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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승욱의 나우 인 재팬] 소통 절벽 한·일관계, 이낙연·스가 넘버2가 돌파구 열까

스가 요시히데(菅義偉)관방장관은 2012년 말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재집권한 직후 임명돼 현재까지 만 6년 넘게 재직 중이다. 사진은 지난 2012년 12월 선거운동 당시 아베 총리가 한 선거운동원의 코트에 짧은 글을 남기는 모습. 스가 장관이 옆에서 옷감을 평평하게 잡아주고 있다. [사진 아베 총리 페이스북]

스가 요시히데(菅義偉)관방장관은 2012년 말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재집권한 직후 임명돼 현재까지 만 6년 넘게 재직 중이다. 사진은 지난 2012년 12월 선거운동 당시 아베 총리가 한 선거운동원의 코트에 짧은 글을 남기는 모습. 스가 장관이 옆에서 옷감을 평평하게 잡아주고 있다. [사진 아베 총리 페이스북]

# 이명박(MB) 정권때는 한·일 관계가 막힐 때마다 이상득-센고쿠 라인이 가동됐다. 이상득은 현직 대통령의 친형이자 한·일의원연맹 회장, 센코쿠 요시토(仙谷由人)는 민주당 정권에서 관방장관·법무상 등 요직을 지낸 지한파다. 조선 왕실 의궤 반환 협상이 난관에 처했을 때도 두 사람이 활로를 모색했다. 센고쿠는 당일치기로 서울을 찾기도 했고, 이 전 의원도 수시로 도쿄를 찾았다. 도쿄의 일본 소식통은 “시간을 아끼기 위해 김포와 하네다 공항 VIP룸에서 자주 머리를 맞댔고,이 번개 회동에서 해법을 만들곤 했다”고 했다.
 
# 박근혜 정권 초기에 취임한 이병기 주일대사는 아베와의 핫라인을 뚫는 게 목표였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복심이자 넘버 2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관방장관이 타깃이었다. 만나는 일본인마다 “누가 스가 장관과 친하냐”를 묻고 다녔다. 이 전 대사는 스가 장관과 가장 가깝다는 언론사 논설위원, 또다른 지한파 인사까지 낀 비공식적인 만찬을 대사관저에서 열었다. 이후 이병기와 스가는 한 달에 한 번 이상 깊숙한 얘기를 나누는 사이가 됐다. 이 전 대사가 서울로 돌아갈 때 스가 장관은 회견에서 “1년 동안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해 대단한 힘을 기울였다”고 평가했다.
 
‘전후 최악’이라는 한·일 관계가 개선될 기미가 없다.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일본이 반발했다면 일본 초계기의 저공비행과 이른바 레이더 조준 비난은 한국 여론에 불을 질렀다. 문제를 이를 뚫을 외교 채널이 안 보인다는 점이다. 한국에선 청와대, 일본에선 총리관저의 지침이 톱다운 방식으로 관철되는 ‘권부 절대 우위’ 구조에서 양측을 잇는 파이프조차 찾기 어렵다.
 
북한 문제를 고리로 가동됐던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국가안전보장국장 라인도 단절됐다. 지난해 9월엔 서훈 국정원장이 도쿄에서 기타무라 시게루(北村滋) 내각 정보관과 만났지만, 은밀하게 비공식적으로 이뤄지는 정보기관 수장들의 만남은 한계가 있다. 일본 외무성 간부는 “정의용-야치 라인은 역할을 못하고 있고, 서훈-기타무라 간 교류는 북한 문제로 제한돼 있다”고 말했다.
 
대화가 끊기니 감정의 골은 더 깊어진다. 일본 정부 내에선 이수훈 주일한국대사가 주된 타깃이다.
 
“작년 10월 도쿄에서 위안부 재단을 주제로 양국 외교 차관 회담이 열렸을 때 이 대사는 시즈오카현 대학 강연을 이유로 도쿄를 비웠다”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전 총리까지 참석하는 리셉션에도 가장 늦게 나타난다”며 일본 일각에서 불만을 드러냈다고 한다. 이 대사가 취임 15개월 만인 지난달 스가 장관과 처음으로 오찬을 한 것을 두고도 “지금까지는 도대체 뭘 한 거냐”는 주장이 나온다.
 
스가 요시히데. [AFP=연합뉴스]

스가 요시히데. [AFP=연합뉴스]

아베 외교는 ‘톱 다운’ 외교의 전형이다. 아베와 트럼프, 아베와 시진핑, 아베와 푸틴 간 1대1 승부로 모든 게 결판난다. 외무성이 아닌 관저가 주도하는 외교다. 그런데 관저는 한·일 관계에 대해 자포자기적 상황이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일본내 최고의 외교 전문가로 꼽히는 한 전직 언론인은 중앙일보에 “야치 국장과 가네하라 노부카츠(兼原信克)관방부장관보(국가안전보장국 부국장 겸임,주한일본대사관 공사 출신) 등 관저의 두 외교 사령탑이 한국과의 관계 개선엔 손을 놓아 버렸다”고 말했다.
 
그는 “총리관저에서 양국 관계 개선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미련을 갖고 있는 사람은 지난달 ‘일본 정부 내의 정확한 기류를 알려주고 싶다’며 이수훈 대사를 만난 스가 관방장관뿐”이라고 했다.
 
“징용 재판은 폭거”라고 거친 말을 쏟아내던 고노 다로(河野太郎) 외상에게 화를 내며 뜯어 말린 사람도 스가였다고 한다. 한국에 대해 늘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아베 총리를 제어하는 일도 그의 몫이다. 과거 국회에서 “각료들의 야스쿠니 참배가 뭐가 문제냐. 그 어떤(한국 등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는다”며 흥분했던 아베에게 스가 장관이 따끔하게 주의를 준 에피소드도 있다.
 
한국에서 보면 일본 정계가 한통속으로 보일지 몰라도, 아베 내각에서 6년 넘게 관방장관 자리를 지키는 스가는 일본 정치의 이단아다. ‘세습 정치인’이 즐비한 권력 핵심부에서 그는 몇 안되는 자수성가형이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낙후지역인 동북부 아키타(秋田)의 딸기 농가 출신으로 농사 짓기가 싫어 고교 졸업후 무조건 상경했다. 쓰키지(築地) 어시장 짐꾼, 경비원, 신문사 심부름 직원, 카레 식당 주방 보조 등의 아르바이트로 호세이(法政)대 법학부를 졸업했다. 국회의원 비서관과 지방의회 의원을 거쳐 국회에 입성했다. 관방장관으로 있으면서도 오전 7시~8시, 정오~오후 1시, 저녁 7시~8시30분, 밤 8시30분~10시 등 하루 4번 사람들을 만난다. 지난달 16일 이 대사와의 오찬도 그렇게 성사됐다. 그 오찬에서 스가 장관은 경직된 양국 관계의 현실에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일본 정부 고위 관계자는 “징용 판결에 대해 자민당에선 ‘한국인 비자면제 폐지’ ‘보복 관세’주장이 나오지만 관저가 의외로 차분한 건 스가 장관 때문”이라고 전했다.
 
매파가 가득한 일본에서 스가가 마지막 비둘기파라면 한국에선 이낙연 총리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신문사 도쿄특파원 출신인 그는 지난달 “일본은 과거 앞에 겸허하고, 한국은 미래 앞에 겸허해야 한다”고 했다. 드러나지는 않지만 틈이 날때마다 일본에 대한 신중한 대응을 청와대에 건의한다.
 
문제는 양국의 ‘넘버 2’ 두 사람이 이같은 행보를 ‘로 키’(low key·낮게 억제)로 해야할 정도로 예민한 상황이라는 점이다. 한국의 국민 감정은 이미 상할 대로 상해 있다. “정부 대변인 스가의 역할엔 한계가 있다” “이 총리도 결국 청와대와 국민여론의 대세를 따를 것”이란 회의론 속에서 이들이 돌파구를 만들어 낼 지 주목된다.
 
서승욱 도쿄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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