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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잘 나가고 싶었던 판사님들에게

검찰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고영한, 박병대 전 대법관을 기소했다. 전직 대법원장과 대법관이 재판에 넘겨진 것은 헌정 사상 최초다. 왼쪽부터 양 전 대법원장, 고영한·박병대 전 대법관. [연합뉴스]

검찰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고영한, 박병대 전 대법관을 기소했다. 전직 대법원장과 대법관이 재판에 넘겨진 것은 헌정 사상 최초다. 왼쪽부터 양 전 대법원장, 고영한·박병대 전 대법관. [연합뉴스]

"이미 판사가 되셨는데도 더 잘 나가고 싶었나봐요?"
 
전·현직 판사를 만날 때마다 물었다.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취재하며 윗선의 지시를 거부하지 못한 판사들이 떠오를 때마다 물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미 사회적 존경을 받는 법관이란 직위에 올랐는데 왜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지 못했을까. 뭘 그리 더 잘 나가고 싶었을까. 판사님은 그래도 조금 다를 것이란 기대감도 섞여 있었다.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지낸 변호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박 기자는 시골에서 음주운전 판결만 하고 싶겠어?” 기자가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실망감이 묻어났다.  
 
법원에서 '잘 나갔던' 고등법원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에게도 물었다. 그는 “저도 젊었을 때는 다를 줄 알았는데 판사도 다 똑같더라구요”라고 말했다. 자신을 시기하고 부러워했던 판사들이 그의 생각을 바꿔 놓았다고 했다.

 
1등만 했던 사람들이니 뒤쳐짐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란 관성적 사고가 작동했다. 그때 “스님과 목사님도 출세욕이 있는데 뭐 판사라고 다르겠느냐”는 다른 변호사의 말이 나왔다. 확신이 섰다. 아, 판사님도 승진하고 출세해서 잘 나가고 싶은 직장인이었구나.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이 11일 기소됐다. 전직 대법원장과 대법관이 재판에 넘겨진 것은 헌정사상 최초다. 양 전 대법원장에게 적용된 혐의는 47개. 모두 유죄가 나오진 않더라도 모두 무죄가 나올 가능성도 희박해 보인다. 
 
전직 사법수장이 구속기소되자 시선은 현직 사법수장인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쏠린다. 기자들은 김 대법원장의 출근길을 기다리다 질문을 쏟아낸다. 김 대법원장은 12일 입장을 발표하고 국민에게 사과하며 사법제도에 대한 구조적인 개혁을 약속했다.
 
하지만 이런 시선은 이번 사태의 뿌리를 드러낼 수 없다. 윗선에게 모든 책임을 묻기에는 그들의 공소장에 등장하는 현직 판사들의 이름이 너무 많다. 이들의 도움이 없이 양승태 대법원은 없었다. 마찬가지로 일선 판사들의 도움 없는 김명수 대법원의 개혁도 공허할 뿐이다. 
 
국회의원 재판청탁을 그대로 전달한 국회 파견판사부터 “막아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그 청탁을 일선 판사에게 전달한 법원장. 양승태 대법원을 비판하고 사회적 문제에 목소리를 냈던 판사들에게 인사 조치를 가했던 부장판사. 윗선의 지시에 판결문을 수정하고 구속영장 기밀을 보고했던 평판사들까지 모두 기억해야 한다.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헌법 제103조)는 법관들의 모습은 다른 조직원들과 다르지 않았다. 게다가 그들은 법원에서 소위 잘 나가는 판사에 속했다. 명문고를 졸업했고 서울대를 나와 재학 중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똑똑했다. 딱 거기까지였다.

 
이런 글을 쓰는 것이 매일 수천 쪽의 재판기록을 읽고 법정에 선 억울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며 재판을 하는 수많은 판사들을 욕되게 하는 것인 줄 안다.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의 출발점은 양승태 대법원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했던 이탄희 판사였다. 
 
하지만 수장과 조직에만 책임을 묻기에는 판사의 자리가 가볍지 않다. 판사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법원의 미래는 없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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