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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따라잡기]르펜부터 바이델까지 유럽 정치판 흔드는 극우 여전사들

“지고도 웃었다.”
지난 2017년 프랑스 대선 결선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에 끝내 승리를 내주고도 마린 르펜(51ㆍ여)은 이런 평가를 받았다. 르펜은 프랑스의 극우 정당인 국민연합을 이끄는 당수다. 고배를 마시긴 했지만 1972년 창당 이래 최고 득표를 획득하며 향후 극우 정당의 집권 가능성을 대폭 끌어올렸다. 당권을 잡은 후로 반유대적이고 인종차별적이라는 당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주력함으로써 소수정당에 불과하던 국민연합을 대중정당 반열에 올린 주역으로 평가된다. 
마린 르펜 프랑스 극우 정당 국민연합 당수. [뉴욕타임스 캡처]

마린 르펜 프랑스 극우 정당 국민연합 당수. [뉴욕타임스 캡처]

최근 영국 가디언 등에 따르면 유럽 상당수 국가에서 르펜처럼 극우 여전사들이 존재감을 과시하며 정계를 흔들고 있다. 극우 정당들이 이미지 쇄신의 일환으로 여성 지도자를 간판으로 내세웠고 실제 기성 정당 못잖게 세를 키우고 있다는 분석이다. 가디언은 “지난 20년간 유럽 전역에서 ‘앵그리 화이트 맨(angry white men)’으로 특징되는 남성 주도 하에 우익 포퓰리즘이 득세해왔다”면서 “이젠 앵그리 화이트 우먼 역시 중요하게 떠오르고 있다. 20~50대의 새 여성들이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덴마크, 노르웨이 등 최소 6개국에서 극우 포퓰리즘 정당을 이끌고 있다”고 전했다.
 
악마의 딸, 아버지 등지고 극우색 지우기
 
“르펜은 르펜이고, 마린은 마린이다. 나와 아버지의 역사관은 다르다.” 
기성 정당 후보들을 제치고 대선 결선까지 오르며 파란을 일으킨 르펜 대표는 극우 가문의 정치적 상속자다. 그의 부친은 국민연합의 전신인 국민전선 설립자 장마리 르펜이다. ‘악마’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인종차별적이고 반유대적 발언을 일삼았던 아버지 르펜의 존재는 정치적 자산이자 걸림돌이었다. “모든 면에서 아버지와 의견을 달리한다”며 선을 그었던 르펜은 당권을 이어받은 후 당의 오래된 적대적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힘을 쏟았다. 2015년 명예총재직을 맡고 있던 아버지를 당에서 내쫓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그 자신은 논란이 될 발언은 자제하고 사형제 부활과 동성애 반대 등의 주장을 접으면서 당의 극우적 색채를 빼기 위해 노력했다.   
프랑스 극우 정당 국민연합의 전신인 국민전선 설립자 장마리 르펜(오른쪽)과 그의 딸 마린 르펜. [중앙포토]

프랑스 극우 정당 국민연합의 전신인 국민전선 설립자 장마리 르펜(오른쪽)과 그의 딸 마린 르펜. [중앙포토]

“주류 우파와 비교해 자유분방한 인물”(영국 BBC), “매버릭(maverick·외골수) 아버지와 달리 권력을 목표로 삼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주류 정당으로, 더 정치적으로 존중받을 만한 정당으로 만들고자 노력한다”(로이터통신) 등의 평가가 잇따랐다. 
 
이같은 전략은 주효했다. 마린 르펜 체제 하에서 국민연합은 집권 여당과 비등할 만큼 지지율을 끌어올렸다. 지난해 말 프랑스여론연구소의 여론조사에서도 성인 1000명 가운데 21%가 국민연합을 지지하겠다고 응답해 마크롱 대통령의 중도신당 지지율을 처음 넘어섰다. 반이민ㆍ반유럽 정책을 앞세워 지지 기반을 넓혀갔다. 특히 이민자와 무슬림을 여성에 대한 위협으로 규정하는 전략이 민족주의 부활과 반이민 풍조를 타고 대중의 지지를 샀다. 그는 독일 쾰른에서 2015년 벌어진 난민들의 집단 성범죄 사건을 언급하며 “난민 위기가 여성권 종말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 아닌가 두렵다”고 말하기도 했다. 
 
反동성애 독일 정당은 레즈비언 당수로 세워
독일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 대표 알리체 바이델. [폴리티코 캡처]

독일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 대표 알리체 바이델. [폴리티코 캡처]

르펜에 버금가는 인물로 독일엔 독일을 위한 대안 대표를 맡고 있는 알리체 바이델(40)이 있다. 바이델은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 출신 경제학 박사로서 정치 경력은 일천한 편이다. 특히 스리랑카 출신 영화 프로듀서 여성을 배우자로 두고 두 아들을 키우고 있는 레즈비언이다. 그런 그가 반(反)동성애를 표방하는 당에서 공동 총리 후보로 뽑힌 것은 일대 파란을 불렀다.
 
바이델은 “당은 동성애를 혐오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선출됐다는 건 당이 얼마나 이에 관대한지를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정당 연구가인 독일 마인츠대학의 위르겐 팔터 교수 말을 인용, 이 당이 “(바이델을 통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나쁘지 않고 훨씬 더 자유롭다는 신호를 보내고 싶어한다”고 분석했다. 인종차별 정당, 나치당 등의 비판이 일자 바이델을 전략적으로 중용했다는 설명이다. 바이델은 지난 2017년 극우 정당으로는 처음 제3당 자리를 꿰차며 연방 의회에 입성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했고 공동 원내대표까지 맡았다. 나치 잔재 청산을 최우선 과제로 삼은 독일 사회에서 이 같은 극우 정당의 약진은 역사적 사건으로 회자된다. 
이탈리아 극우 정당 이탈리아형제당 대표를 맡고 있는 조르지아 멜로니. [로이터=연합뉴스]

이탈리아 극우 정당 이탈리아형제당 대표를 맡고 있는 조르지아 멜로니. [로이터=연합뉴스]

이탈리아 극우 정당 이탈리아형제당 리더도 여성이다. 조르지아 멜로니(42ㆍ여) 대표는 이탈리아에서 난민으로 피로감이 높아지고 오랜 경기 침체로 실업률이 치솟는 가운데 ‘이탈리아 우선주의’를 주창하며 당의 입지를 다졌다. 이탈리아가 월드컵축구 결승에 진출하지 못한 건 외국인 선수들이 많아서라고 지적하는가 하면 외국인 자녀에 시민권을 줘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가디언은 멜로니의 “이탈리아 우선주의 레토릭과 반유럽연합(EU) 성향, 또 보통 이탈리아인들의 삶을 개선하겠다는 공약은 좌파에 환멸을 느낀 사람들의 지지를 얻는 데 도움이 됐다”고 썼다. 로마 루이스대학의 베라 카페루치 정치학 교수는 멜로니가 “전형적으로 극우에 속하는 원칙을 반영하면서 공포감을 고조시키는 방식을 써왔다”고 분석한다. 
 
그는 유권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여성과 엄마란 카드를 적극 활용하기도 했다. 한 방송 인터뷰에선 업무량이 많아질 경우 딸과 떨어져 있는 시간이 길어질 거라는 얘기를 하면서 눈물을 보였다.
노르웨이 진보당 대표이자 재무부 장관인 시브 옌센. [AP=연합뉴스]

노르웨이 진보당 대표이자 재무부 장관인 시브 옌센. [AP=연합뉴스]

이밖에 노르웨이 진보당 대표이자 재무부 장관인 시브 옌센(50)과 덴마크 인민당 창건자이자 현 국회의장인 피아 키에르스고르(72)도 여성이다. ‘노르웨이의 대처’를 자처해온 옌센은 2013년 약 40년 만에 처음으로 진보당이 연립 정부 구성에 참여토록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가부장적 극우정당의 ‘현대화’ 전략 일환
 
이처럼 여성이 유럽 극우 정당 대표 자리를 꿰차게 된 것은 여성의 정계 진출이 곳곳서 확대되며 정치적 목소리를 키워 온 점이 일차적 배경이다. 엘코 하트벨트 암스테르담대학 교수는 “일부 국가에서 성별 격차가 줄어들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가부장적 이념으로 지배됐던 극우 정당들이 당을 현대화시키고자 노력한 결과이기도 하다. 가디언은 “유럽의 급진적 우파 정치인들은 정당의 오명과 독소적 이미지가 여성 유권자들의 지지 여부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알고 있고, 그들의 이미지를 현대화하거나 부드럽게 하려고 노력해왔다”고 전한다. 그러면서 자신을 두 차례 이혼한 싱글맘이라고 표현하는 르펜은 당의 낙태 반대 입장을 누그러뜨리고 여성을 육아하는 주부로 보는 전통적 시각에서 벗어나 동성애 유권자들에게도 어필하려 했다고 덧붙였다. 
프랑스 극우 정당 국민연합 당수 마린 르펜. [로이터=연합뉴스]

프랑스 극우 정당 국민연합 당수 마린 르펜. [로이터=연합뉴스]

 
어메리칸 유니버시티의 신시아 밀러 이드리스 교수는 “극우 정당과 극우 운동에서 여성의 참여가 증가한 것은 급진적 우파의 입장 변화에서 기인한 것”이라며 “극우 세력은 전통적으로 동성결혼을 반대하며 기독교적 가치의 일환으로 아내나 주부로서의 여성 역할을 장려해왔지만 새로운 급진 우파 단체들은 서구 민주주의 전통과 가치를 강조하는데 여기엔 여성의 권리 지원 뿐 아니라 넓게는 성소수자(LGBT)에 대한 관용을 포함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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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반난민ㆍ반EU 정서가 확산한 것도 요인이다. “(여성을 리더로 한) 우파 포퓰리즘 정당들은 논란의 여지가 있는 논쟁적 메시지로 여성 유권자들을 겨냥했다. 그것은 이민이 유럽 여성의 자유를 위협하는 잘못된 문화를 가져온다는 메시지”라고 가디언은 분석했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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