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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선물’에 불만인 북한, 영변 핵 폐기할지가 관건

스티브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와 북한 국무위원회 소속 김혁철 전 스페인 대사의 평양 협상이 8일 끝났다. 2박3일에 걸친 밀고 당기기였다. 비건 대표는 이날 오후 6시30분쯤 경기도 오산 미군기지를 통해 돌아왔다. 9일엔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비건 대표 귀환에 맞춰 방한한 가나스기 겐지(金衫憲治)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 등을 잇따라 만나 방북 결과를 공유할 예정이다.
 
오는 27~28일 베트남에서 열릴 2차 북·미 정상회담 공동선언에 어떤 내용이 담길지는 이번 평양 협상과 향후 추가 협상에 달려 있다. 북·미는 지난해 싱가포르 선언 때와는 달리 이번 선언에 보다 구체적인 내용을 담아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 시한을 정해 놓은 일종의 ‘벼랑 끝 협상’ 상황도 변수다. 평양 협상의 윤곽은 비건 대표 귀환 이후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날 전망이다. 지난달 31일 비건 대표의 스탠퍼드대 강연과 평양 방북 전 한국 측과 협의 과정에서 드러난 미국의 입장 등을 토대로 협상 진행 상황을 정리해 본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핵·미사일 생산 중단은=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밝힌 “더 이상 핵무기를 만들지도, 시험하지도, 사용하지도, 전파하지도 않을 것”이란 내용은 선언에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과거 핵 협상 당시 ‘동결(freezing)’과 유사한 개념이다. 김 위원장의 발언에도 불구하고 핵·미사일 생산이 계속 진행 중이라는 미국 조야의 우려를 해소하는 차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겐 일종의 선물이 될 수 있다.
 
미국의 상응조치와 상관없이 김 위원장이 이미 약속한 풍계리 핵실험장과 동창리 미사일 발사대 및 엔진 실험장 폐기와 관련한 전문가 초청·참관도 합의문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이수혁 의원은 “풍계리 핵실험장은 3분의 2 정도 파괴됐고 동창리 발사대와 엔진 실험장은 20~30% 해체된 것으로 파악된다”며 “풍계리 전문가 검증과 동창리 해체 과정 참관이 베트남 공동선언에 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영변 핵시설 폐기는=지난달 방미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 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은 미국의 상응조치가 이뤄질 경우 영변 핵시설을 폐기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고 한다. 영변 핵시설의 핵심은 5㎿ 원자로와 플루토늄 재처리 시설, 8000여 개의 원심분리기를 갖춘 우라늄 농축 시설 등이다.
 
관건은 미국의 상응조치인데 현재까지 알려진 내용만으로는 북한의 성에 차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상응조치의 핵심은 싱가포르 선언 1·2항의 구체적인 진전이다. 1항인 새로운 북·미 관계 수립을 위해선 북·미 연락사무소 개설, 2항인 평화체제 구축과 관련해선 종전선언 채택과 대북 인도적 지원을 위한 미국민의 방북 허용, 북·미 간 문화 및 인적 교류 등이다.
 
이와 관련, 비건 대표는 지난달 스탠퍼드대 강연에서 “북한 경제 개발에 초점을 둔 김 위원장을 지원하기 위해 ‘북한이 어떻게 하면 더 밝은 경제적 미래로 나아갈 것이냐’는 문제를 트럼프 대통령이 추가했다”고 설명했다. 북한 비핵화가 달성될 경우 경제 발전을 지원하겠다는 구두 약속인 셈이다. 한·미 양국도 올 상반기 연합훈련 계획 발표를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로 연기하기로 했다. 정상회담 결과에 따라 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요구한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재연기 또는 축소하는 방식으로 수용할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가장 희망하는 제재 완화에 대해 미국은 여전히 소극적이다. 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밝힌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랜달 슈라이버 미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안보 담당 차관보는 지난 7일 토론회에서 “미국과 동맹국들의 대북 제재 이행은 미국 대통령과 외교관들이 유리한 위치에서 협상하게 해준다”고 밝혔다. 외교 소식통도 “미국은 여전히 상당한 수준의 비핵화가 진전돼 더 이상 뒷걸음치기 힘든 상황까지는 일단 지켜보자는 입장”이라고 소개했다.
 
또 다른 소식통은 “1994년 제네바 합의 이후 북·미는 연락사무소 개설을 놓고 협상했지만 미국 외교관들이 대거 평양에 상주하는 데 북한이 부담감을 느끼면서 유야무야됐다”며 “연락사무소 개설은 종전선언과 마찬가지로 북한엔 매력적인 카드가 아닐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베트남 공동선언에 한·미의 1차 목표인 영변 핵시설 폐기가 담길지는 여전히 미지수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영변 외 +α가능성은=그런 가운데 일각에선 김 위원장이 미국의 대북 제재 완화를 끌어내기 위해 ‘통 큰 양보’를 할 것이란 관측도 만만찮게 제기되고 있다. 비건 대표도 스탠퍼드대 강연에서 “김 위원장은 영변 핵시설 외에 ‘추가로’라는 중요한 단어를 덧붙였다”며 “이는 싱가포르 정상회담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런 핵시설 외에도 할 일이 매우 많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는 “북한이 그동안 열병식에서 공개한 화성-15형 등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나 화성-12형 등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은 전체 미사일 보유고 중 일부일 뿐”이라며 “이를 폐기한 뒤 미국으로 반출하는 깜짝 카드를 쓸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최근 비건 대표를 수차례 면담한 이수혁 의원은 “대북 제재도 완화(easing), 유예(suspend), 해제(lift) 등 단계적 접근이 가능하다”며 “북·미 간 주고받기 협상이 본격화되면 북한의 비핵화 조치 내용에 따라 유엔 안보리 제재로 원유 400만 배럴, 정제유 50만 배럴로 제한된 수입량을 일정 정도 늘려주는 방식의 제재 완화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차세현·이유정 기자 cha.seh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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