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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OUT]자본 20억 맞춰라, 인력·서버 갖춰라…끝없는 ‘규제 허들’

[2019 연중 기획] 규제 OUT 
# “금융감독원장 상에 주식회사 모인!” 2016년 9월 21일 서울 강남 코엑스 창업경진대회 시상식. 서일석 모인 대표는 사회자의 발표에 무대 위로 뛰어 올라갔다. 이날 대회에서 서 대표는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해외로 송금하는 아이디어를 선보였다. 7개월간 기술 개발에 매달린 시간을 금상에 해당하는 금감원장 상으로 보상받았다.
 
# 2년4개월 뒤인 지난달 17일. 서일석 대표는 정부 과천청사에 있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업무 시간이 시작되기도 전에 도착했다.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규제 샌드박스’ 신청 첫날인 이날, 서 대표는 ‘블록체인 기반 해외송금업’을 규제 샌드박스에 포함시켜줄 것을 신청했다. 온라인 서류 접수는 이미 전날 자정, 신청 사이트가 문을 열자마자 1호로 접수했다.
 
서일석 대표가 지난달 31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모인’ 사무실에서 창업 과정을 털어놓고 있다. [김경록 기자]

서일석 대표가 지난달 31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모인’ 사무실에서 창업 과정을 털어놓고 있다. [김경록 기자]

금감원장 상을 받을 정도로 촉망 받던 비즈니스 아이템은 어쩌다 규제 샌드박스 채택을 기다리는 처지가 됐을까. 지난달 31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R&D 캠퍼스 내 모인 사무실에서 만난 서 대표는 “2017년 1월 안드로이드용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만들 때만 해도 성공을 확신했다”고 회고했다. 벤처캐피털 회사 출신인 그는 핀테크 분야에 유독 규제가 많은 걸 알고 있었다. 그는 “송금업에 관한 규정을 하나하나 검토하며 정부에 묻고 또 물었다. ‘진행해도 된다’는 답변을 듣고 사업에 본격 뛰어들었다”고 했다.
 
사업은 불과 반년도 지나지 않아 ‘정부발(發) 위기’를 맞았다. 그해 중반 암호화폐 광풍이 불자 청와대와 정부 부처에서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부정적 언급이 나오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돌변했다. 그즈음 정부는 갑자기 ‘해외송금업 면허(라이선스)’ 규정을 새로 만들겠다는 발표를 했다. 라이선스 없는 영업은 불법으로 몰리기 십상이었다. 그해 7월 정부는 라이선스 세부 요건을 확정해 발표했다. 사업 허가를 받으려니 자본금 규정부터가 큰 벽이었다. 송금업을 하려면 10억원, 환전업을 겸하려면 20억원의 자본을 확보해야 했다. 서 대표는 “스타트업 중에 10억~20억원이라는 큰돈을 쥐고 사업에 뛰어드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싱가포르에서는 같은 사업 모델의 자본금 요건이 1억원”이라고 설명했다. 자본금 마련만으로도 한국은 싱가포르에 비해 스무 배쯤 창업이 어려운 셈이다.
 
투자자를 모아 겨우 자본금 요건을 맞추자 이번엔 인력 규정이라는 장벽에 맞닥뜨렸다. 금융업을 하려면 ‘전산인력 5인 이상 고용’ 규정을 맞춰야 했다. 외국환 전산인력 2명도 별도로 둬야 했다. 서 대표는 “스타트업이라도 실력 있는 분을 모시려면 급여를 너무 낮출 수 없다”며 “전문인력 7명을 구하는 것만 해도 하늘의 별따기인데, 이익이 생길 때까지 들어갈 인건비를 미리 마련하는 것은 엄청난 부담이었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인력 요건까지 맞추자 이번엔 전산설비 요건이 또 다른 장애물이 됐다. 그간 모인은 아마존웹서비스(AWS)에 자체 개발한 송금 서버를 뒀다. 그러나 국내 규정은 금융 사업자는 클라우드를 서버로 쓸 수 없고, 반드시 물리적 서버를 갖추도록 요구했다. 모인 직원들은 이미 개발한 서버를 물리적 저장 공간에 담을 수 있도록 데이터 구조를 바꾸는 작업을 새로 해야 했다.
 
그는 “그나마 이 정도 규정이 나온 건 핀테크산업협회와 함께 공무원들을 찾아다니며 송금업을 이해시키려 발품을 판 덕”이라고 했다. 그는 “규정이 나오기까지 세종시의 기획재정부, 여의도 금감원, 광화문의 금융위원회를 다니느라 교통비만 한 달에 백만원 넘게 쓴 적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스타트업은 시간과의 싸움인데 공무원들을 만나기 위해 길에서 버리는 시간이 교통비보다 더 아까웠다”고 덧붙였다. 공무원과의 미팅은 그나마 핀테크산업협회가 나서는 경우에만 겨우 성사됐다.
 
8개월에 걸쳐 라이선스 요건을 다 갖췄지만 정작 사업 유형에서 블록체인 기술은 막판에 제외했다. 블록체인 기술에 의구심을 갖는 정부 분위기가 바뀌지 않아 다른 송금 기술들로만 허가를 받았다. 정부가 상을 준 아이디어는 정작 제외된 셈이다.
 
2016년 열린 창업경진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한 ‘모인’의 서일석 대표(오른쪽). [사진 모인]

2016년 열린 창업경진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한 ‘모인’의 서일석 대표(오른쪽). [사진 모인]

해외 송금에는 여러 방식이 있다. 미국·일본 등 해외 현지에 있는 모인의 계좌나 파트너사 계좌로 미리 거액을 보내놓고 송금 요청을 처리하는 ‘프리펀딩’ 방식, 현지에서 보내오는 돈과 한국에서 보내려는 돈을 상계시키는 ‘트랜스퍼와이즈’ 방식 등이 있다. 모인은 이들 두 방식을 중심으로 사업 허가를 받은 뒤 송금업을 해 왔다.
 
블록체인을 이용한 송금도 원리는 복잡하지 않다. 각 나라의 핀테크 사업자들이 참여해 ‘송금 네트워크’를 꾸리고 고객의 송금 요청을 이 네트워크 상에서 암호화폐로 주고 받는 것이다. 한국의 A가 모인을 통해 미국의 B에게 송금을 요청하면 A와 B는 현금을 보내고 받지만 그 과정은 네트워크상에서 핀테크 업체끼리 암호화폐로 주고 받는 원리다. 서 대표는 “해외에서 점차 활용도가 높아지는 블록체인 활용 송금 기술을 국내에서도 확보해 둬야 이 방식이 확산할 경우 소외되지 않을 것”이라며 “이번 규제 샌드박스 신청은 새 송금 방식 확보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블록체인 기술을 빼놓고 천신만고 끝에 창업하고 나서 보니 스타트업에는 ‘사업 폭 규제’도 심했다. 기존 은행과 똑같이 자금세탁 방지법, 고객 확인 규정 등을 모두 적용받는데도 송금 가능 액수는 크게 차이가 났다. 은행 송금은 액수 상한이 없지만 해외 송금업자는 연 3만 달러, 한 번엔 3000달러 이상을 보낼 수 없다. 송금액에 비례한 수수료를 주수입원으로 삼는 업체들을 옥죄는 룰이다.
 
정부가 모인의 규제 샌드박스 신청을 허가할 경우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 송금업이 국내에 본격 등장한다. 서 대표는 “법은 과거, 기술은 미래인데 그 간극을 메우는 제도가 규제 샌드박스”라며 “지금이라도 제도를 마련해 준 정부에 감사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행법 저촉의 프레임만으로 신산업을 보면 아무런 도전도 할 수 없는 나라가 되고, 내수 시장에 기반한 회사만 살아남는 반쪽 경제가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3년간의 험한 창업 과정을 거친 서 대표의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에는 ‘섶에 누워 쓸개를 핥다’라고 적혀 있었다. 와신상담(臥薪嘗膽)을 풀어쓴 말이다. 그는 지금 괴로움을 참고 견디는 중이다.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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