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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기술·미감 흡수…글자는 생물이다

글자 풍경

글자 풍경

글자 풍경
유지원 지음
을유문화사
 
글자 폰트에 대한 관심이 생긴 것은 영국 유학 시절이었다. 끙끙거리며 써간 첫 리포트를 본 지도 교수는 “우선, 영문 폰트부터 이상해”라고 지적했다. ‘음, 영어의 본고장이라 글씨체도 까다로운 건가. 가만, 그런데 아래아한글에서 매일 쓰는 명조체는 어떻게 생겨난 글자지?’
 
타이포그래퍼 유지원은 이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명조는 명나라 왕조라는 뜻이다. 중국 한자 글자체 중에는 송조체와 청조체도 있다…한글에서는 한자 해서체 계열의 폰트를 명조체라 부른다. 궁체를 이어받았기에 해서체와 유사하다. 한자와 가나 문자에 쓰는 ‘한자 명조체’는 글씨 기반이지만 해서체보다 더 기하학적으로 정리돼 있다. ‘한자 해서체’가 붓맛이라면, ‘한자 명조체’는 인쇄용 판각을 위한 칼맛을 지닌다…1992년 문화부는 명조체를 순우리말 ‘바탕’으로 개칭했다.”(168~169쪽)
 
글자는 시각화된 언어다. 역사와 지역과 미감이 더해져 수많은 스타일로 변주된다. “글자는 기술과 문화, 자연환경의 생태 속에서 피어나는 생물”이라는 저자의 설명에는 묘한 설렘이 가득하다. 알프스를 중심으로 북쪽의 침엽수 같은 글자와 남쪽의 활엽수 같은 글자의 비교,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실린 물리학 논문을 토대로 살펴본 아랍 문자들의 아름다움, “글자는 흑백보다 색채가 본질적”이라는 인도 타이포그래퍼의 발표에서 얻은 깨달음이 독자를 문자향 서권기의 세계로 이끈다.
 
2010년 이후 한글 글자체 디자인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대목은 흐뭇하다. 개인 폰트 디자이너들의 빛나는 감각이 구현해낸 글씨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한국의 인문학적 토대가 얼마나 비옥해졌는지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관심은 만년필에서 잉크가 흘러나와 종이에 써지는 원리, 인공지능과 독일 자동차 번호판의 위조 방지 글자체 등으로 거침없이 확장되며 호기심을 배가시킨다. 하여 “과학자의 머리와 디자이너의 손과 시인의 마음을 가진 인문주의자”라는 저자에 대한 영화감독 박찬욱의 상찬은 결코 과하지 않다.
 
정형모 전문기자/중앙 컬처&라이프스타일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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