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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희에 5개월 바람맞았던 비건, 평양 가선 존재감 과시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지난 주말 평양 방문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일거에 끌어올렸다.  
 
북한이 비건 대표의 비중을 인정했다. 미국 국무부의 9일 발표에 따르면 북한은 비건의 카운터파트인 김혁철 전 스페인 주재 대사에게 ‘국무위원회 대미 특별대표’라는 직함을 새롭게 부여한 게 확인됐다. 비건 특별대표(Special Representative)의 격에 맞게 김혁철에게도 특별대표라는 모자를 씌워준 것이다. 북한이 비건 대표를 백악관의 전권을 받은 협상 상대로 간주했다는 의미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10일 기자들에게 “비건 대표가 북한에서 환대를 받았다고 한다”고도 말했다. 비건 대표는 9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만난 뒤 청와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도 만났다.
 
이는 지난해까지와는 전혀 다르다. 비건 대표는 지난해 8월 임명된 후 지난달 20~22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진행된 남·북·미 3자 실무회담 직전까지 5개월간 ‘협상 테이블에 한 번도 앉지 못한 협상 대표’로 지내야 했다. 당시 그의 카운터파트였던 최선희 외무성 부상(차관급)이 요리조리 피하면서다. 비건 대표는 지난해 10월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함께 방북하며 최선희와의 상견례가 예상됐지만 최선희는 이때 느닷없이 중국·러시아 방문 일정을 잡으며 평양을 벗어났다. 외교가에선 비핵화 실무 협상을 늦추고 대신 톱다운 담판을 원했던 북한이 최선희와 비건의 만남을 일부러 회피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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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비건 대표가 이 5개월을 허송세월한 건 아니다. 비건 대표는 이 기간에 한국의 당국자 및 오피니언 리더들, 여야 의원들, 싱크탱크 인사들을 비공개로 만났다. 특히 첫 만남에 한반도 지도를 들고 와 하나하나 북한 지명과 관련 정보를 입력하기를 반복하는 ‘지도광’ 비건의 모습은 당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고 한다. 지도를 꺼내는 비건 대표를 봤던 한 싱크탱크 전문가는 “이 사람이면 뭔가 대북 협상에서 기대를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비건 대표는 처음엔 주로 상대방의 의견을 들었지만 여러 번 만날수록 자신의 해법을 찾고 의견을 적극 개진했다”고도 전했다.
 
1963년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난 비건 대표는 자동차 업체인 포드의 부회장 출신이지만 외교안보 분야에서 내공을 쌓았던 인사다.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가 부통령 후보였던 때는 그의 외교안보 과외교사 역할도 했다.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의 오른팔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사무국장으로도 일했다. NSC 사무국장은 미국의 외교안보 당면 현안에 대한 정보를 총망라하는 요직이다. 라이스 전 장관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을 경질했을 때 그 후임으로 비건 대표를 추천하기도 했다.  
 
익명을 요청한 미국의 안보 전문가는 “북한 비핵화 문제에 기업가다운 창의적 해결책을 갖고 있다”며 “그에 대해 이젠 다들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외교부의 고위 당국자도 “스티븐 비건을 확고히 신뢰한다”고 말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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