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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현옥의 금융산책] 중앙은행 한계 드러낸 일본 ‘제로금리’ 실험 20년

지난달 23일(현지시간) 일본 도쿄에 있는 일본은행 본점 앞을 보안 요원이 지나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달 23일(현지시간) 일본 도쿄에 있는 일본은행 본점 앞을 보안 요원이 지나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1999년 2월12일. 일본은행(BOJ) 통화정책회의는 기준금리를 연 0%로 인하했다. 통화정책에 있어 미답의 영역이던 ‘제로 금리’ 시대의 문이 열렸다. 당시 미국과 유럽의 기준금리는 연 5%대였던 것과 비교하면 이례적인 조치였다.  

 
 제로 금리는 일본은행의 고육지책이었다.
 
 97년부터 시작된 금융회사의 부도 이후 디플레이션의 먹구름이 일본 경제에 몰려오자 일본은행은 기준금리를 연이어 내리며 대응에 나섰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제로금리라는 극약처방까지 쓴 것이다.
 
 당시 통화정책회의에 참석했던 고토 야스오 위원이 “일본은행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세계로 들어서는 것 같다”고 말할 정도였다.

 
 20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일본은행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현재진행형이다. 지난달 23일 일본은행은 기준금리를 -0.1%로 동결했다. 자산매입 규모도 기존의 수준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블룸버그는 “일본은행이 더 급진적인 마이너스 금리와 자산매입 프로그램에 갇혀 스스로를 다시 변종으로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금융위기 이후 양적완화(QE) 등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도입하며 돈 줄을 풀었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와 유럽중앙은행(ECB) 등 주요국 중앙은행은 통화정책 정상화로 방향을 틀었다. 그렇지만 일본은행은 20년간 이어진 ‘제로금리’ 실험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행은 가장 실험적인 중앙은행이다. 다양한 통화정책을 시도하고 있어서다. 제로금리는 그 중 하나일 뿐이다.  
 
 양적완화라는 통화정책의 새 장을 펼친 곳도 일본은행이다. 2002년 국채를 사들이며 시장에 돈을 푸는 양적완화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2000년 기준금리를 연 0.25%로 올렸다가 미국 닷컴버블의 역풍 속에 2001년 제로금리로 다시 돌아온 일본은행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세계금융위기 당시 양적완화를 실시하며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중앙포토]

세계금융위기 당시 양적완화를 실시하며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중앙포토]

 
 세계금융위기 당시 ‘헬리콥터 벤’으로 불리며 양적완화 정책을 펼쳤던 벤 버냉키 전 Fed 의장도 학자이던 2000년 당시 “일본은행의 통화정책은 스스로 초래한 마비”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세계금융위기의 격랑이 몰아치자 Fed도 미국 경제를 살리기 위해 제로금리에 이어 양적완화에 나섰다. 버냉키는 이후 일본은행에 사과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이후 일본은행은 제로금리와 양적완화라는 덫에 갇혔다. 2006년 통화정책 정상화로 방향을 틀었지만 이듬해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와 뒤이은 세계금융위기가 다시 일본 경제를 뒤흔들었다. 2010년 다시 돈의 수도꼭지를 트는 양적완화에 나섰다.  
 
 ‘아베노믹스’ 기조에 발맞춰 일본은행이 대대적인 통화부양 정책에 돌입하며 실험적 통화정책의 덫은 더욱 강하게 발목을 좼다. 일본은행은 2016년 기준금리를 마이너스로 끌어내렸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중앙포토]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중앙포토]

 당시 구로다 하루히코 총재는 양적완화(자산매입 규모)를 확대하고 대상을 늘리는(질적 완화) 한편 이미 마이너스인 기준 금리를 더 낮추는 ‘3차원 완화’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구로다 총재의 발언 이후 3년이 흘렀지만 통화정책 방향이 달라질 기미는 없다. 
 
 블룸버그는 “지난 20년 일본은행의 경험은 중앙은행의 한계를 드러낸다”며 “광범위한 경제개혁과 재정정책이 맞물리지 않으면 통화정책의 효과는 떨어질 수밖에 없고, 통화정책 기조를 섣불리 바꾸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지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일본은행의 통화정책 실험에 대한 시각은 엇갈린다. 초저금리의 역풍은 가계와 기업 등 다양한 경제 주체에 타격을 줬다. 
 
 예금 금리가 떨어지며 소비자는 허리띠를 졸라맸다. 제자리걸음을 하는 물가로 인해 소비자들은 이후 물가가 더 떨어질 것이라는 기대감에 소비를 미뤘다.  
 
 국내 소비가 위축되자 대기업은 더 높은 수익을 찾아 해외로 떠났다. 대출 금리가 낮아진 탓에 좀비 기업(한계 기업)은 오랫동안 연명할 수 있게 됐다. 사상 유례없이 낮은 금리로 은행과 채권 시장도 직격탄을 맞았다.

 
 물론 긍정적인 부분도 있다. 일본은행의 실험적 통화정책이 없었다면 일본 경제는 심각한 수준에 이를 수 있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일본이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고 지난해 26년만에 최저 수준까지 떨어진 실업률 등을 감안하면 절반의 성공 정도로는 평가할 수 있다는 의미다.

 
 마스지마 유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 애널리스트는 “(일본은행의 선택은) 천천히 죽느냐, 위험하지만 강력한 처방을 내리느냐에 대한 것”이었다며 “(실험적 통화정책의) 부정적 효과가 쌓이며 곧 손익분기점에 다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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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