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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한국의 정책을 믿지 마세요”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논설위원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논설위원

“정부의 정책적 노력의 결과로 지난해 신설 법인 수가 사상 최대를 기록하는 등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말이다. 7일 벤처 기업 대표들과의 간담회에서다. 듣고 있던 벤처 기업인이 하나둘 에둘러 반박했다. “유니콘 기업 탄생이 어려운 건 정책의 불확실성 때문이다.” “정부 지원책이 나올 때마다 시장이 왜곡될까 우려된다.” “투자자에게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규제가 많다.”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정도를 넘어 ‘제발 현실을 제대로 인식해달라’는 하소연에 가깝다.
 
이에 대한 문 대통령의 답변은 이랬다. “한국에 대한 불확실성은 한반도 리스크인데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으니 자신 있게 기업활동을 해달라.” 경제 현실과 규제, 정책의 불확실성을 얘기하는 데 느닷없이 한반도 평화론을 꺼낸 셈이다.
 
지난해 세계경제포럼(WEF)은 국가별 경쟁력을 항목별로 평가했다. 이 가운데 ‘사업을 하는 데 가장 문제 되는 요소’를 평가한 자료를 보면 한국의 정책 리스크가 얼마나 심각한지 부끄러울 정도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한국의 정책을 믿지 마세요.”
 
16개 요소 가운데 한국은 유독 정책 불안정(policy instability)이 가장 큰 문제로 꼽혔다. 20점 만점(점수가 높을수록 안 좋음)에 무려 15.5점이었다. 독일은 4.8점, 일본 6.2점, 미국 5.3점에 불과했다. 전 세계 기업가와 경제·경영학자에게 제공돼 참고자료로 쓰인다지만, 세계 10위권의 경제규모를 자랑하는 한국으로선 치욕이다.
 
이게 다가 아니다. WEF는 비효율적인 정부의 관료주의에도 12.1점, 비효율적 혁신 능력에 9.8점을 줬다. ‘한국 정부는 관료적이다. 효율성을 기대하지 말라. 혁신 능력도 만족스럽지 못하니 설득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다. 이쯤 되면 한국 정부의 정책은 물론 공무원까지 총체적으로 엉망이라는 평가를 내린 셈이다.
 
다른 나라는 대부분 세율이나 세금 규제를 어려움으로 꼽았다. 한국만 ‘이상한 나라의 기업환경’을 가진 꼴이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렇게 진단했다. “한국 시장에서 정책 불안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세 가지다. 정권 교체나 국회 의석 변화에 따라 시장 규율과 노동정책이 완전히 바뀌는 단절현장이 나타난다. 행정과 입법 간에 충돌이 잦고, 변화를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지체된다. 이 때문에 노동시장이나 노사관계가 사법적 판단으로 해결된다. 이게 시장 혼란을 부추기고, 법원이 노사관계 쟁점의 해결사가 됐다. 이로 인한 불확실성의 비용은 고스란히 시장으로 환원된다.”
 
정부 정책과 법이 이랬다저랬다 갈피를 잡을 수 없다는 말이다. 이 말 들었다가 나중에 철퇴 맞고, 좀 앞서가면 박수는커녕 손가락질받는 상황에 부닥칠 수 있다. 산업현장에서 자율이란 단어는 소멸 절차를 밟고 있는 듯하다. 툭하면 법원으로 달려가니 말이다. 여기에다 적폐라는 단어가 등장해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쳐내는 데 이보다 일가견을 보인 개념은 없다. 공직자라고 이런 상황에서 일을 하겠는가. 이리 빼고, 저리 빼는 관료주의의 확산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인지 모른다. 이게 시장을 좀 먹고, 기업 하기 힘든 나라로 만든다.
 
이러니 노동시장 효율성은 73위, 고용관계 수준은 130위라는 성적표가 나올 수밖에 없다. 범죄(0점), 부족한 공중보건(0.1점), 인플레이션(1.3점)부문에서 안정적인 국가로 분류되고, 부적절한 교육을 받은 노동력(3.9점)이 거의 없다는 평가를 받아도 소용이 없다.
 
질 좋은 노동력 같은 훌륭한 재료가 있으면 뭐하나. 나오는 레시피마다 이념형 실험용이니 맛에 대한 기대는 애당초 접어야 할 판이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같은 레시피로 조리한 걸 먹고 곳곳에서 탈이 난다. 그런데도 건강·맛과는 상관없는 고무줄처럼 질긴 요리법만 나온다. ‘바꿔 달라’는 항변엔 ‘그게 옳다’는 강변만 돌아온다. 수 만부의 레시피 홍보물을 ‘경제 팩트 체크’라는 이름으로 전국에 배포하는 두둑한 베짱을 과시한다. 그 사이 음식을 먹은 고용시장의 내부 장기가 곪아가고 있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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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