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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 불황기 ‘왕좌의 게임’…이익보다 매출 키워야 승리

“기업인은 너무 수세적이었다.”
 
마틴 리브스 핸더슨인스티튜트 소장의 지적이다. 핸더슨인스티튜트는 글로벌 컨설팅회사인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의 전략연구소다. 컨설턴트들의 머리 역할을 하는 곳이다. 리브스는 지난달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역발상 발언으로 주목받았다. 그는 “2020년대 기업들의 승부가 시작됐다”며 “경기둔화 국면이 분수령”라고 말했다. WEF는 그를 글로벌 비즈니스 의제 설정자로 꼽았다. 중앙SUNDAY는 국내 경기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가장 어렵다는 요즘 일선 비즈니스 리더들이 경기둔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그와 인터뷰했다.
 
경기가 둔화하면 경영자는 움츠러들기 마련이다.
“BCG가 경제위기 와중인 2009년 봄에 글로벌 기업 400여 곳을 조사해보니 장기 전략보다 단기 대책에 치중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용을 줄이는 등 일단 살고 보자는 것이다. 게다가 대부분 미리 위기를 대비하지도 않았다. 침체의 영향이 눈앞에 다가올 때까지 기다렸다.”
 
 
기업 셋 중 하나만 기술변화에 적응
 
경영자가 상황과 조건을 어떻게 판단하느냐가 중요한 듯하다.
“많은 전문가들이 글로벌 경제의 둔화를 예상하고 있다. 침체나 위기까지 예측하는 전문가는 많지 않아 보인다. 현재까지 전망이 그렇다는 얘기다. 모든 전망은 순식간에 바뀌곤 한다.”
 
거시경제 상황이 그렇다고 해도 기업들의 상황은 다를 수 있다.
“경기가 침체 아닌 둔화 수준에서 진정된다고 해도 기업들이 충격받을 수 있다. 다만, 글로벌 기업의 순이익과 현금자산 등을 보면 전반적으로 체력이 튼튼한 편이다. 주요 글로벌 기업이 인수합병(M&A) 등에 동원 가능한 자금 규모가 1조5000억 달러(약 1680조원)에 조금 모자라는 수준이다. 경영자가 지레 겁먹지 않아도 될 만하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리브스는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했다. 그는 “생명체가 위기 순간 변신해 생명을 연장하는 점이 비즈니스 세계를 보는 시각에 많은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흥미로운 시각이다. 경기 둔화나 위기 때 기업이란 생명체의 부침이 그렇게 심했나.
“최근 40년 새 기업의 평균 수명도 많이 줄었다(그래프 참조). 경기가 둔화할 때 기업의 경쟁서열이 뒤바뀌었다. 미국 포춘지의 100대 기업 리스트에 새로 오르거나 탈락하는 비율이 경기 둔화 시기에 50% 증가했다. 경기둔화가 위기이지만 기회이기도 한 까닭이다.”
 
비즈니스 리더가 경기둔화 성격을 파악해야 대응할 수 있을 듯하다. 이번은 과거와 견줘 어떨 것 같은가.
“과거가 아니라 다가올 둔화나 위기를 대비해야 한다. 이번 경기둔화는 앞서 말했듯이 2008년과 견줘 심하지 않다는 게 일반적인 전망이다. 인공지능(AI) 등 빠른 기술변화가 예상된다.”
 
비즈니스 리더가 어떻게 하면 기술적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까.
“사실 기업 세 곳 가운데 한 곳만이 기술변화에 적응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술변화에 대처하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개별 기업은 단기가 아닌 장기 전략과 비전을 바탕으로 디지털 혁신을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방식으로 빨라지는 기술변화를 대비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기술변화는 여러 변수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무슨 말인가.
“주요 국가가 정치·경제적 양극화 등으로 정치적 진퇴양난에 시달릴 듯하다. 또 기준금리 수준이 낮다. 국가부채 비율도 높다. 주요국이 위기 순간 금리를 빠르게 내리고 재정지출을 늘리는 방식으로 적극 대응하기 힘들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비즈니스 리더가 정책변수를 고려해야 할까.
“경기둔화 시기에 사회적 압력이 커질 수 있다. 경기 후퇴가 사회·정치적 갈등에 불을 댕길 수 있다. 당위론적인 이야기로 들릴 수 있지만, 비즈니스 리더는 기업이 경제적 가치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의미 있는 일을 하도록 해야 한다. 기업 경영이 지속 가능하도록 사회·정치적 이슈가 있을 때마다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애플, 2001년 R&D 집중투자 후 승승장구
 
리브스의 역발상은 기업의 위기대응 방안에서 빚을 발한다. 그는 불황 시기에 단기보다 장기 투자 등을 강조한다.
 
경기둔화 시기에 생존을 위해 곧장 돈이 되는 사업을 하는 게 정석이지 않나.
“경기가 하강하면 영업이익이 주는 등 단기 경영적인 문제점이 발생한다. 동시에 경쟁지형이 바뀌는 기회이기도 하다. 장기적이고 대규모 변화를 추구해야 하는 이유다. 미 경제가 침체에 빠진 2001년 애플의 매출은 한 해 전보다 33% 줄었다. 바로 그때 애플은 아이팟을 내놓는 등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제품 포트폴리오를 대대적으로 바꾸었다. 연구개발(R&D) 투자도 많이 늘렸다. 고도 성장의 주춧돌을 놓은 것이다. 이후 결과는 길게 말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장기투자나 제품 포트폴리오 큰 변화는 단기적으로 지출 증가로 나타나지 않을까.
“앞서 글로벌 기업의 투자여력이 아주 좋은 상태라고 말했다. 물론 경기가 둔화할 때 지출을 줄여 효율을 높이는 게 필요한 기업도 있다. 그런데 우리가 조사해보니 경제 활력이 떨어질 때 비용을 줄여 순이익률을 높이는 것보다 매출을 늘린 기업이 끝내 승자가 된 것으로 나타났다. 매출을 통한 주주가치 증가분이 비용절감 효과보다 두 배 정도 컸다.”
 
왜 그럴까.
“주가 등 기업의 가치는 투자자의 기대에 따라 달라진다. 매출 증가를 꾀하는 투자는 투자자들의 성장 기대를 부추긴다. 비즈니스 리더는 투자자의 가슴을 뜨겁게 할 성장 스토리를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
 
경기둔화 국면은 쇼핑시즌이라고도 한다. M&A 노하우가 궁금하다.
“불황 때 매물로 나온 기업은 시원찮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 분석에 따르면 같은 업종 내 기업 가운데 문화가 비슷한 회사를 사들이는 게 성공 확률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기업을 사들여 아주 빠르게 구조를 조정해 하나로 합치는 작업을 과감하게 벌인 M&A가 가장 성공적이었다.”
 
마틴 리브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을 졸업하고 일본 도쿄대학에서 생물물리학 대학원 과정을 수료했다. 다국적 제약회사인 제네카의 마케팅 전략 업무를 하다 1989년 BCG에 합류했다. 도쿄에서 10년 가까이 근무해 아시아 기업들의 생리를 잘 알고 있다. 저서로는 『전략에 전략을 더하라(Your Strategy Needs a Strategy)』 등이 있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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