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DJ가 제기한 연동형 비례대표제, 이번엔 꼭지를 따자

[김진국이 만난 사람] 심상정 정치개혁특위 위원장
긴 설 연휴가 끝났다. 지난 연말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단식하며 끌어낸 선거법 개정 시한인 1월을 훌쩍 넘겼다. 여야 5당 원내대표가 문희상 국회의장 앞에서 합의문을 내놨지만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아직도 보이지 않는다.
 
지난 연말로 정해진 정치개혁특위 활동 시한은 올 6월까지 연장됐다. 그러나 바쁜 것은 심상정(60) 국회 정치개혁특위 위원장 뿐이다. 시한인 지난 1월 31일 문희상 의장과 5당 원내대표가 만나기로 했지만 무산됐다. 자유한국당이 국회 활동을 중단한 때문이다.
 
이날 회동 결과를 들고 만나기로 한 심 위원장은 지쳐 있었다. 감기 기운에 목이 잠겼다. 하루 전 보궐선거가 치러지는 창원시 성산구를 다녀왔다. 고(故) 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지역구다. 정의당 내에서 노회찬 의원은 정치개혁, 심 위원장은 민생경제로 역할 분담을 했었다. 노 의원이 떠나면서 심 위원장이 정치개혁을 맡았다. 그의 의원회관 집무실 한쪽에는 선거 연령을 18세로 낮춰 달라고 요구하는 고등학생들의 교복 명찰이 수북이 담긴 투명 플라스틱 상자가 놓여 있다.
 
 
다당제하에서 연정 제도화하는 조치 시급
 
심상정 위원장은 ’현재의 소모적 대결 정치 구도에서는 어떤 정권도 성과를 내기 어렵다“면서 ’큰 틀의 연정을 통해 안정적인 합의를 바탕으로 제대로 변화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변선구 기자]

심상정 위원장은 ’현재의 소모적 대결 정치 구도에서는 어떤 정권도 성과를 내기 어렵다“면서 ’큰 틀의 연정을 통해 안정적인 합의를 바탕으로 제대로 변화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변선구 기자]

“1월 안에 선거법을 개정하기로 국민과 약속한 것이니 책임 당사자들의 입장 표명도 있어야죠. 한국당이 협상의 링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중요합니다. 선거제도는 룰에 관한 것이니까 합의를 끌어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고, 끝내 안 하려고 할 때의 대책도 필요하죠.”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왜 필요한가요.
“어떤 제도가 절대적으로 옳다면 전 세계 나라가 다 한 가지 제도를 선택했겠죠.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비례성, 투표하는 민심이 그대로 의석수에 반영되는 선거제도입니다. 또 우리 사회가 아주 다양해지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대표성도 보완되어야 합니다. 기존의 소선거구제 틀을 존중하면서도 비례성, 대표성을 강화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안이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올해 처음 이야기한 것이 아니고, 그동안 논의해 온 성과 위에서 이번에 ‘꼭지를 따 보자’ 하는 것입니다.”
 
정의당에 유리하다고 그러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 억장이 무너집니다. 제가 정치를 한 게 20년인데, 그동안 소수 정당이 그렇게 불비례성이 높은 선거제도를 감수해 왔어요. 또 진보정당이 들어오기 전 양당체제 아래에서 주류정당이 선거제도 개혁을 제기해 온 것이거든요. 민주당의 김대중·노무현·문재인 대통령이 주도하고, 제기해 온 것이죠. 우리 선거제도의 가장 큰 문제인 지역주의 해소 차원에서도 거대정당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봅니다.”
 
대통령제와 다당제가 맞지 않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영국은 내각책임제지만 소선거구제고, 브라질은 대통령 중심제지만 비례대표제입니다. 더군다나 우리 헌법은 내각책임제 요소가 상당히 많잖아요. 무엇보다 지금 우리 정치에서 개선돼야 할 것이 무엇이냐. 소모적인 대결 정치, 제왕적 대통령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온건 다당제하에서 연정을 제도화하는 그런 정치가 매우 시급하고 중요하다, 그렇게 보고요. 그런 경험 축적을 통해 의회의 권한과 책임도 바로 서고,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점도 개선될 수 있다고 봅니다.”
 
국회의원들이 특권을 누리면서 할 일은 안 한다고 생각해 국민이 의석수 늘리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뭐 결론이 어떻게 나더라도, 의원정수 확대 논의는 여전히 마지막 타결까지 살아있는 쟁점이라고 봅니다. 그러려면 국민의 동의를 구할 수 있는 그런 실천들이 함께 가야 하는데…. 그것을 주도해야 하는 양당이 손을 놓고 있기 때문에 제가 초조해요. 국민의 메시지는 분명하거든요. ‘너희들 어떻게 믿느냐. 똑바로 한다는 변화 의지를 보여 봐라.’ 이거거든요.”
 
김영란법을 손질하려 한다고 들었는데.
“그 법을 처음 만들 때, 저희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한 것이 이해충돌 조항이 빠진 것이거든요. 최근에 국회의원들의 여러 활동이 이해충돌에 해당하는 부분들이 많아 계속 불신이 누적됩니다. 그 밖에도 불신을 자초했던 문제들이 외유성 출장, 제 식구 감싸기, 셀프 세비 인상…. 국회도 할 말이 많겠지만, 국민 불신에는 상당한 근거가 있습니다. 여기에 과감한 개혁 조치를 내놓자는 겁니다.”
 
노회찬 의원도 그렇지만 정치자금법 등도 소수정당에 지나치게 불리하게 돼 있죠.
“노회찬 대표를 잃고 나서 정말 저희가 가슴을 쳤거든요. 저희가 처음부터 목숨 걸고 정치제도 개혁에 더 매진해야 했지 않나…. 하여튼 작은 결과라도 하나씩 쌓아가면서 30년 정치체제의 터널을 벗어나야 한다. 이런 절박한 생각이 있어요. 교섭단체 제도를 완화하는 문제도 있고요. 정치 신인, 신생정당들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선거 운동, 선거 비용을 대폭 공정하고 평등하게 바꿔야 합니다.”
 
선거 비용은 어떤 문제가 있죠.
“지금 선거에서 15% 이상 표를 받은 후보는 100%, 10% 받은 후보는 50% 보전해주는데 이 기준을 대폭 낮춰야 합니다. 정당에 선거 보조금을 지원하면서 선거 비용을 보전해 주기 때문에 이중지급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큰 정당들은 선거 한 번 끝나면 당사 건물 하나 사고 그랬단 말이에요. 작은 정당은 선거 한 번 치르면 빚더미에 앉고…. 이런 불공정한 선거 지원 제도를 바꿔야 합니다. 큰 정당에 과도한 보전을 하는 대신 선거 공영제를 대폭 확대하고, 문턱을 낮추고, 국고보조금도 의석수뿐 아니라 정당 지지율도 넣고, 하후상박(下厚上薄)해야 합니다.”
 
 
국회의원 정수 확대는 국민의 동의 받아야
 
언제까지 해야 합니까.
“정개특위 활동이 6월 말까지 연장됐는데, 아무리 늦어도 공직선거법상 선거구 획정 기한인 4월 15일까지는 선거구 획정은 아니더라도 선거법은 마무리해야 합니다. 선거제도가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면 정치자금법이나 정당법 등 중요한 정치개혁 과제도 정치협상을 통해서 큰 틀을 마련하려고 생각합니다.”
 
2004년 처음 비례대표 의원이 되셨죠. 노동운동을 하다 어떻게 정치를 하게 됐습니까.
“노동운동은 국회 정문에서 100m 전방밖에 접근을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 안에 우리 다수 국민의 삶이 대변될 수 있는 그런 정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민주노동당입니다. 전태일 열사가 온몸을 불사를 때 ‘우리에게 대학생 친구 한 명만 있었으면…’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제가 노동운동을 했을 때는 ‘저 안에 우리를 대변할 수 있는 국회의원 한 사람만 있었으면…’ 이런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그때 제가 가장 매력적으로 생각했던 말이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라는 비스마르크의 말이었는데,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보람이 있었다는 말씀이네요.
“제가 정치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그런데 되겠어?’와 ‘그만큼 고생했으면, 큰 당 가서 해라’는 겁니다. ‘그런데 되겠어’라는 말을 들으며 이 길이 제 소명이라는 것이 더 확고해졌습니다. ‘안 되면 어떻게 할 건데. 우리의 삶은. 우리 대한민국 공동체는 어떻게 할 건데?’ 이런 반문이 팍 올라왔어요. 또 저라고 왜 이 고단한 길 이외의 길은 없나, 생각 안 했겠습니까. 그런데 민주당의 왼쪽 방을 차지하면 아마 그 방을 지키는 데 헛심을 쓰게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있었어요.”
 
정치하면서 꼭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우리는 압축된 성장을 했습니다. 압축된 성장에 유보된 인권과 민주주의도 같이 복원되어야 한다고 봐요. 여러 이슈가 지금과 같은 포퓰리즘 방식으로 단기적으로 해결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조금 오래 걸리더라도 오래가는 정치를 하고 싶어요. 정치도 가급적이면 큰 틀의 연정을 통해서 안정적인 합의를 바탕으로 제대로 변화를 만들어 내는, 그런 정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역대 정권들을 보면 너무 권력을 사유화하고, 또 뭔가 의지를 갖고 있더라도 현재의 소모적인 대결 정치 구도하에서는 그 어떤 정권도 성과를 내기 어렵기 때문에… 정치 개혁이야말로 모든 것의 출발이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심 위원장은 비례 의원 때 지역구 경조사에 눈도장 찍는 게 굉장히 낭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역구 의원이 된 뒤 생각이 달라졌다.
 
“소신 있고, 헌신적이고, 능력 있는 정치인에 대해서는 보수, 진보를 떠나 언제든지 박수 쳐 줄 준비가 되어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됐습니다. 정의당 하면서 당심은 확고한데 늘 마음 한 자락이 무거웠거든요. 이것이 옳지만, 국민과의 거리감이 너무 크게 느껴졌어요. 지역구 국회의원을 하면서 이것을 좁혀 나가는 실천 방법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노동운동 땐 ‘철의 여인’ 요즘엔 ‘심블리’ 별명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1978년 서울대 역사교육과에 입학했다. 박정희 대통령 시해, 서울의 봄과 광주항쟁…. 거대한 반독재 민주화의 물결이 대학을 휘감았다. 입학 직후부터 구로공단에서 야학을 했다. 그길로 20년간 노동운동을 했다.
 
“당시 노동 현장은 참혹했어요. 민주주의를 배반하는 현장이었어요. 제가 있었던 곳이 여성 노동자들이 많은 사업장이었거든요. 지금 제기되는 성폭력과 욕설이 일상화되어 있었습니다.”
 
87년 민주노총의 전신인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쟁의부장을 맡았다. 민족미술작가협회 대표였던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인민무력부장’이란 별명을 붙여줬다. 금속노조 사무총장 때는 ‘철의 여인’이란 별명도 얻었다. 요즘은 ‘심블리’로 불린다.
 
“지역구를 처음 맡아 가니 주민들이 예외 없이, ‘어휴~ 실물이 훨 낫네.’ 그러셔요. 제가 강한 이미지였나 봐요. ‘저렇게 블리블리한 사람을…’이라며 지역주민들이 ‘심블리’라고 불렀어요.”
 
그는 민주노동당 비대위원장, 통합진보당 원내대표, 정의당 대표를 역임했다. 2012년 ‘종북(從北)’ 논란 끝에 이석기의 통진당과 결별해 정의당을 만들었다. 17대 비례대표, 19대와 20대 고양시 갑구에서 당선됐다. 지난 대선 때 후보로 나서 6.17%를 얻었다.
 
김진국 칼럼니스트·대기자 kim.jinkook@joongang.co.kr

도민이 행복한 더 큰 제주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