 “감히 촛불 대통령한테 대선 번복으로 대드나(이해찬 민주당 대표)” “사법부 내부 적폐사단의 조직적 저항(홍영표 원내대표)”이라는 상식 이하의 반응을 보였다. 놀랍게도 이런 집권층의 정신 상태는 설 연휴 뒤 더 악화됐다. 이런 것들이 문재인 정부가 정의를 설교하고 형벌로 제압하다 국민과 싸우는 신세, 즉 사마천식 ‘최악의 정치’에 빠져 들게된 경과다.
 
국민과 싸우는 정치는 대통령 지지율이 지난해 11월부터 극적으로 하락한 점에서도 알 수 있다. 2017년 5월 취임 때 80%를 넘던 문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은 1년6개월만인 2018년 11월 세째 주 40%대로 반토막 나더니 석달간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대선 때 문재인 후보를 찍지 않았으나 집권 뒤 그의 겸손함과 따뜻함을 보고 지지를 보냈던 사람들이 다시 등을 돌리는 형세”라고 분석한다.
 
그러면 문재인 정부는 최악의 정치 수렁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쉽지 않지만 불가능하지도 않다. 1년9개월전 취임사에서 약속했던 ‘국민 일치’ ‘야당 인정’ ‘인사 탕평’의 초심을 회복하면 된다. 사마천은 최상의 정치가 백성의 마음을 따르는 것이라고 했다. 차상의 정치는 백성들을 이익으로 유도하는 것이다. 사마천의 좋은 정치론은 고조선을 포함해 중국과 주변 역사 1000년간 명멸했던 수많은 왕국들을 연구해 얻은 통찰인만큼 문 대통령이 엄중하게 귀기울일 가치가 있다.
 
인간의 본성에 따르는 정치를 하라는 게 사마천 치국론(治國論)의 요체다. 화식열전의 머릿말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신화 시대의 일에 대해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역사 시대의 사람들을 살펴 보니 귀와 눈은 아름다운 것을 즐기려 하고, 입은 좋은 맛을 보려 하며, 몸은 편한 것을 좋아하고, 마음은 권세와 유능하다는 영예를 자랑하고 싶어한다. 이런 풍속은 백성의 마음 속 깊이 파고 든지 오래여서 미묘한 이론을 가지고 집집마다 깨우치려 해도 도저히 교화시킬 수 없다. 그러니 다른 생각 하지 말고 백성의 자연스러운 본성을 따라 다스리라.”
 
개인에 대한 자각이나 인권 개념이 전무하던 시절 집집마다의 욕망과 이기심을 존중하고 그 결을 따르라는 충고다. 이렇게 정치를 해야 민부(民富)가 커지고 그에 비례해 강국(强國)이 된다는 설명이 붙었다. 그 반대로 해서 잘 된 나라를 보지 못했다. 사마천 이후엔 20세기 말 소련 공산주의의 붕괴와 현재 진행중인 베네수엘라식 민중 민주주의의 참극이 대표적인 실패의 예다. 소비에트식 집단적 정의나 모두 똑같이 나눠갖는 평등주의같은 온갖 미묘한 이론으로 국민 개인의 욕망과 이익을 억제하려고 하다 망한 나라들이다.
 
사마천 화식열전의 교훈은 계속 된다. “빈부의 도는 누가 빼앗아 되는 것도, 누구한테 빼앗겨서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니다. 정교한 재주가 있으면 부유해지고 그런 게 없으면 가난하다” “천하 사람은 이익을 위해 기꺼이 모여 들고 이익이 없어지면 모두 떠난다”같은 금언이다. 부자가 무슨 죄인이라도 되는 것같은 사회 분위기나 공공의 무대에선 이익이 아닌 정의를 외쳐 줘야 그럴듯한 사람으로 대접받는 위선적인 풍토를 개탄하는 말이다.
 
문재인 정부가 최악의 정치 수렁에서 빠져 나오려면 국가가 개입해 모두를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환상부터 깨야 한다. 국가는 국민 개개인의 욕망과 이익의 흐름을 보호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고 이 흐름에서 배제된 사람들을 위해서만 보조적으로 개입하는 방식을 취하는 게 정도다. 이 정부는 지난 1년9개월간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겉만 번드르한 ‘정의의 철학’에 심취하다 국민 분열,야당 무시,편파 인사의 수렁에 빠졌다. 국민 일치,야당 인정,인사 탕평이 필요한 시점이다. 국민의 욕망과 이익을 자연스럽게 따르겠다는 문 대통령과 그의 청와대 참모,민주당 지도부의 성찰에서 변화는 시작될 것이다.
 
*화식열전(貨殖列傳)의 26자
故善者因之(고선자인지)
其次利道之(기차리도지)
其次敎誨之(기차교회지)
其次整齊之(기차정제지)
最下者與之爭(최하자여지쟁)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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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