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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진 “춤추는 효형씨, 안무가로 멋지게 변신해 흐뭇” 강효형 “단장님 지원 덕분에 열정 생겨 선순환 일어나”

‘올드 앤 뉴’ 강수진 국립발레단장 & 솔리스트 강효형

지금 한국사회는 세대 갈등이 화두다. 100세 시대에 기득권을 놓고 싶지 않은 선배 세대와 좀처럼 사회에서 자리잡기 힘든 후배 세대는 서로가 부담스럽다. 고령화·저출산 현상으로 갈수록 먹고살기 힘들어지는 세상에서 세대간 화합은 점점 불가능해지는 걸까. 존경받는 선배와 믿음직한 후배가 끌어주고 밀어주며 서로를 빛내주는 훈훈한 풍경을 문화계 곳곳에서 찾아보려 한다. 국립발레단의 강수진(52) 단장과 솔리스트 강효형(31)이 그 첫 순서다.
 
“무용수들, 자기 삶 찾아나갈 기회 절실”
 
막연히 안무가를 꿈꾸던 국립발레단 솔리스트 강효형(오른쪽)은 강수진 단장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입어 해외에서 러브콜을 받는 안무가로 도약했다. [박종근·전민규 기자]

막연히 안무가를 꿈꾸던 국립발레단 솔리스트 강효형(오른쪽)은 강수진 단장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입어 해외에서 러브콜을 받는 안무가로 도약했다. [박종근·전민규 기자]

강수진은 한국 발레의 상징적 존재다. 발레 불모지에서 태어나 동양인으로서의 제반 제약을 극복하고 아름답고 완벽한 테크닉을 구사하는 ‘플레이어’로 세계무대를 제패한, 대표적인 1세대 발레리나다. 그를 롤모델 삼아 세계 유수의 발레단에서 주역급으로 활약하는 우리 무용수들이 크게 늘어났다. 강효형은 결이 다르다. 국립발레단 현역 무용수로 무대에 서면서 자기 자신과 한국적 미를 표현하는 안무를 겸하는 ‘크리에이터’로서, 한국 발레의 새로운 가능성을 개척하고 있는 차세대 발레리나다.
 
강효형은 첫 안무작 ‘요동치다’(2015)가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넥스트 제너레이션’(2016)에 초청됐고, 자신도 무용계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에 2017년 노미네이트 되면서 이름을 널리 알렸다. 첫 전막공연 ‘허난설헌-수월경화’(2017)가 평창올림픽 축하공연에 이어 콜롬비아와 캐나다 무대에 올랐고, 지난해에는 신작 ‘셰이프 오브 팬더(Shape of Panthers)’가 칠레 산티아고 발레단에 수출되면서 세계에서 러브콜을 받는 안무가로 우뚝 섰다.
 
혼자 힘으로 이룬 성과는 아니다. 시작은 2014년, TV 춤 오디션 프로그램 ‘댄싱 9’이었다. 효형은 TV 예능프로 출연을 허락받기 위해 강 단장을 찾아갔다. “부임하신 첫 해라 자칫 눈 밖에 날 수도 있겠다 각오했어요. 아직 단원 파악도 안 된 상태에서 다짜고짜 TV에 나가겠다고 찾아간 거니까요. 그런데 ‘안무가 꿈을 위해 예능 프로에 나가 여러가지 춤을 춰보고 싶다’고 설명하니 허락해 주시더군요. 대신 열심히 해서 좋은 결과 갖고 오라고요.”(강효형, 이하 효)
 
마침 강 단장이 ‘KNB 무브먼트 시리즈’ 밑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였다. 한국 발레에 절대적으로 부족한 안무가 육성 및 상대적으로 생명이 짧은 발레 무용수들의 직업 전환을 지원하는 차원에서 부임 초부터 고려한 프로젝트다. “제가 세계를 돌며 그 많은 안무가들이 어디서 배출되는지 지켜봤잖아요. 결국 큰 단체에서 키워지더군요. 무용수들이 자기 삶을 찾아나갈 기회를 주는 중요한 프로젝트라 생각하고 시작했어요. 가장 중요한 건 스스로 원하느냐죠. 원하는 단원에게 재능이 보이면 기회를 줍니다. 그간 좀 아니다 싶은 작품도 있었지만, 아직 역사가 짧은 프로젝트인 만큼 되도록 시작의 발판을 많이 마련해 주고 싶어요.”(강수진, 이하 수)
 
효형의 ‘요동치다’도 이 프로젝트가 시작된 첫 해에 탄생했다. 강렬한 타악 리듬에 맞춘 군무가 인상적인 10분짜리 소품에서 강 단장은 “자기만이 가진 한국적 정서를 발레로 표현하는 전체적인 그림”을 발견했고, 후속 작업을 지켜보다 현역 단원 중 최초로 정기공연 안무까지 맡겼다. “효형씨만의 의지와 태도, 몰입력과 준비성을 지켜보면서 단계를 밟아가고 있어요. 첫 전막발레 ‘허난설헌’도 반응이 좋았죠. 외국에서도 색다른 작품이라며 흥미롭게 보더군요. 해외에서는 한국 무용수들이 클래식만 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나름대로 우리만의 스타일을 보여줘서 인정받았다는 의미가 커요. 작년에는 칠레에 효형씨 안무작이 팔렸는데, 이렇게 차츰 스텝 밟아가는 게 내가 원했던 것이고, 실현되는 과정을 보니 행복합니다.”(수)
 
효형의 ‘셰이프 오브 팬더’ 공연권을 산 산티아고 발레단의 예술 감독 마르시아 하이데는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서 강 단장과 함께 했던 인연이 있다. ‘요동치다’를 인상깊게 본 하이데는 효형에게 타악을 활용한 작품을 의뢰했고, 효형은 아프리카 타악에 기반한 새로운 음악을 작곡해 처음으로 ‘한국적’인 것을 벗어난 안무에 성공했다.
 
“안무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제가 혼자서 했다면 절대 이룰 수 없었을 거예요. 단장님의 지원과 네트워킹에 도움을 받고 시너지가 생겨 가능했죠. 안무가로서 외부 페스티벌에 참여하다보니 해외의 최신 흐름이나 정서를 빠르게 읽을 수 있게 됐고, 한국에서 나고 자란 안무가로서 세계무대에서 오리지널리티를 가지고 꽃 피우려면 어떻게 해야될까 생각하게 되더군요.”(효)
 
“그래서 네트워킹이 중요해요. 안무가들이 오리지널리티와 개성을 갖고 전체적으로 큰 어항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죠. 서로 교류하는 과정에서 얻는 게 있거든요. 지금 해외에서는 국립발레단을 엄청 찾고, 같이 작업하기를 원하고 있어요. 발레단이 57년 짧은 역사동안 많이 발전했지만, 이제 또 다른 스텝을 밟아나가야 된다는 것이 내가 보는 미래예요. 그걸 뒤에서 밀어주는 게 내 임무죠.”(수)
 
KNB 프로젝트가 거듭되면서 국립발레단은 분위기가 달라졌다. 안무가를 꿈꾸는 단원들이 부쩍 늘어난 것이다. 올해도 7월에 공연이 잡혀있지만 벌써부터 일과시간 후 준비를 시작한 사람들이 많다. “단원들이 보통 6시에 일과를 마치면 엑스트라 시간 쓰는 게 쉽지 않거든요. 그만큼 열정이 생긴 거죠. 무용수들 개성이 제각각이고, 클래식보다 모던쪽에서 빛을 발하는 어린 친구들도 있는데, 여러 면에서 파급력이 커질 것 같아요. 숨은 캐릭터나 재능을 발굴하는 계기도 되구요.”(효)
 
해외에서 우리와 같이 작업하길 원해
 
강 단장은 2014년부터 국립발레단을 맡았다. 중학 시절 모나코로 유학을 떠나 30년이 넘도록 해외에서 생활했기에 부임 초기 적응이 쉽지만은 않았다. “한국에서 그간 많이 달라진 정서를 느꼈어요. 예술가들은 각자 자기 관점이 있기에 서로 파악하는 과정이 필요했죠. 많은 얘기 나누면서 나도 배우는 기회로 삼았어요. 그게 내 할 일이라 생각하니까요. 나의 진심어린 조언이 단원들의 인생에 당장은 아니라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거죠.”(수)
 
“단장님은 전혀 권위적이지 않고 진취적인 성향이세요. 제가 지금까지 좋은 기회를 많이 받았는데, 단장님은 늘 모험을 하고 계시는구나 싶어요. 사람 하나만 믿고 기회를 주시니까요. 사람을 온전히 믿지 않으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인데, 그 믿음에 부합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저도 더 열심히 하게 되더군요. 좋은 순환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아요.”(효)
 
안무가 꿈꾸는 발레 단원들 부쩍 늘어
 
두 사람은 지금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5월 여수에서 초연될 2막짜리 대형 프로젝트 ‘호이 랑’이다. 3년 전 기재부 특별예산으로 국립예술단체들에게 한국적 소재 창작물을 개발하라는 미션이 떨어졌고, 국립발레단은 연극계 유명 창작진 한아름 작가·서재형 연출 커플과 팀을 꾸렸다. 효형은 지난해 초 안무가로 낙점됐다.
 
“국내외 많은 분들에게 조언을 구했는데,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적이어야 하니 해외 유명 안무가를 섭외하라는 얘기도 많았죠. 하지만 저는 효형씨로 결정했고, 그 결정을 의심한 적 없어요. 한국적인 색깔이 제대로 들어가려면 우리 문화를 이해해야 하고, 우리 단원들과 화합해야 하잖아요. 제가 온갖 안무가들과 수많은 작업을 하다보니 그분들도 빛을 내는 어느 순간이 있더군요. 효형에게 지금이 그런 때라고 생각했어요.”(수)
 
“저는 복합적인 마음이에요. 베테랑 작가, 연출님 사이에 꼈으니 일단 영광스럽죠. 오페라하우스에서 올리게 되는 2막짜리 작품이니 그 어느 때보다 부담스럽긴 해요. 하지만 망설일 이유는 없었어요. 단장님께서 저한테 스텝바이스텝으로 미션을 주신 것 같아요. ‘요동치다’ 이후 두 번째 KNB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1시간짜리 ‘허난설헌’을 맡기셨고, ‘허난설헌’ 반응을 보시고 2시간짜리 ‘호이 랑’을 맡겨주신 거죠.”(효)
 
“대작이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또 한단계 거치는 과정에서 많은 걸 배울꺼라 믿어요. 이제는 한 작품 만드는데 완전한 프로페셔널 팀이 구성됐으니까요. 무용수들과의 화합을 넘어 여러 창작진과 아이디어 교환하고 협의하는 데 시간을 많이 들여야 하거든요. 밸런스 맞춰가면서 잘하고 있는 것 같아요.”(수)
 
효형의 표현에 의하면 ‘호이 랑’은 한국판 ‘뮬란’ 또는 여성판 ‘스파르타쿠스’다. 주인공 ‘랑’은 기존 발레 레퍼토리에서 대상화 되었던 발레리나의 모습에서 벗어난 현대적인 여성상으로, 남자들의 세상에 당당하게 맞서는 진일보된 캐릭터다. 특히 남장을 해야 했던 내면의 아픔과 정체성의 갈등은 발레리나의 섬세한 움직임과 연기력으로 표현하고, 전쟁터를 누비는 강인한 군인으로서의 모습은 발레리노의 전유물이었던 웅장하고 역동적인 동작으로 표현해 발레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특이한 것은 그간의 강효형 스타일과 달리 음악에서 국악적 요소를 배제했다는 점이다. 동양적 색채를 추구했던 영국 작곡가 구스타브 홀스트 음악 중심의 클래식으로 구성했다. “국악만 고집하는 건 아니에요. 그동안 국악을 선택했던 건 강렬한 타악을 쓰고 싶었고, 그 리듬이 한국적 색채와 호흡을 가미하기 좋아서였죠. 어떤 음악을 쓰더라도 한국적 색채를 넣을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릴게요.”(효)
 
5월 여수서 초연될 ‘호이랑’은 한국판 뮬란
 
“한국적인 동작은 없는데 한국적 호흡을 전달하는 게 효형의 개성이거든요. 이번엔 음악은 세계적인 걸 고르라고 했어요. 한 가지 스타일로 가는 안무가는 없어요. 매번 완전히 새로운 과정을 거쳐야 크리에이터라고 할 수 있죠. 음악 자체가 방대해서 부담스러울 수 있는데 효형은 하고자 하는 게 뚜렷하더군요. 이제껏 해온 작업과 또 다른 방식으로 잘 풀어갈 겁니다.”(수)
 
발레라는 서양 클래식 예술로 한국적 아름다움을 표현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제다. 국립발레단에 ‘왕자호동’(1988) 이후 이렇다 할 창작 레퍼토리가 없었던 이유도 ‘한국적 발레’를 위한 철학과 메소드의 부재 탓이다. 강 단장은 “발레는 발레다”라고 잘라 말한다. “한국적이어야 한다고 한복을 차려입는다거나 하는 건 발레가 가야할 방향은 아니라고 봐요. 나라마다 고유한 스토리에 기반한 약간의 테이스트를 주면 됩니다. 발레이기에 테크닉, 토슈즈는 있어야 하고 음악 선정에도 밸런스가 중요하죠. 이번엔 네오클래식 안에서 효형만의 언어로 한국적인 테이스트를 주는 식이 될 겁니다.”(수)
 
“한국의 이야기에 클래식 음악으로 안무를 하는 거라 경계선을 잘 잡으려 해요. 홀스트는 동양, 천문학 등 신비로운 요소에 관심이 많았고, 서양 음악인데도 동양적 요소가 들리는 작곡가거든요. 큰 규모의 군무에 걸맞는 웅장함도 있고요. 한국적인 미장센은 은유적으로 세련미 있게, 신비스럽게 넣으려 해요. 민속적으로 보이는 걸 원하진 않아요. 발레 자체가 서양 것이고 유러피안의 감성인데, ‘이 사람은 좀 다른 게 있네’ 정도가 좋은 것 같아요.”(효)
 
강 단장은 2016년 슈투트가르트 극장에서 은퇴 공연을 가진 이후 단 한 번도 무대에 서지 않았다. 세계적으로 많은 스타 무용수들이 단체를 나와 솔로 프로젝트를 이어가는 것과는 대조적인 행보다. 어려서부터 한 길만 바라보는 발레 인생에 완벽한 은퇴란 게 아쉽지 않을까. “나는 정말 행복하게 마무리했거든요. 무대에 대한 그리움이나 아쉬움은 하나도 없고 오직 감사뿐이에요. 제안도 많이 받지만, 무대 서는 순간 100%가 아니면 관객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 생각해요. 발레를 사랑했지만 지금은 못한다고 봐요. 내 삶을 100% 다 뿜어내도록 끌어올려야 하는데, 그걸 원하지 않으니까요.”(수)
 
“저도 30대가 되니 춤을 언제까지 출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요. 관리 잘해서 오래 추고 싶은 욕심이에요. 현역 무용수란 건 다시 돌아오지 않는거니까. 춤도 안무도 좋은 기회를 계속 만들어 가야겠죠.”(효)
 
◆ 강수진
1985년 한국인 최초 로잔 발레 콩쿠르 우승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1986년부터 2016년까지 30년간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서 활동하면서 1999년 러시아 브누아 드 라 당스 최우수 여성무용수상 수상을 비롯해 2002년 호암재단 호암상 ‘예술상’ 수상, 2007년 독일 존 크랭코 재단 ‘존 크랭코상’ 수상과 독일 캄머탠처린(궁중무용가) 선정, 2014년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 공로훈장 수훈 등 수많은 업적을 쌓았다. 2014년부터 국립발레단장을 맡고 있다.

◆ 강효형
2009년 국립발레단에 입단했다. 2010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을 졸업하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받았다. 2015년 선보인 첫 안무작 ‘요동치다’로 주목받기 시작해 2017년 러시아 브누아 드 라 당스 안무가 부문에 후보로 올랐고, 같은 해 안무한 첫 전막발레 ‘허난설헌-수월경화’도 국내외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 칠레 산티아고 발레단의 의뢰로 신작 ‘셰이프 오브 팬더’를 안무했다.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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