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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낸드 맹추격…“선제적 투자 지연 땐 초격차 유지 못해”

표류하는 반도체 클러스터 
각 지방자치단체의 사생결단식 반도체 클러스터 유치전을 지켜보는 반도체 업계는 곤혹스럽다. 반도체 클러스터 입지가 산업논리가 아닌 정치논리로 결정될 경우 ‘미래 경쟁력 확보’라는 당초 목표와 거리가 먼 엉뚱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더구나 업계는 올 상반기 중에는 입지가 선정돼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지자체와 정치권이 개입하면서 결정 시기마저 불투명해졌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는 11일 “반도체 클러스터 입지는 우리 주력 산업인 반도체의 글로벌 초격차를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한다”며 “특히 당초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가장 빠른 적기에 가장 적합한 적지를 선정해야 한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반도체 산업은 적기의 투자와 더불어 부품 협력업체와 연계한 적지에서 생산하지 못하면 순식간에 경쟁력을 잃고 국제무대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담겨 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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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나 반도체 업계가 반도체 클러스터 입지 선정과 투자 시기를 서두르는 가장 큰 이유는 중국이다. 중국은 2015년 제조업 육성 방안을 담은 ‘중국제조 2025’에서 반도체 자급률을 2020년까지 40%, 2025년까지는 7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반도체 굴기’를 선언했다. 이후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을 잇따라 인수합병하고, 2016년에는 D램 공장 2개와 낸드 공장 1개를 착공했다. 특히 중국 칭화유니그룹의 자회사인 YMTC는 2016년 우한(武漢)에 240억 달러(약 27조원)를 투자해 착공한 낸드 공장에서 2018년 32단 3D 낸드 시제품 제작에 성공했다. 올해부터는 64단 낸드 생산을 본격화한다.  
 
낸드는 전원이 꺼지면 저장된 자료가 사라지는 D램이나 S램과 달리 전원이 없는 상태에서도 데이터가 계속 저장되는 플래시 메모리다. 스마트폰과 PC의 주저장 장치로 활용되며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인공지능(AI)의 개발과 함께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64단 3D 낸드는 국내 업체들도 1~2년 전부터 양산을 시작한 터라 중국에 시장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는 선제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에는 반도체 제조기술의 한계로 인해 국내 업체의 장점으로 꼽히는 개발 속도와 미세화 속도가 점차 둔화하고 있다. 국내 반도체 업계가 “한국 반도체가 현재는 경쟁력 우위를 갖고 있지만 앞으로 계속 차이를 벌릴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갈등, 미국의 중국 기술 견제 등으로 최근 중국의 반도체 추격 속도가 더뎌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송용호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중국이 미국과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 반도체 굴기 전략을 부분적으로 가다듬을 수는 있겠지만 목표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중국이 향후 세계 경제에서 차지할 입지를 고려하면 반도체 산업은 절대 포기할 리 없다는 것이다.  
 
SK하이닉스 연간 투자 금액

SK하이닉스 연간 투자 금액

반도체 산업의 초격차 유지를 위해 필수적인 게 최적의 위치에 투자하는 것이다. 안기현 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특히 반도체 장비나 소재, 부품 업체가 근처에 위치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연구를 담당할 대학이나 연구기관과의 연계성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국내 반도체 산업은 장비의 경우 약 80%, 소재는 50% 정도를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와 학계는 클러스터를 조성해 연구개발(R&D)을 강화함으로써 국내 장비·부품 업체의 경쟁력을 전반적으로 함께 끌어올리는 숙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본다. 이종호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은 “소재·부품 업체가 동반되지 않는 반도체 클러스터는 의미가 없다”며 “반도체 클러스터가 경쟁력이 떨어지는 곳에 들어설 경우 협력업체가 따라가지 못해 결국 실패를 맛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국내 반도체 업체 입주 지역

국내 반도체 업체 입주 지역

그래서 지자체의 반도체 클러스터 유치 경쟁이 본격화하자 반도체 장비나 소재 업체들은 벌써부터 걱정이다. 익명을 요구한 반도체 장비업체 사장은 “우리는 용인에 공장이 있는데 클러스터 입지가 멀리 결정될 경우 기존 공장과의 효율이 떨어져 참여할 생각이 없다”며 “다른 부품업체도 반도체 공장이 생긴다고 인프라가 전혀 없는 곳에 무조건 따라가겠다는 곳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소재업체 관계자도 “만약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클러스터가 조성되면 삼성이나 SK 같은 대기업도 인력 구하기가 쉽지 않은데 우리 같은 중소업체가 인력을 뽑는 건 아예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12월 경기도 이천 사업장에 5만3000㎡ 규모로 반도체 생산공장 ‘M16’을 착공 했다. M16은 SK하이닉스가 현재 보유한 부지에 세울 수 있는 마지막 공장이다. [중앙포토]

SK하이닉스는 지난해 12월 경기도 이천 사업장에 5만3000㎡ 규모로 반도체 생산공장 ‘M16’을 착공 했다. M16은 SK하이닉스가 현재 보유한 부지에 세울 수 있는 마지막 공장이다. [중앙포토]

현재 삼성전자는 경기도 평택·기흥·화성, 미국 오스틴, 중국 시안(西安) 등에 반도체 공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 반도체의 핵심 두뇌 역할을 하며 연구인력 2만3000여 명이 근무하는 반도체 연구소는 경기도 화성에 있다. 화성은 2000년 초부터 조성되기 시작해 50만여 명이 거주하는 동탄이 주생활권이다. 경기도 이천, 충북 청주, 중국 우시(無錫)·충칭(重慶) 등 4곳에 공장을 갖고 있는 SK하이닉스 역시 머리 역할을 하는 핵심 연구소는 경기도 이천과 분당에 위치시켜 놓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석·박사급 연구인력이 필요한 반도체는 물론 소프트웨어 일터의 마지노선은 판교·분당·동탄까지”라며 “서울 생활권을 벗어나는 순간 글로벌 경쟁력을 갖는 고급 연구인력을 구하기가 어려운 게 엄연한 현실”이라고 말했다.
 
정부 역시 반도체 클러스터 선정 작업에서 업계·전문가의 의견을 반영한 입지선정 기준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반도체의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고 ▶전문 인력 확보와 유지가 가능하며 ▶기존 반도체 산업과의 연계성이 높고 ▶협력업체와의 상생을 추진할 수 있는 지역을 고르겠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정부가 또 하나 고심하는 것이 지역 균형발전이다. 하지만 반도체 업계가 주장하는 네 가지 조건과 지역 균형발전이 상충하는 면이 있어 최종 입지 선정 작업까지는 난항이 예상된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반도체는 현재 수출을 주도하는 국가의 기둥산업”이라며 “다른 가치보다 경쟁력 강화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종호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은 “반도체는 순식간에 경쟁력을 잃을 수 있는 기술 전쟁 산업”이라며 “균형발전은 필요하지만 굳이 반도체를 갖고 추진해야 하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장정훈 기자 cc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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