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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1만2000켤레, 헌 등산화 ‘심폐소생’ 시키는 마법사

숨은 장인을 찾아서 
재주 좋은 손이 유난히 커보였다. 한 손에 든 망치로 새로 갈아 끼운 암벽화 창 모서리를 꾸욱꾸욱 누르고 있었다. 다른 손은 암벽화를 완전히 감쌌다. 그의 손은 작은 산이었다. 주름골들은 이완과 팽창을 거듭하며 살짝살짝 그곳에 끼인 기름때를 보여줬다. 손에 번진 땀은 그 골짜기로 흘러들었다. 한 달에 1000켤레, 등산화들이 그의 손에서 새 생명을 얻고 있었다. 
매달 등산화 1000켤레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국윤경씨가 방금 수선을 마친 암벽화를 들어보이고 있다. 김경빈 기자

매달 등산화 1000켤레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국윤경씨가 방금 수선을 마친 암벽화를 들어보이고 있다. 김경빈 기자

서울 우이동에 자리잡은 국윤경씨의 작업실에 있는 각종 도구. 그와 40년을 함께 한 것들도 있다. 김경빈 기자

서울 우이동에 자리잡은 국윤경씨의 작업실에 있는 각종 도구. 그와 40년을 함께 한 것들도 있다. 김경빈 기자

재봉틀 등 각종 수선 도구에 둘러싸인 국윤경씨가 연마기를 이용해 새 암벽화창을 다듬고 있다. 김홍준 기자

재봉틀 등 각종 수선 도구에 둘러싸인 국윤경씨가 연마기를 이용해 새 암벽화창을 다듬고 있다. 김홍준 기자

지난달 16일 북한산 자락 끝단쯤의 서울 우이동 골목. 국윤경(58)씨의 2층 작업실에는 수십 년 된 연장과 기계들이 불규칙하게, 그러나 주인의 동선에 따라 정렬해 있었다. 그와 함께 40년 가까이 한 자산이자 자식들이다. 가죽칼·플라이어·재봉틀·압착기·찜통…. 수입상에게서 이틀 전 건네받은 비브람 등산화 밑창과 흰색의 묵직한 족형틀이 치수별로 철제 선반 위에서 간택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자 양반, 팔자 좋구먼.”  
국씨의 농에 어리둥절해 하다가 그의 눈길이 기자의 신발 밑창에 꽂혀 있음을 봤다. 신발 뒤축 바깥쪽이 유난히 닳아 있었다. 팔자걸음이 심하다는 뜻이었다. “등산화 수선 맡기는 사람들 보면, 나이가 많을수록 뒤축 바깥쪽이 심하게 닳아. 골반이 점점 틀어져 걸을 때 다리를 모으지 못하는 게지.” 
숫자로 본 등산화 수선 장인

숫자로 본 등산화 수선 장인

운명을 다한 암벽화 밑창을 떼면서 그가 말문을 열었다. 그의 작업장 분위기처럼 띄엄띄엄 불규칙한 간격으로, 그러나 정돈된 목소리로. 그새 가위로 잘라낸 새 창을 연마기에 대며 완만한 곡선을 만들어냈다. 고무 타는 냄새가 작업장 안에 그득해졌다. 새 창에 접착제를 발라 붙였다. 홀로 일하는지라 효율을 높이려면 암벽화·경등산화·중등산화 등 ‘끼리끼리’ 모아 작업한다. 이날은 암벽화의 날이었다. 한 달에 헌 등산화 1000여 켤레가 그의 이런 심폐소생술로 다시 태어난다. 수선 경력 17년간 20만 켤레다.
밥이 행동의 근원이었다. 충남 논산에서 나고 자란 그는 어릴 때부터 손재주가 좋았다. 고등학교 졸업 직후 먹고 살기위해 친척이 운영하는 구두공장에 들어갔다. 갓 스물이었다. 그곳에서 구두 만드는 법을 배웠다. 어느 물건이건 손 한번만 스쳐도 ‘수제’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요즘이지만, 그는 당시 그야말로 ‘수제’의 원형질에 접근했다. 남성구두 시장의 3대 천황인 엘칸토·금강·에스콰이아에서 물건을 만들었다. 
 
중국산이 밀려왔고 외환위기가 들이닥쳤다. 국씨는 “그때 인력 80%가 나갔다”고 말했다. 국씨도 그 중 한 명이었다. 당장 밥 문제가 걸렸다. 방향을 틀었다. 막 빠져든 산과 막 관둔 구둣일을 이종교배시켰다. 구두를 만들었다고 하지만 수선은 쉽지 않았다. 디자인·패턴·미싱·조립에 마케팅까지, 구두 제작의 이런 분업형태를 그는 혼자 감당해야 했다. 등산화 수선을 배우는데 7년을 들였다. 그것도 스승 없이 홀로. “그러니까 혼자 일할 수밖에 없지. 아무리 구두 좀 만져봤어도 5년은 배워야 할 건데, 그 시간을 견딜 사람이 있을까.”
 

매출 중 재료비 비율이 45%로 높다는 것도 홀로 일하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그의 한 달 벌이는 1000만 원가량이다. 특정 등산화브랜드를 포함, 전국의 등산장비 매장에서 그에게 수선을 요청하는 곳은 80여 곳에 이른다. 손꼽히는 수선점에 등산화를 맡긴 사람들이 국씨에게 재수선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다보니 그는 방송에 출연하는 기회도 생겼다. 하지만 이후 홍역을 치렀다. 국씨는 “당장 하루에 전화 150통이 쏟아지니 일이 안 됐다”며 “지방의 한 경로당에서는 견학 가게 버스를 보내달라는 요청도 있었다“고 말했다.
국윤경씨가 헐어버린 암벽화창을 갈아끼우기 위해 새 창을 오리고 있다. 김홍준 기자

국윤경씨가 헐어버린 암벽화창을 갈아끼우기 위해 새 창을 오리고 있다. 김홍준 기자

 등산화 수선 전문가 국윤경씨가 구두망치를 이용해 암벽화창을 갈아끼우고 있다. 김홍준 기자

등산화 수선 전문가 국윤경씨가 구두망치를 이용해 암벽화창을 갈아끼우고 있다. 김홍준 기자

국윤경씨가 암벽화에 붙일 창에 접착제를 칠하고 있다. 김홍준 기자

국윤경씨가 암벽화에 붙일 창에 접착제를 칠하고 있다. 김홍준 기자

장인 혹은 수선공, 아니면 크래프트맨(craftsman)이라고 불리는 국씨는 동시에 인수봉에 여러 등반코스를 낸 클라이머이자 한국산악회 연수원 부원장이다. 그의 작업실 한 켠에는 ‘빅스톤(Big Stone)’으로 양각된 나무 현판이 걸려 있었다. 그가 만든 큰돌산악회의 영어명이다. 하지만 15년 만에 산악회를 해체했다. 그는 “산악회가 너무 고여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등산화도 제자리에 그대로 있으면 가수분해(플라스틱에 수분이 침투해 분해가 일어나는 현상)로 수명이 짧아진다는 국씨의 말처럼. 

 
그는 “산행 장비 중 가장 기본적이면서 가장 중요한 게 등산화”라면서 “등산화도 숨을 쉬게 해야 오래 신는다”고 했다. 신발장 안에 모셔두지 말고 틈틈이 신어줘야 한다는 뜻이다.
서울 우이동에 자리잡은 국윤경씨의 등산화 수선 작업실. 김홍준 기자

서울 우이동에 자리잡은 국윤경씨의 등산화 수선 작업실. 김홍준 기자

어느 등산화가 가장 좋냐고 물어봤다. 국씨는 브랜드명을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말했다. “등산화는 바닥이 어느 정도 닳아야 바위에 착착 감긴다. 사람도 서로 지내봐야 제대로 알 수 있는 것처럼 말이지.”

 

국씨는 무쇠를 벼리는 대장장이처럼, 암벽화를 압착기에 넣고 ‘담금질’하고 있었다. 푸슈! 짧고 강렬한 한숨을 토하는 압착기에서 암벽화를 꺼냈다. 이렇게 20여개의 암벽화는 새 생명을 얻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건넨 말은 이렇다. “제발 암벽화는 빨아서 보내 달라. 숨을 못 쉬겠다.” 사람도, 신발도 숨을 쉬어야 산다.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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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