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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강수의 시선] 법정구속 전성시대의 판결문 제대로 읽기

조강수 논설위원

조강수 논설위원

서초동 법조타운에 ‘법정구속 전성시대(全盛時代)’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전직 검찰국장, 현직 경남지사, 전 충남지사가 선고 공판에서 ‘어어~’ 하다가 유죄 판결과 함께 ‘악~’하고 줄줄이 수감되면서다. 법정의 판사들이 징역형을 선고한 이유는 똑같다. “권세와 지위를 이용해 나쁜 짓을 하고도 거짓말과 부인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거였다. 이들 중에는 깔끔한 양복을 차려입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선고 법정에 섰다가 느닷없이 죄수복을 입으라는 판사의 호통에 귀까지 빨개진 피고인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잇단 법정구속을 “판사의 역습”으로 몰아가는 시각은 성급하다. 더구나 성범죄와 관련된 안태근·안희정에 대한 판결에는 침묵하면서, 유독 선거와 관련된 김경수 판결에 대해 판결문이 나오기도 전 “적폐판사의 보복재판”이라는 아전인수식 프레임을 설정해 놓고 “판사 탄핵”을 공개적으로 주창하는 일부 정치인들의 행태는 눈쌀을 지푸리게 한다. 이런 과격 정치인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게 판결문 정독이다. 형사 판결문에는 범죄 사실과 피고인·검찰 주장, 재판부의 판단이 그대로 적혀 있다. 판결문을 읽고도 납득이 안되면 법률에 보장된 ‘삼세판 룰’에 따라 절차를 밟되 결과에는 승복해야 한다. 법정구속 판결문을 일독해보니 하나같이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했다.
 
①사랑한다면 미안하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안희정 2심 유죄 판결문의 요체는 영화 ‘러브 스토리’의 명대사로 압축된다. 대법원 공보관 출신의 홍동기 재판장은 직장 상사(충남지사)에 의한 피감독자(별정직 6급 수행비서) 간음 사건에서 “위력이란 유형이든, 무형이든 상관없이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세력을 말하고 그 행사는 폭행·협박뿐 아니라 사회적·경제적·정치적 지위나 권세를 ‘이용’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앞서 1심 재판부가 “위력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유형력으로 행사’돼야 한다”고 전제했던 것과 크게 다르다. 이를 근거로 재판부는 공적 관계인 두 사람이 사적 관계, 즉 연인관계로 발전했느냐를 세밀히 살폈다. 하지만 피고인은 네 번의 간음 후 한번도 빼놓지 않고 피해자에게 “미안하다. 괜찮니?”라고 얘기한 것으로 나온다. 사랑이 아니라 본의 아니게 잘못했다는 의미다. 다음은 선고 당일 홍 재판장과의 문답.
 
[일러스트=박용석 parkys@joongang.co.kr]

[일러스트=박용석 parkys@joongang.co.kr]

그동안 고민이 많았겠다.
“사적인 감정은 없었다. 우리가 성폭력전담재판부다. 그동안 맡은 성폭력 사건 중에서 이번처럼 피고인이 지위가 높고 지속적으로 범행이 이뤄진 게 없다. 오죽하면 증인신청 다 받아주고 끝까지 들어봤겠나. 심리 결과 전담재판부가 해온 선례에 따르자면 유죄 선고밖에 없었다.”
 
뭘 주목했나.
“우리는 미래권력이었던 그에게 수행비서가 숨겨놓은 애인인지를 봤다. 직장상사와 부하직원이 (주체적으로) 사귈수도 있고 사랑할 수도 있지 않나. 그런 게 없었다. 피고인은 특히 ‘합의에 의한 성관계’라고 주장했다가 번복해 진술을 믿기 어려웠다.”
 
②네 이웃의 ‘킹크랩’을 탐하지 말라=킹크랩(KingCrab)은 ‘드루킹’ 김동원씨 등이 자체 개발한 ‘댓글 순위 조작 시스템’이다. 김경수 판결문에는 2016년 11월 9일 김 지사가 드루킹이 운영하는 파주의 경공모(경제적공진화모임) 사무실에 찾아가 ▶킹크랩 필요성에 대한 브리핑을 받고 ▶댓글 순위 조작 작업 시연을 봤으며 ▶‘킹크랩<극비>’라고 적힌 온라인 정보보고를 받았다는 증거와 진술들이 빼곡히 적시돼 있다. 김 지사는 그러나 킹크랩 순위 조작 범행은 전혀 알지 못했고 시연회에도 참석하지 않았다며 일관되게 부인했다.
 
③검사 장례식장에서의 악몽=안태근 판결문에는 피고인이 성추행 의혹 사건을 덮고 서지현 검사의 사직을 유도하기 위해 보복 인사를 지시했다는 혐의(직권남용)에 대한 판단이 나온다. 2015년 8차례나 서 검사의 인사 명령지가 바뀌다가 막판에 통영지청으로 부당 전보됐는데 검찰국장이던 안 피고인의 지시에 따라 불공정한 인사가 자행된 것이라고 적시했다. 2010년 10월 30일 한 여검사의 부친상에서 자신이 만취한 채 성추행을 했다는 소문이 돌았음을 사전에 알고 저지른 일이라는 거였다.
 
안희정 2심 판결 선고 후 제일 궁금한 건 1심 재판장의 반응이었다. 전화를 걸어 ‘판결이 완전히 뒤집혔는데 심경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구정 연휴 지내느라 항소심 판결문을 아직 못 봤다”고 담담하게 답했다. 그는 “1심에서 최선을 다해 선고를 했다. 2심에선 증거 사용이나 주장이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3심제가 있는 것이다. 대법원까지 지켜보자”라고 덧붙였다. 우문에 현답인지라 도리어 머쓱했다. 책임있는 정치인들부터 있는 그대로를 직시해야 한다. 판결이 나올 때마다 둘로 갈리는 이분법적 구도를 깨지는 못할 망정 기름을 부어서야 되겠는가. 승복하지 않을 거라면 전원 일반국민으로 재판부가 구성되는 완전 참심제로 사법 제도를 바꾸는게 차라리 낫다. 
 
조강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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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