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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탄 자가 세상을 호령했다

말의 세계사

말의 세계사

말의 세계사
피타 켈레크나 지음
임웅 옮김, 글항아리

 
인류의 역사는 말(馬)과 함께 했다. 인류의 문명은 말이 있으냐 없느냐에 따라 명암이 갈렸다. 말과 함께 한 문명은 세계를 제패했다. 하지만 말이 없는 문명은 찬란한 문화에도 불구, 어느 한 지역에서만 불꽃을 피우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렸다.
 
멕시코 출신 인류학자 피타 켈레크나는 그 점에 주목한다. 그것은 말의 힘과 속도 덕분이었다. 말이 없던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인간 짐꾼들이 상품을 지고 날랐다. 아즈텍족들은 기껏해야 하루 평균 23㎏의 짐을 21~28㎞ 운반하는데 그쳤다. 그것은 완전 무장하고 매일 110㎞를 진격했던 몽골 기마 군대의 수송력과 속도에 비하면 그야말로 초라한 수준에 불과한 것이다. 인간이 “지상에서 가장 똑똑한 두 발 동물”이지만, “가장 빠르게 원거리를 달릴 수 있는 네 발 동물인 말”과 협력관계를 맺었을 때 비로소 그 잠재력을 폭발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까지 동력을 측정하는 단위로 ‘마력(horse power)’을 사용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아이러니하게도 야생 말의 원산지는 북아메리카였다. 말(馬)과 동물은 6000만 년 전에 지구 상에 등장했다. 지구 곳곳에서 여러 가지 종으로 진화를 거듭했지만, 기원전 9000년쯤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사라져버렸다. 정확한 원인은 모르나 인류의 욕심에 따른 남획 때문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인간이 말을 사육하기 시작한 건 기원전 4000년쯤의 일이다. 아프리카 누비아족이 아프리카 당나귀를, 유라시아 초원지대의 인도유럽어계 유목민들이 유라시아 말을 기른 것이 모두 그때부터다. 특히 이동거리가 긴 목축이 생계수단인 유목민들에게 말은 절대적으로 유용했다. 저자는 확답을 유보하지만 말의 효용가치가 당초 식용에서 수송으로 바뀐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황소를 창으로 찌르는 엘 시드. 말을 타고 있다. 1815년경 고야의 판화 연작 ‘투우(La Tauromaquia)’. [사진 글항아리]

황소를 창으로 찌르는 엘 시드. 말을 타고 있다. 1815년경 고야의 판화 연작 ‘투우(La Tauromaquia)’. [사진 글항아리]

기원전 3600년쯤 흑해-카스피해의 농목축 문화가 말과 함께 동쪽으로 퍼져나갔다. 기원전 2000년쯤에는 사육된 말이 중국에까지 전해졌다. 물론 평화로운 전파만은 아니었다. 유목민-기병들은 끊임없이 중국 영토를 침범했고, 중국은 이들을 물리치느라 애를 먹었다. 중국에 의해 밀려난 여러 유목 부족집단들이 남쪽으로는 인도로, 서쪽으로는 유럽으로 밀려났다. 이 과정에서 중국의 발명품들이 서구에 전해졌다. 저자는 이어 기마 유럽과 이슬람 기마병, 십자군, 몽골 기마병, 신대륙 발견 등 말을 탄 사람들의 세계 정복 역사를 그린다.
 
과학과 종교의 전파 역시 말과 관계가 깊다. 마야인들은 인도인보다 500년 앞서 ‘0(제로)’의 개념을 발견했지만, 말이 없었기에 마야 울타리를 넘지 못했다. 기독교와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의 4대 종교는 기마술과 더불어 확산됐다. 1차대전을 마지막으로 말의 시대는 종언을 고한다. 하지만 말에 걸터앉은 이른바 ‘기마 군국주의’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고 저자는 경고한다. 이제는 말보다 훨씬 강력한 동력기에 올라탄 인간은 새로운 것을 끝없이 창조하고 무자비하게 파괴할 수도 있는 ‘반인반마’가 돼있다.
 
저자는 이 같은 주장들을 고고학적 자료와 역사, 지리, 종교, 과학, 예술, 언어 등 광범한 연구와 치밀한 고증을 통해 입증한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비판도 함께 싣는 자신감도 보인다. 그러한 연구가 너무나 촘촘해 읽어나가기가 쉽지만은 않은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이훈범 대기자/중앙콘텐트랩 cielbleu@joo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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